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종상(서울대 환경대학원·한국생태환경건축학회장)

올해는 유난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관련된 뉴스가 세간의 관심이 집중시켰다. 지난 7월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가 한국의 12번째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것이다. 공주, 부여, 익산에 산재되어 있는 백제시대 유적들이 동아시아 고대문명의 하나로서 백제의 고유한 문화와 종교, 예술미를 보여주는 탁월한 증거로서 문화유산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미 신라(경주역사유적지구, 2000년)와 고구려(북한 고분군, 2004년)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상태에서 이번에 여러 곳에 산재된 백제 유적들이 연속유산으로서 등재가 확정됨으로써 한국 삼국시대의 세 문명이 모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경사를 맞은 것이다. 지난달에는 중국의 난징 대학살 관련 기록이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중·일 간에 충돌이 심각하게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전 국가적인 관심을 끈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백제역사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시점에 일본의 근대화 초기 유산 산업시설들 23개 가 ‘규수․야마구치 근대화산업유산군’ 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결정되었는데 이 중에는 일제의 조선인 강제동원과 노동착취의 현장인 하시마섬(군함도) 등 7개소가 포함되어 있어 한국인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한국 대통령 이하 국무총리까지 나서 반대에 앞장서면서 유네스코와 국제사회의 중재를 거쳐 강제노역의 현장임을 알리는 설명문구를 안내문에 포함시키기로 하는 타협까지는 이끌어 내었지만 결국 등재 자체는 막지 못하고 말았다. 사실 일본은 이들 산업시설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십여 년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한 끝에 2008년에 이미 세계유산 잠정목록(tentative list)으로 올려둔 후 2013년 9월에 무려 3000쪽에 달하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였다.
통상 잠정목록 등재 시점을 신청 1년 전으로 잡는다는 기준에서 보자면 일본은 4년 동안이나 신청서를 준비하는 등 일찌감치 등재신청 준비를 마치고 만반의 태세를 갖춘 셈이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대응은 많이 안이했다는 중론이다. 일본의 정식 등재 신청 이후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n Monuments and Sites; ICOMOS) 전문가들이 현지 실사를 포함한 조사와 평가를 거쳐 유네스코 사무국에 등재권고서를 제출한 이후에야 부랴부랴 대응전략을 찾느라 애썼던 것이다. 사실 일본의 움직임을 간파한 초기에도 일부 민간단체나 전문가 등이 일본 측의 움직임에 대해 경고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함을 역설했지만 당시에는 그 뿐이었다. 그러다가 올 봄 이코모스가 등재권고를 결정한 이후에야 대통령부터 국무총리, 외교부장관, 국회 등이 모두 나서서 등재를 반대한다며 저지에 국력을 총동원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결국 강제 노역의 내용을 문구에 포함하는 선에서 한·일 양국이 타협했고 그에 따라 세계문화유산으로 최종 등재도 결정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이번처럼 이해 관계 국가끼리 정면 충돌한 전례는 거의 없다. 한·일 모두 세계유산위원회의 위원국으로서 그동안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적극적으로 관여해 온 주도국가인 만큼 결과에 대한 성패 여부를 떠나 양국 모두에게 남긴 상처가 없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네스코와 이코모스라는 두 국제기구가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추진 중인 사항에 대해 뒤늦게 이의를 제기하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국제적인 관례와 절차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 점은 현재 이코모스 국제 회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필자도 많이 아쉬운 지점이다. 일본 측이 잠정목록으로 등재한 후 신청서를 준비하고 제출할 때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음을 감안하면 우리가 대응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는 점을 우선 지적할 수가 있다. 실제로 이 건에 관해서는 이미 2007년께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언론이나 민간단체 등에서 문제점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단편적이거나 혹은 다분히 감정적인 반응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보다 전문적이고도 조직적인 차원에서의 심층 논의나 대응책을 모색하지 못했던 것이다.

