건설의 한 공종인 조경은 남자 중심의 분야로 인식됐었다. 하지만 최근 조경학과엔 여학생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곳이 많아지며 여성이 조경분야에서 새로운 중심축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1973년 서울대에 조경학과가 설립됐을 때만해도 조경은 남성으로 대변하는 건설의 부대공정이다보니 여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서울대 조경학과에 신입생 중 여학생이 처음 입학한 시기는 79학번이다. 학과가 신설된 지 6년 만에 여학생 1명이 입학 한 것이다. 첫 번째 입학한 여학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홍일점으로 주목을 받았던 그녀가 유선희 (사)한국조경사회 부회장((주)세민조경 부사장)이다. 대한주택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18년 동안 근무하고 퇴직한 유 부회장은 (사)한국조경사회에서 여성위원회를 포함하고 있는 사회공원부회장을 4년째 수행하고 있다. 여성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조경분야에 홍일점으로 뛰어들어 여성조경인을 대변하고, 여성조경계 리더역할을 하고 있는 유선희 부회장을 만나 여성조경인의 역할과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살아온 길을 소개해 달라.
서울대 조경학과 79학번이다. 73년 학과신설 이후 첫 번째로 입학한 여학생으로 홍일점이었다. 많은 관심 속에 여성이라는 자부심과 의무감을 느끼며 공부했다. 이후 서울대 일반대학원 생태조경학과를 졸업한 후 건강상 문제로 유학을 포기하고 1985년 LH(당시 대한주택공사)에 입사해서 18년간 근무를 하다가 남편의 미국 발령으로 퇴직했다. 7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2009년 귀국했고, 2010년 세민조경에 디자인파트로 입사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13년에는 단국대에서 조경학박사를 취득했다. 2011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조경사회에서 자재위원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사회공헌담당 부회장을 4년째 수행하고 있다.
조경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부친이 임학과를 졸업하고 산림청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어릴때부터 나무에 대한 관심과 접촉이 많았고,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10년 넘게 미술반 반장을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미술반 활동을 할 정도로 미술을 좋아하다보니 설계와 조경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웠다.
박사논문은 어떤 내용은?
LH에 근무하면서 조경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시설물이 고급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현저히 질적으로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시설물의 대한 관심은 귀국 후 시설물업체에서 디자인파트로 취업을 하게 됐다. 석사논문도 아파트단지내 어린이놀이시설 설치기준 관련 내용이었다. 시설물에 대한 관심은 박사논문으로 이어졌다. 제목이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공동주택단지 옥외공간 조성연구’다. 노령인구 증가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기존 공공주택내 놀이시설이나 체육시설, 휴게시설의 조성에 대한 기본적인 틀을 깨야한다는 내용이다. 기존 방식은 아이들 인구가 40%였을 때 적용했던 기준이라면 지금은 아이들이 16~17% 줄었고 상대적으로 노인비율이 40%이상 증가한 상태다. 그래서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옥외공간에 설치되는 시설물의 패턴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인세대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 그리고 아이부터 노인세대까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시설물업계의 애로사항은?
조경업계가 힘든 만큼 시설물업계도 무척 힘들다. 물량축소로 인해 경쟁이 심화됐다. 도심속 가로 혹은 공원에 있는 시설물은 가로나 공원의 품격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시설물의 발전과 고급화는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업체가 난립하며 가격경쟁으로 가격이 하락하다보니 업계가 후퇴하는 느낌이다. 가격경쟁이 시설물의 순기능인 발전과 고급화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장경쟁 체제에서 업체난립이나 가격경쟁을 바꿀수 있는 대안을 찾는게 쉽지 않은 현실에 처해있다.
여성조경인 문제로 넘어가겠다. 여성조경인들의 활동에 대해 소개해 달라.
