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유직 거창 아카데미파크 총괄책임자(부산대 교수)

거창군 읍내에 밀집되어 있는 10개 학교의 학교 담장을 허물고, 공공공간과 향교, 법원과 검찰청 이전지와 연계해 하나의 캠퍼스 조성하는 ‘거창 아카데미파크’가 추진되고 있다. 학교속의 공원, 공원속의 학교, 학교와 도시가 하나되는 공간을 지향하는 ‘아카데미파크’는 단계별로 마스터플랜과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아울러 10개 학교와 교육청, 거창군이 경관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현재 아카데미파크는 전체 사업 중 ‘아카데미파크웨이’등 일부사업을 우선 추진하고 있다. 올해 실시설계를 완료하고, 2018년까지 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6년여 동안 아카데미파크사업에 총괄계획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유직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를 만나 아카데미파크에 대한 이야기와 급부상하고 있는 농촌경관(조경)의 비전에 들어봤다.

거창 아카데미파크 사업 추진 계기는?
2009년 대학원생과 지방중소도시를 답사하는 과정에서 거창군을 가게 됐다. 적당한 규모, 적당하게 낡은 도시모습, 가로의 스케일감 등이 맘에 들었다. 특히, 10개 학교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도심 북쪽은 각 학교가 도시와 단절한 채 철옹성 같이 서있는 느낌이었다. 담장을 허물고 공원과 연계하면 하나의 캠퍼스처럼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학교와 학교가 연결되고, 학교와 도시가 연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그해 가을 대학원 스튜디오 수업을 통해 거창을 다뤘고, 그 결과물을 거창군에 제안하게 된 것이다.

10개 학교의 참여 동의를 받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10개 학교지만, 3곳의 사립재단과 공립학교로 구분된다. 각 학교별로 대화를 하면서 재단과 교육청과 지속적인 대화를 했다. 강하게 반대를 하거나 거부하는 학교는 없었다. 하지만, 담장을 허물고 내 땅을 내놔야할 때 심경의 변화가 올지도 모른다는 판단으로 10개 학교, 교육청, 거창군이 경관협정을 체결했다. 다만, 담장허물기 사업이 핵심사업이다보니 초등학교와 여중의 경우 범죄 문제 우려 때문에 조심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2곳의 초등학교는 기존 경계 구조를 유지하고, 1곳의 여중은 투시형 경계펜스로 교체하기로 했다. 또한, 범죄 문제의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셉티드를 도입해 보완시설을 강화하려고 한다.

법적효력이 없는 경관협정 어떤 의미가 있나?
일반적으로 경관협정은 주민끼리 자체적인 논의를 통해 내부적인 합의를 이끌어 낸 이후 주민협의회와 해당 지자체가 경관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아카데미파크 경관협정 역시 10개 학교간 협의와 논의 통해 경관협정위원회를 만들어 거창군과 체결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체결된 경관협정은 비록 법적인 효력은 없지만 상호간에 책임감과 의무감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고 본다.

변화되는 사회에서 조경의 역할은?
개인적으로 전공분야는 조경의 역사와 이론이다. 지금 하고 있는 농촌경관은 전공분야 중 일부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조경은 사회적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부응하기 위한 솔루션을 가장 잘 끄집어내는 학문이다. 특히, 옴스테드 이후 현대조경이 그렇다. 가령, 산업화된 도시를 위해 공원, 광장, 가로 등 프로젝트가 생겨났고, 이후 사회적, 시대적 변화에 의한 폐 정수장, 부대 및 공장이전지, 폐광산 등의 공간변화를 조경이 주도해왔다. 결과적으로 조경은 급변하는 환경 속에 인간들의 공간에 대해 환경적으로 가장 잘 대응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농촌이라는 공간을 놓치고 있다. 현대조경에서 매립지, 군부대이전지, 공장이전지 등 다양한 공간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처럼 농촌이라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농촌이 블루오션이라지만 일자리가 없지 않나?
농촌에 일자리가 적다는 말에 공감한다. 농촌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 농촌에서 일을 하다보면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일손이 부족하다. 전문가도 마찬가지다. 사회가 변화고 있다. 귀촌인구가 계속 증가하면서 농촌에 대한 관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최근 추진되고 있는 다양한 농촌마을만들기 사업들은 농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는 농촌경관 혹은 조경 관련된 시장이 만들어지고, 확대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대부분 조경학과가 농과대에 속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경공간의 하나인 농촌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지금 농촌이라는 공간은 블루오션으로 부상하고 있고, 시장을 선점한다는 측면에서 시간을 길게보고 접근하길 바란다.

