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롯데껌이 인기였다. 주한 미군들이 한국 어린이들에게 적선하듯 나눠주던 껌과 초콜릿이 국산품으로 생산돼서 구하기가 쉬워진 것 때문이었다. 코흘리개 어린이도 껌 씹는 것을 좋아했고, 밥을 먹고 나면 껌을 씹는 것이 문화생활로 보였고 입안의 냄새를 껌 향기로 대신하는 것이 에티켓이었다. 단물이 다 빠진 껌도 버리기가 아까워서 자기 전에 벽에 붙여놓았다가 다음 날이면 다시 씹었다. 소풍가는 날이면 어머니가 싸주신 김밥과 삶은 달걀을 먹다가 목이 메이면 칠성사이다는 필수였다. 물론 롯데 제품이다.

껌 장사를 하던 롯데가 어느 날 서울 중심지인 소공동에 호텔을 지었다. 지금 알고 보니 롯데 껌에 쇳가루가 검출돼서 제조 정지 명령이 내려진 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신격호 회장을 불러서 호텔을 지으라고 하면서 당시의 반도호텔을 민영화하여 인수하게 하고 세금까지 면제하며 호텔건설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롯데는 당시의 특혜가 없었다면 망할 수도 있는 기업이었다.

롯데 껌으로 국민이 단물을 빠는 사이에 성장한 롯데는 율산과 한양을 거쳐 온 잠실 부지에 전두환정권의 지원으로 잠실에 롯데월드를 건설하여 회전목마 등의 동력놀이시설을 만들어 어린이들의 놀이장소와 상업시설로 건설하였고 MB정부 말미에는 또 다른 특혜 시비 끝에 제2롯데월드 승인을 받았다. 그동안 수많은 국민과 관광객이 이곳을 이용하면서 성장을 거듭하더니 지금은 우리나라 재벌 순위 5위가 되었다.

그러다가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이 터졌다. 창업자 1인 지배구조가 누수현상을 보이자 형제간에 골육상쟁을 벌이는 모습이 연일 매스컴에 오르고 있다. 날씨가 더워서 연일 30도를 넘는데 더위에 지친 국민을 더 덥게 하고 있다. 2주일째 뉴스 톱기사에 오르는 것도 이제는 지겹다.

롯데의 성장에는 정부의 특혜가 작동한 것이 엄연한 사실이지만 종업원과 협력업체의 희생과 착취도 한몫을 했다. 2000년 6월의 롯데호텔 파업은 매우 유명하다. 호텔노조 1천3백여 명의 규모가 그렇고 20일을 넘기면서 결국은 공권력의 무력진압으로 끝나서 유명해진 것이다. 당시의 파업 이슈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적정인력확보’ 등인데 당시 전체 직원의 56%가 비정규직으로 차별이 심해서 회사 측의 대안에도 반발하는 등 첨예하게 대립하여 소공동 일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2011년 홍영표 의원(민주당)의 국감 자료에 의하면 롯데그룹 전체 직원 3만6600명 중 비정규직이 1만5500명으로 42.3%에 달했다.

올해 초 지상파에 방영된 ‘어느 중소기업의 몰락’에서 플랜트 시공업체인 ‘아하엠텍’이 롯데건설 하청공사 중 추가공사를 계약서 없이 작업지시서와 합의 회의록만으로 했다가 공사비 청구액 147억 원 중 53억 8천만 원만 주겠다고 해서 강하게 반발하자 롯데건설은 아예 24억 8천만 원만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상을 받을 만큼 탄탄했던 중소기업인 아하엠텍은 현재 경영난으로 워크아웃 상태가 됐고 종업원 200명 이상이 직장을 잃었다고 한다. 롯데건설의 협력업체이던 어느 전문건설업체의 대표는 SNS에서 “얼마 전 롯데건설이 협력업체들에게 보낸 공문 중에 원가절감방법을 공유하자며 보고하라고 한 것이 있는데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된다. 지금도 롯데건설 공사 한번 하고 나면 망하는 회사가 부지기수인데 더 빨아먹겠다고?”라고 강변 한다

어떻게 되든지 이번 롯데사태는 마무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롯데가의 진흙탕싸움을 지켜보던 국민들은 허탈과 분노를 지우지 못할 것이다. 일각에서 번지는 롯데 불매운동을 섣불리 보아서는 안 된다. 그들은 롯데 껌의 단물에 코 묻은 돈을 지불하였고 그들의 자녀들은 롯데월드에 가고 싶어서 알바를 했고 관광객이 오면 롯데면세점으로 안내를 했던 사람들이다. 껌 장사로 출발한 롯데가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혼자 성장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 성장시킨 것이다. 마침 공정위에서 롯데의 지배구조 자료를 요청했다. 기왕에 하려거든 협력업체와의 공정거래도 들여다보면 좋겠다. 롯데가 폭염에 지친 국민을 더 덥게 하고 있다.

▲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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