개인적으로 조경사회에서 2013년부터 지금까지 사회공헌담당 부회장을 맡고 있다. 사회공헌분야는 여성위원회와 사회공헌위원회로 구성되어 있다. 사회공헌위원회는 작년에 연탄나눔운동을 추진했고, 올해에는 희망정원 조성을 위한 조경인마라톤 대회를 구상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위원회는 여성조경인의 친목도모와 정보교류는 물론이고, 서로 격려하며, 여성의 권리를 찾아가기 위한 모임이다. 남은희 소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여성위원회는 봄에는 골프대회, 가을에는 시공사례답사를 정기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힐링여행, 여성간담회, 멘토링 좌담회 등도 추진한다. 2010년에는 라오스에 희망어린이놀이터를 조성해 주기도 했다. 조경사회 부회장과 여성분과위원장 출신 여성모임을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여성조경계의 발전에 대해 다양한 고민과 방안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여성위원회의 역할은?
여학생이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조경학과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면 여성이 조경계를 끌고 가는 중심축이 될 것이다. 이제 여성조경인이 리더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경계에서 기반을 만들어줘야한다. 여성조경인으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조경사회 여성위원회 차원에서 맨토링 관계를 연결해 주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설계, 공기업, 건설사 등 분야별로, 사원, 중간간부 등 직급 혹은 연령별로 구분해서 멘토링 관계를 맺어주는 것이다. 누군가는 나의 멘토가 되고, 누군가는 나에게 멘티가 되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에서 나오는 조언과 공감대를 통해 여성조경인으로서 사회생활의 미래를 설계하고, 자리잡아 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여성조경인이 공적인 역할 즉 조경관련단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본다.
여성조경인의 별도 단체 혹은 모임은 있나?
중국의 경우 여성조경가협회가 있는데 나름 파워가 있다고 들었다. 우리는 별도의 여성조경인 단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조경사회 여성위원회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조경사회와 별도로 여성조경인간 소통을 위해 밴드를 개설했고, 현재 124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여성조경인을 위한 단체를 만들기보다 조경사회 여성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활동을 이어가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여성조경인의 증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서울대만 봐도 조경학과에 여학생이 50% 이상을 차지한다. 대학별로 조금은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여성이 절반을 넘는다. 여성조경인의 증가는 여성의 사회참여라는 사회적인 변화에서도 찾을 수 있겠고, 설계 그리고 꽃과 나무 등 식물을 다루는 분야라는 점이 여성에게 관심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여성조경가로서 애로사항은?
예전에는 여성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심했다. 특히 남성중심의 건설분야에서 소수의 여성이 직장생활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하물며 엘리트집단인 교수사회에서 여성교수 채용은 하늘에 별따기보다 더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의 인권 신장과 사회적 변화와 맞물로 여성할당제 도입으로 여성교수도 증가하고, 여성의 사회참여가 확대되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조경설계는 시공을 바탕에 둬야 한다. 시공을 모른 상태에서 한 설계는 그림에 불과한다. 그런데 여성으로서 시공현장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대로 된 조경설계를 위해서라도 현장경험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염두해 두길 바란다.
여성조경인에게 바라고 싶은 말은?
개인적으로 LH에서 18년 근무하면서 설계와 견적파트에서 10년 이상, 지역본부에서 현장감독과 총괄감독을 하며 조경 전반에 걸쳐 다양한 경험을 했다. 이런 다방면의 경험은 이후 조경인으로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각자의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실력을 배가시키고, 매사에 적극적인 자세를 갖길 바란다. 아울러, 자기가 나갈 방향을 확실하게 잡은 다음 멘토링 관계를 통해 자신의 시행착오를 줄여갈 것을 바란다. 마지막으로 여성이 절반을 넘는 조경계에 여성이 리더로서 역할이 머지않았다는 걸 인지하고 조경분야에 대한 관심과 공적인 활동에도 참여를 당부한다.
기타 전하고 싶은 말은?
조경은 공공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동안 조경분야는 공공발주물량에 의해 성장했다면, 지금부터는 민간분야 중심으로 수요층을 발굴해야 한다. 또한 조경이라는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주변으로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 조경영역의 확장은 대학에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사회진출의 길을 다양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거니와 정체되어 있는 조경을 한 단계 발전시킬수 있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조경은 전문성이 없다는 인식을 깨야한다. 조경분야는 조경인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강화하고, 이를 위해 법적, 기술적인 보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