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요섭 (사)놀이시설·조경자재협회 회장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심각한 가뭄으로 대지는 말라가고, 절대 강수량의 부족으로 식수를 걱정해야 하는 안타까운 시간이 있었다.

출퇴근길에 지나치는 한강변 모습에서는 강바닥의 민낯이 눈에 들어오고, 일상생활에 마주치는 도로 주변에 보이는 저수지나 물이 모아져 있어야 할 곳에는 걱정스러울 정도의 간절함만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비를 기다리는 모습뿐이었다.

두어 차례 태풍이 스쳐 지나가는 길목에서 다행스럽게도 감사한 비가 메마른 대지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바라보이는 뒷산에는 생명의 활기참을 다시 찾게 해준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하다. 그 편안함도 잠시, 해마다 경험하는 여름철 더위에 방송과 신문은 찜통더위라고 호들갑을 떨고 사람들은 새로운 사실을 안 것처럼 지쳐들 간다.

심각한 가뭄과 자연재해, 이상기온 등 낯설지 않은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지구 온난화에 의한 기상이변일 것이다. 편리성을 좇는 사람들 이기심에 의해 석유, 석탄, 천연가스등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현대문명의 한계점을 보여주는 어쩌면 모르는 척하는 것일 수 있지만 이젠 진정 두려워해야 할 상황이다.

과도한 산업화와 과소비에 의한 자정능력 범위를 벗어난 대자연의 신음. 자연과 함께 벗하며 일하는 조경인들에게는 더 많이 아프게 느껴지고, 치유 방안을 찾고자 하는 절실함은 분발을 요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살아있는 생명체로 생로병사의 주기를 살아가는 인간과 같이 건강할 때도 있고 아파서 병들 때도 있다.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심각하게 병들어 더 힘들어지기 전에 물과 공기, 흙과 나무와 숲, 이름 없는 들꽃의 소중함을 아는 조경인이 존중하고 보듬어주며,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사랑해야 할 때다. 누구부터 할 것 없이 우리 조경인부터 먼저 사랑을 실천하자.

한여름의 더위 속에 전국은 휴가철 열풍에 빠져들고 있다. 며칠씩 지속되는 열대야 속에서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간 속에서 재충전과 함께 무더위를 극복하고 즐기는 여름휴가. 서울 도심 도로의 한적함이 가져다주는 조금은 낯선 풍경에 더러 주변 사람들의 놀라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새롭다.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로 공항, 역사주변, 고속도로와 휴게소는 또 다른 고통을 토해놓고 있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아보려는 필자의 회사에서 시장조사 차 찾은 서해안의 한 해변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동해, 남해안과는 달리 몇 년 전 심각한 해양오염 사고 여파로 다소 썰렁해 휴가 특수를 기대한 지역 상인들의 시름이 깊어짐을 볼 수 있었다.

국민적 관심 속에 해양오염 방제 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 치유의 과정을 통해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지만, 한 번 멀어진 사람들을 다시 찾게 하기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잃어버리기 전에 잘 가다듬는 준비, 이 역시 조경인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연과 벗하는 조경인의 여름휴가의 한 단면을 숲과 함께 제안해 본다. 우리 주변 어느 곳에서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숲을 볼 수 있다. 산이 있는 곳에는 으레 숲이 있으니까. 숲은 풀과 나무와 함께 그들이 살아가는 모태인 토양, 계곡을 흐르는 개울물과 바람, 많은 동식물과 다양한 생명체를 포함하는 곳이다.

여름 숲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안개라고 한다. 자욱한 안개에 쌓인 여름 숲. 누군가의 경험치를 공유한다면, 숲길에 맺힌 이슬은 그 숲의 아름다움과 함께 심지어 신성한 공간의 분위기까지 만들어 낸다고 한다. 숲길에 맺힌 이슬은 도시에서는 경험해 볼 수 없는 즐거움으로 다가서고, 풀숲에 맺힌 이슬이 떨어진다. 신발이 젖고 바짓가랑이가 젖어든다.

이슬은 소매 깃을 적시고 윗도리까지 적시게 되고 찬 기운이 온몸에 스며든다. 젖어드는 새벽이슬에 몸을 맡겨 보는 경험, 숲을 사랑하는 조경인에게는 또 다른 의미를 경험해 보는 순간이 아닐까?

한여름 폭염이 계속될 때, 볕도 따갑다. 더불어 숲길도 적당히 달구어졌을 때 옷도 신발도 버거워지면 바지를 걷어 올리고 신발도 벗어본다. 조금은 고통스럽지만, 펄쩍펄쩍 뛰는 생선을 만지는 것처럼 발바닥에서 숲의 감촉이 생생하게 전해져 옴을 상상해 보자. 천천히 한 발자국씩 내딛다 보면 느리지만 대지의 기운을 만끽해 볼 수 있다.

많은 분들이 경험해봤을 여름 숲에서의 또 하나의 즐거움은 숲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물소리를 듣는 것이 아닐까? 발가락 사이로 선들거리며 빠져나가는 개울물의 느낌, 무더위 속에서 피곤한 육체의 일부분이 물과 함께한 순간 행복하다. 귀로 듣는 흐르는 물소리는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고 한다. 처한 상황이 밝고 즐거우면 계곡물 소리는 맑고 아름답게, 어렵고 곤궁한 상황일 경우는 처량하고 쓸쓸하게, 똑같은 계곡물 소리가 심상에 따라 변화를 일으킨다고 보면, 우리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유명 관광지와 휴양지를 벗어나서 심신의 편안함을 통해 가족, 지인과 함께 하는 조경인의 여름휴가. 우리가 가까이 다가섬으로 더욱 더 새로운 의미를 새겨보고 함께할 수 있는 가까운 숲으로의 여행을 권하고 싶다. 인간과 자연을 고려하지 않은 개발, 화석연료에 의한 현대적 문명속에 길들여진 우리이지만, 아파하는 자연과 인간의 치유를 공감할 수 있는 숲.

어려운 상황에 서있는 조경인들이 숲에서 답을 찾아 나서는 모습을 그려본다.

김요섭(객원 논설위원·(사)놀이시설·조경자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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