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세밑을 강타한 식물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하며 보낸 난(蘭)이 그 주인공인데 7시간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나중에 청와대로 들어간 것을 두고 호사가들에게 ‘난의 난(蘭의 亂)’이라고 빈축을 샀다.

난(蘭)은 사군자의 하나로 난초의 아름다움을 빗대어 미인을 상징하기도 하고 그 향이 천리를 간다하여 난향천리라는 말로 수식을 한다. 난초는 휘어지는 아름다운 선 때문에 수묵화의 단골 소재가 되었고, 조선시대 흥선 대원군은 은둔 시절에 난초 그림에 심취해서 ‘석파란’이란 칭호도 얻었다. 또한 난초는 본디 깊은 산 속에서 외롭지만 겨울에도 푸른 잎을 간직하고 살고 있어서 고귀함과 충성심, 절개를 의미하며 사악한 기운을 쫓아준다는 난초에 대한 믿음이 있다. 이 때문에 난은 승진이나 영전 등에 보내는 축하의 꽃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랑받고 있다.

대통령의 생일 아침을 떠들썩하게 만든 난은 ‘황금강’이란 품종으로 시중에서 20~30만 원을 호가하는 상급 난으로 잎에 황금빛 무늬가 있으며 잎 가장자리에 선명한 복륜이 있는 아름다운 동양란이다.

청와대 정무수석이 독박을 쓰며 해프닝으로 끝난 사건이지만 ‘난의 난’에 대한 여운은 개운치가 않다. 다음날 종편방송에 출연한 서울시의원 출신의 어느 정치인의 말은 난 재배사업자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다. “본인이 꽃집 경영을 해봐서 잘 아는데 난 구매 고객들은 거의 국민의 혈세를 갖고 쓰는 것이다. 공직이나 기업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이름으로 생색은 내지만 절대 자기 돈은 안 쓴다. 김종인 위원장도 본인 돈으로 썼겠는가. 당연히 당의 돈이고 당의 돈은 국고 보조이거나 당원들의 혈세다.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무분별한 ...”라고 말을 한 발상이 난(蘭)보다 한참이나 미숙하다.

진짜 혈세 낭비는 다른 곳에 너무 많다. 전남 영암의 F1 그랑프리 경주장 건설비(4285억 원)와 개최권료 지급 등으로 8752억 원을 투입했는데 운영적자가 1920억 원에 이르고 지방채 이자 500억 원, 주관사 위약금 600~900억 원 지급 등 어마어마한 혈세 낭비가 있었다. 또, 경남 마창대교 민자사업에 30년간 3939억 원의 적자 지원을 해야 하는 등 여기 저기 커다란 혈세 낭비가 있는데 생일 축하 난을 가지고 혈세 낭비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다.

2002년에 발효된 부패방지법에 ‘화환 주고받기 금지’ 등을 골자로 한 공직자 윤리강령이 있다. 공직자의 부패척결 차원에서 경조비, 식사접대 등 뇌물성이 있는 물품을 금지하는 법이었다. 당시에 화훼농가에서는 꽃의 국내 수요 급감과 꽃값 폭락으로 생산농가와 화훼산업이 황폐화 된다고 난리가 났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발간하는 ‘공직자 행동강령 업무편람’에 따르면 공직자가 받아서는 안 될 선물과 향응에 ‘화환’이 가장 먼저 언급되고 있어서 꽃은 사치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화훼업계는 하락세를 걷고 있는 마당에 이번 정치계에서 벌어진 ‘병신정난(丙申政蘭)’으로 또 다시 지장을 초래할까 걱정이다.

꽃이 주는 많은 가치는 인간에게는 축복이며 꽃을 생산하는 농민에게는 소득원이 되는 산업분야이며 해외 수출상품으로도 역할이 크다. 꽃 소비가 계속 주춤하자 농식품부는 2013년에 ‘꽃의 생활화’라는 대책을 내놓고 국민소득 수준에 걸맞는 꽃 소비문화를 정착시키겠다했지만 시장 상황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그만큼 한 번 잘못된 정책이나 제도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이며 그것을 극복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에 김도읍 의원(새누리당)이 선거 180일 전 화환·화분 선물금지 조항 삭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대통령이 국민의당 창당대회에 축하화환을 보내는 마당에 구태의연한 법은 고쳐지는 것이 맞다. 대통령 생일 축하 난으로 촉발된 웃지 못할 해프닝이 난을 비롯한 모든 식물이 사치와 접대의 대상으로 보여 지지 않으면 좋겠다.

▲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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