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제1회 서울정원박람회 초청작은 황지해 작가의 ‘소녀들을 기억하는 숲’과 황혜정 작가의 ‘다연(차를 마시며 즐기다)’이다. 테마와 오브제는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 ‘힐링 정원’을 내포한다. 작가가 들려주는 감상 포인트를 통해 이들이 전하고픈 메시지를 따라가 본다.

▲ 제1회 서울정원박람회 초청작 소녀들을 기억하는 숲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가장 어린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비록 정원을 통해서지만 어떻게 하면 생지옥을 몰랐던 때로 되돌려줄 수 있을까. 환경미술가이자 정원디자이너인 황지해 작가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강제동원되기 전, 소녀는 뜰아래에 앉아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 소녀가 바라봤을 앞마당과 먼 산. 작가는 이 같은 풍경을 복원하고 싶다는 바람을 안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얘기를 담아, 당신의 말씀이 걸어 나오는 정원을 조성했다. 제1회 서울정원박람회 초청작가전에서 선보인 ‘소녀들을 기억하는 숲’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국민모금을 통해 만든 이 작품은 황 작가와 국민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헌정하는 시간여행과도 같다. 염원이 통해서일까. 디테일과 플랜팅의 귀재라는 평가를 받는 작가의 정원을 몇 번이고 둘러본 한 시민정원사는 “보면 볼수록 깊어지는 느낌”이라며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할머니들의 영혼이 곳곳에 깃들어있다”고 평했다.

대표작품 해우소와 비무장지대 금지된 정원 ‘침묵의 시간’을 통해 한국인 처음으로 2011년 이래 2년 연속 영국 첼시플라워쇼에서 최고상을 받은 황 작가의 관록을 확인한 건 지난 3일. 작가를 따라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 평화의공원에 마련된 정원 초입에 들어섰다.

첫발을 디디면 바닥에 새겨진, 산업폐기물로 만든 정크아트를 밟게 된다. 난지도를 공원화한 평화의 공원과 오버랩 되는 느낌. 작가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정크아트를 만든 장본인이라고 했다. 1930이라고 쓰인 위로 위안부 때의 비통한 생활상이 담긴 작품도 보였다.

조금 더 가면 구부러진 나뭇가지 위로 ‘머리조심’이라는 푯말이 걸린 개불나무가 보인다. 작가는 이 나무 아래를 지날 땐 고개를 숙이고 가야 한다고 했다. 거지건 왕이건 신분이 높건 낮건 하늘 아래 모두 평범하다는 의미에서다.

오른편에는 시간을 아우르듯 담장이 둘러져있다. 전남 담양 소쇄원의 ‘애양단’(태양을 사랑하는 단)을 모티브로 음지에도 태양이 비추는, 정의롭고 올바른 세상을 강조하고 싶다는 뜻이 담겨있다. 특히 작가는 담장을 자세히 보면 주름진 돌들이 보인다고도 했다. 평소 작품을 통해 풍화를 견딘 돌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무게를 즐겨 사용한다는 그는 이 정원 또한 돌이 지닌 역사성을 통해 시간을 휘돌아, 할머니에서 소녀로 돌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

담장 옆에는 작가가 공들여 심은 복숭아나무가 있다. 위안부 할머니가 그린 복숭아나무를 현실화 한 것인데 신기하게도 바위를 이겨내고 뿌리를 내렸다고 한다. 할머니의 복숭화 그림과 누름꽃그림 등은 담장 왼쪽 벽 ‘아트월’ 갤러리 형태로 전시했다.

작가가 담장 아래에 놓인 족히 백여 년은 넘었을 듯한 나무의자에 잠시 앉는다. 고개를 숙이니 앉은 이의 발보다 작은, 실제 위안부 할머니의 족상이 새겨있다. 작가는 발바닥 주름이 굉장히 많이 보이는 할머니 발을 보며 억겁의 세월을 감당했던 모진 역사, 그리고 아기로 태어나 할머니가 돼 다시 아기로 돌아가는 우리네 삶이 떠오른다고 했다.

의자에 앉아 앞뜰을 보면 앳된 시절 할머니들이 좋아했을 도라지꽃, 오이풀, 구절초 등이 자연스럽게 심겨있다. 훗날 모금이 좀 더 모아지면 소싯적 나물 캐러 가다 들판에서 만났을 접시꽃, 보라색 창꽃, 쑥부쟁이, 범부채 등 한국적 정취가 물씬 나는 꽃들을 정원에 더 들여놓을 예정이란다. 시야를 멀리하면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 전통정원기법을 차용해 스카이라인이 정원 속으로 다가오도록 했다.

뜰아래 바닥에는 소녀가 사용했음직한 옛날 손거울, 밤 같은 걸 구워먹던 불쏘시개, 조선시대 자, 옷을 재단하고 잘랐을 가위 등이 놓여있다. 개중 하늘과 나무 밑둥을 비추고 있는 손거울은 의미가 깊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님을, 음지식물 같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도 햇살이 비춤을 잊지 말아달라는 게 작가의 소망이다. 중간중간 작가는 스테인리스에 새겨진 할머니들의 글귀를 소리 내 읽어줬다. “살아남은 게 꿈같아. 꿈이어도 악몽 같아. 이빨에 힘을 주고 견디는 기라. 내 죽어도 눈을 못 감지”, “새가 된다면 날아가고 싶다. 천리만리”, “나가 외로워 그러는가. 꽃도 좋아하거든. 꽃도 좋아하다가 내 어째서 이렇게 됐나 싶다…” 작가는 이렇게 읊다가, 문득 “나비가 많이 날아왔으면”하고 말했다. 영혼과 영혼을 이어주는 생명체들이 많이 날아오는 날, 비로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소녀로 돌아간 할머니들을 위한 치유의 정원이 완성된다고.

▲ 환경미술가이자 정원디자이너인 황지해 작가는 영국 첼시플라워쇼에서 디테일의 귀재, 플랜팅의 귀재라는 평가받고 있다. 2011년, 2012년 2년 연속 영국 첼시플라워쇼에서 한국인 처음으로 수상했다. 대표작품은 해우소(마음을 비우다), 침묵의 시간(비무장지대 금지된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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