 농촌에서 조경의 역할은?
기존 도시에 정원, 공원, 공공공간 등을 만드는 것처럼 조경의 모든 걸 농촌에서도 할 수 있다. 다만, 도시조경의 키워드가 생태라면 농촌조경은 생태보다는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먼저 말해야 한다. 서울에 ‘늘장’이라는 공간이 있다. 늘장에는 공동체가 있고, 경제가 있다. 지금까지 휴식과 산책을 위한 물리적 공간을 만드는데 그쳤다면, 이제는 그 공간이 ‘어떻게 작동하게 할것인가’에 포커스를 맞춰 다양한 프로그램을 넣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농촌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경제적인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 이유직 교수

농촌조경에 접근하기 위한 조경가의 자세는?
농촌의 마을단위로 내려갈수록 규모가 작고, 지역주민의 나이도 많다. 그 분들과 마을만들기를 얘기하고, 공동체, 경제적 가치를 말해야 한다. 그래서 기존의 계획방식, 접근방식, 기대수준 등이 달라져야 한다. 기존에 설명하고, 발표하고, 설득하는 과정의 프로세스에서 주민참여, 역량강화, 아이디어 집중회의, 워크숍 등 다양한 방법론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 조경에는 대가도 필요하지만, 소비자 눈높이에 맞추는 동네조경가도 필요하다. 그게 지금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불편하겠지만, 멀리보고 간다면 시장은 크게 열릴 것으로 본다. 농촌마을만들기가 확대되면서 동네조경가의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총괄계획가, 조경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유?
조경은 계획, 설계, 시공, 관리부터 문화, 관광, 생태, 토양 등 다양한 분야를 배운다. 또한 캐드, 포트샵, 일러 등 프로그램도 함께 배우는 포괄적인 학문이다. 이렇게 다방면으로 배우는 학문이 어디 있나? 특히, 조경은 공간을 다루는데, 그 공간에는 사람, 역사, 문화 등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조경은 도시환경의 변화에 가장 잘 대응하는 유용한 학문인 것이다. 따라서 다방면으로 공부한 조경가가 총괄계획가를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조경업계가 어려움에 처해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성 안에서 싸우지 말고, 성 밖으로 나가 싸우길 바란다. 그동안 조경분야는 스스로 범위를 설정해 놓고 그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오면 반응을 했다. 이겨봤자 본전이다. 이제는 과감하게 조경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게 과연 조경의 범위일까?’라고 생각하는 곳까지 확대해야 한다. 조경은 다원적이어야 한다. 환경 분야 뿐만아니라 사회적, 경제적인 분야까지 담보해야 한다. 조경을 공부하고, 조경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일을 한다면 범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조경은 정체성을 찾고 강화하는데 집중했다면 이제 조경은 다양한 분야에서 포괄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조경학과 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업계 못지 않게 학생들 역시 힘들다. 배우고 경험한 사람으로 말하면 조경은 상당히 유용한 학문임에 틀림없다. 조금더 조경이라는 학문에 대한 믿음을 갖고 공부하길 바란다. 지금까지는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했지만, 이제는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누구나 잘 살수 있는 시대다. 다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달려있다. 진로 선택시 내가 좋아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길 바란다. 그래야만 그 일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속에서 조경의 관점에서 생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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