굳이 이번 사건이 아니라도 문화유산이 국제관계 역학구도의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현상이 최근 들어 종종 주목된다. 지난달에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최종 등재결정이 난 중국 난징 대학살사건을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이 충돌한 것도 그 좋은 사례이다. 신청 초기에는 유네스코를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 사이의 외교전 양상을 띠기도 했던 것이 등재 확정 이후에는 일본이 유네스코에 내고 있는 막대한 분담금을 빌미로 세계유산 등재제도 자체를 개정하도록 하려고 시도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돈으로 유네스코를 압박하는 모습까지 불사하고 있는 모습이 결코 곱게 보이지는 않지만 유네스코에서 일본의 영향력 역시 결코 작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케 해주는 듯하여 우리로서는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사실 유네스코나 이코모스에서 일본의 막강한 영향력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플로렌스에서 있었던 이코모스 총회에서 새로 선출한 5명의 이코모스 부위원장 중에 일본인 토시유키 코노가 포함되었다. 전 세계에서 온 각국 이코모스 투표위원들의 투표로 뽑는 전체 선거에서 2위 권의 득표율로 당당 부위원장에 당선된 것이다. 직전까지 부회장이었던 중국인 구오 잔의 임기가 만료되면서 일본인이 바로 그 자리를 꿰어 찬 상황인데, 앞으로 당분간 이코모스에서 일본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유네스코나 이코모스에서 일본이 지닌 영향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막강했다고 봐야한다. 그 대표적인 실체는 1999년 동양인 최초로 유네스코 사무총장에 올라 10년간 재임한 일본인 마쓰우라 고이치로(松浦晃一郞)가 구축해둔 막강한 인적, 물적 인프라이다. 특히 그가 재임하던 당시 일본 정부가 이코모스에 많은 자금을 지원했는데, 최근 미국이 팔레스타인 문제로 유네스코 분담금 납부를 거부하면서 일본의 재정 분담금이 갖는 효용과 영향력은 한층 배가되었다.

문화유산과 관련된 국제 정치역학구도에서 중국의 약진도 결코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이른바 G2의 세계 대국이 된 중국은 오래 전부터 자국문화의 세계화에도 심혈을 기울여왔다. 세계유산과 관련한 관심으로는 중국 국가수석 시진핑의 행보에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지난해 그가 파리를 방문하는 길에 유네스코 본부를 찾아 문화적 다양성을 지향하는 유네스코의 이념에 공감대를 표시하면서 거금을 쾌척함으로써 유네스코 내에서 중국의 힘은 거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진핑이 ‘유네스코-만리장성 펠로십’ 수혜자를 75명으로 늘리고 문화섹터 창의산업 사업에 200만 달러를 쾌척함으로써 유네스코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힘을 배가시킨 것이다. 세계 유산과 관련한 주요 기구인 아시아․태평양 지역 세계유산 교육 및 훈련 연구소(World Heritage Institute of Traning and Research in Asia and the Pacific; WHITRAP)도 중국 상하이에 설치되어 있다. 유네스코나 이코모스 각 분과위원회에는 다수의 중국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유네스코의 최고 운영기관인 총회의 의장도 현재 중국인이고, 이코모스와 세계조경가연맹(IFLA)이 함께 결성한 문화경관분과위원회(International Scientific Committee on Cultural Landcape; ISCCL)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부위원장도 중국인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노력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당장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ISCCL만해도 매년 열리는 연례회의와 국제심포지엄에 참여하는 한국인은 필자 외에는 없다. 문화경관이라고 하는 좀 넓고 보편적인 영역을 다루는 분과인데도 어째서 한국인이 참여하지 않는 지를 필자는 잘 알지 못한다. 연례회의에서 다루는 안건들이 꽤 굵직굵직 하면서 중요한데도 한국의 자료나 의견을 충분하게 더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참 아쉽기만 하다. 매번 적어도 서너 명 이상씩 참여하는 중국과 일본인 멤버들을 보노라면 은근히 부럽기도 하다. 몇 차례 연례회의와 국제심포지엄 등에 참여하면서 내린 결론은 그에 대한 대응은 한 개인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의 조직적이면서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란 생각이다. ISCCL이 다루는 국제적 의제와 현안들을 조경가 등 특정 분야의 전문가 한 둘이서 다루기에는 전문성으로 보나 중요도로 보나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특히 근래 와서 이코모스 산하 분과위원회가 지속적으로 전문화, 분업화되면서 근 30개에 이를 정도로 다양화된 현 시점에서 우리도 보다 적극적인 참여와 대응이 필요하다. 유산 외교(Heritage Diplomacy)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세계문화유산을 둘러싼 국가 간의 관심사가 급증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하시마섬과 같은 사태를 다시 안 만나기 위해서라도 정부에서부터 전문가, 그리고 민간에 이르기까지 입체적이고도 체계적인 대응 전략을 점검해야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성종상(객원 논설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한국생태환경건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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