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과 LH가 주최한 도시상징광장 설계공모에서 김영민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가 이끈 채움조경 콘소시엄이 1등을 차지했다. <사진 박흥배 기자>

세종시 상징광장 설계공모 당선작 주역 “국가는 담을 수 있는 ‘그릇’에 비유”

김영민 교수가 생각하는 광장은 ‘비어있는 곳’에서 출발했다. 반드시 채워져 있을 필요도 없으며 전체 공간들이 모두 연결돼 있지 않아도 된다. 시민들이 주도하고 제안하는 프로그램과 활동을 자유롭게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광장’에 대해 공부하고 성찰하면서 얻은 결론이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과 LH가 주최했던 도시상징광장 설계공모에서 김영민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가 이끈 채움조경 콘소시엄이 1등을 차지했다. 그가 기획했던 세종상징광장의 콘셉트와 숨은 뜻을 찾아본다.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 광장 읽기

김 교수는 광장 설계 전 서구에서 시작된 광장의 개념, 필요성, 광장의 활용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광장’을 바라봤다. 그렇게 많이 공부한 이유는 설계가가 의미를 정해놓고 대상을 편집한다면 설계가의 ‘의도’가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약 설계가가 ‘광장은 꼭 이래야만 한다, 광장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이곳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공간으로 제한되고 만다. 그는 광장이 꼭 필요한 공간인지, 정말 필요한 공간이라면 어떤 가치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광장이 갖고 있는 선입견이나 편견을 먼저 알고 싶었습니다. 공간에 대한 의문 없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0’에서 시작한 광장의 개념이 보다 더 중립적이고 이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이용가능성 또한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며 설계 개념을 설명했다.

4개의 일반광장, 어떻게 연결할까?

‘0’에서 시작한 광장은 다음으로 ‘공간’에 대한 인식이 필요했다. 광장이 들어서는 공간에 대한 인식이 먼저였다. 지침서에 따르면 계획 구역은 길이 510m의 일반광장(4개 구간), 폭 16m의 도시계획도로를 포함한 총 폭 60m의 광장부지와 도로를 포함했다. 공간 자체가 4개로 각각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 공간을 어떻게 ‘연결’하고 통일성 있게 보일 수 있을 지부터 고민했다고 한다.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모호함 보다 공간을 통일성 있게 통합하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지침서에는 ‘국가상징’을 담도록 명시했지만, 사실 대상지는 상업지구와 더 가깝고 ‘국가’라는 개념을 삽입하기에는 공간적인 한계가 존재했다.

김 교수는 “4개의 전체 공간(A, B, C, D)을 반드시 연결한다는 느낌보다 시각적으로 가장 넓은 두 공간을 연결하고(B-C) 도로와 마주한 나머지 양쪽 끝 공간(A, D)은 중앙의 연결된 광장(B-C)과 연결될 수 있도록 제스처를 통해 통일감을 연출 했습니다”며 공간의 완결성을 강조했다.

“제대로 비워야 새로움 채울 수 있다”

그는 광장을 꼭 ‘채워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요소’를 반드시 채워 이곳의 역할을 강조하는 전략 대신, 광장을 경계 짓고 ‘일반적인’ 광장의 의미를 과감히 배제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했다.

정치적이으로나 문화공간으로나 하나의 메시지로만 광장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가능성이 무한한 공간으로써 ‘비움’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광장을 둘러싸는 ‘엣지공간’에 시선을 이동시켰다. 바로 이 엣지를 경계화 함으로써 ‘광장들’은 더욱 비워진 느낌이 됐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또한 엣지공간 옆으로 계단을 만들어 사람들 시선이 자연스럽게 광장으로 흘러 들도록 구성했다.

김 교수는 “반드시 광장이 어떤 목적을 위해 세워질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추구하는 광장은 엣지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다양한 구성을 연출하는 겁니다. 이 엣지 공간에 발주처가 원하는 프로그램들을 채워도 됩니다. 시민들이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채워도 되구요. 문제는 이곳을 비우지 않으면 시민들이 원하는 자발적인 공간 구성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거죠. 우리네 광장이 그런 경우가 많잖아요. 광화문 광장만 하더라도 개인이 그곳에서 이벤트를 열고자 해도 ‘행사가 예정돼 있어 이용이 불가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오거든요. 그래서 세종상징광장만큼은 시민이 자발적인 행사를 할 수 있고, 관에서도 이곳이 비워져 있으니 언제라도 프로그램을 열 수 있습니다”며 가능성의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상상했다.

국가는 그릇, 시민은 프로그램 향유

대상지가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상징광장이었기에 ‘국가의 개념’도 들여왔다. (덮여있는 모양의) 덮개 형태가 아닌, (그릇을 뒤집은 형태의) 그릇, 즉 보통의 일반적인 ‘그릇’ 형태가 가능하다는 것. 이 개념을 국가와 국민이라는 상징으로 담는다면 시민이 주도하고 제안하는 광장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설계안 또한 ‘오랫동안 국가는 곧 나라임을 의미했다. 나랏님이 사라진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국가에게 나랏님의 노릇을 요구했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덮개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국가라는 덮개의 주인은 국민이 아닌 다른 것일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은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이념에서 만들어졌다. 그러한 국가는 국민이 균등한 기회를 얻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릇 같은 국가이다. 그래서 이 광장이 상징하는 대한민국은 국민이 스스로를 담을 수 있는 국가라는 그릇이다’라고 상징적인 의미를 덧붙이고 있다.

김 교수는 “오늘날의 국가는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판’을 제공해주고 있을 뿐, 국민을 단순히 보호하는 덮개로서의 구실은 비중이 약화됐습니다. 이 논리를 근거로 광장은 국가의 그릇을 상징하고, 시민들이 ‘스스로’ 담을 수 있는 공간으로 탄생하게 됩니다”고 말했다.

다양한 프로그램 위해 ‘모험’도 감수

광장과 광장 엣지로 경계 짓는 과정에서 ‘보행 자율성을 간과했다’는 평을 받았다. 엣지공간 옆에 계단을 놓았는데 휠체어, 자전거, 유모차 등 진입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김 교수는 스스로도 리스크가 큰 부분이라고 생각했지만, 앉을 수 있는 공간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중앙 광장으로 시선이 흐를 수 있도록 의도적인 배치였다고 설명했다. 엣지 공간의 프로그램 운영 때에도 자연스러운 포커스 이동이 가능하다는 게 설명이다.

김 교수는 “설계 과정에서 광장이 하나의 프로그램으로만 운영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 경계가 무너지면 엣지 프로그램도 무너지게 된다. 나중에 시공에 들어가서도 반드시 이 경계를 무너뜨리지만 않도록 고려했으면 한다. 이게 무너지면 비움도 없어지고 활용도 또한 무색해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영민 교수는 “설계가는 매번 현실을 인지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야하고, 현실에서 바꿔나가야 할 부정적인 면도 바라보게 됩니다. 나쁘게 말한다면 ‘현실 혐오감’이죠. 회의적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오히려 유토피아를 그리게 되죠. 대안 없는 유토피아가 아닌, 현실에서 개선해나가고자 하는 부분을 반영한 설계안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며 조경가의 고뇌를 풀어놓았다.

글 장은주 기자 / 사진 박흥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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