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병(아썸 회장·생태학박사)

생물학은 진화를 빼고선 이야기할 수 없다(T.Dobzhansky). 왜냐하면 현존하는 생명체의 구조와 형태는 수십 억 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지구에 현존하는 수백만 종의 생명체들이 단 며칠 동안에 완벽한 설계자인 창조주에 의해 ‘짠’하고 동시에 등장했다고 믿는(?) 천지창조론을 신봉하는 사람일지라도, 생물학과 진화에 관한 과학을 전면 부정하지 않는다면 이 글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아주 먼 과거에 살던 원시단세포생물에서부터 현재의 다양한 동식물 및 미생물로 진화하였다. 현미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박테리아나 원생생물에서부터 수백 톤에 달하는 거목이나 흰수염귀신고래에 이르기까지 놀랄 만큼 다양하다. 그러나 생명체의 기본 unit가 되는 세포의 구성 물질과 원리는 거의 동일하다. 수십 억 년의 진화를 거치면서 변화한 것은 organism일 뿐, 세포 내의 구성분자는 변하지 않았다.

현대생물학에서는 현존하는 모든 생명체는 공통조상이 되는 한 세포(cell)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생명의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40억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원시수프라 불리는 원시지구의 부글거리는 얕은 바다에서 첫 생명이 시작되었는지, 깊은 바닷속의 뜨거운 해저열수공에서 첫 생명이 탄생되었는지, 혹은 외계에서 생명의 씨앗이 지구로 날아왔는지는 아직도 논쟁 중이다. 하여튼 첫 생명이 시작된 이래 절반의 시간인 20억 년 동안 지구 풍경은 오늘날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생명체라곤 고세균류(Archaea)로 분류되는 몇 마이크론 크기의 생명체들이 산소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살고 있었다. 대부분 단세포 상태였고, 더러 환경이 좋은 곳에선 단세포 생물체들이 뭉쳐서 군집형태를 이루기도 하였으나, 서로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에 의한 조금씩 다른 미생물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원시생명체 세계에 어느 날 진화의 방아쇠를 당기게 된 기적과 같은 사건이 20억 년 전쯤에 발생하게 되었다. 바로 미토콘드리아의 탄생이다.

미토콘드리아가 하나의 단일 생명체가 아닌 진핵생물(eukaryote)의 세포 내 소기관이므로 ‘탄생’이란 표현은 어폐가 있어 보인다. 진핵생물 세포 내의 ‘발생’ 또는 ‘변형’으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현존하는 다양한 생명체의 공통조상이 된 진핵생물, 즉 미토콘드리아가 있는 생물의 출현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40억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존재하는 세균류들과, 불과(?) 20억 년 전에 출현하여 단 수억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우리 주위의 놀라운 다양성을 가진 생명체들을 폭발적으로 탄생시킨 진핵세포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세균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환경에서, 때로는 상상치도 못한 거친 환경에서도 콜로니(군체)를 형성하며 20억 년 동안 지구를 지배해 왔다. 오늘날에도 생물총량(bio mass)으로 따지면 세균의 생물량은 다세포 생물 전체의 생물량을 합친 것보다 크다. 그러나 세균은 지구에서 가장 하등한 생물의 수준을 결코 넘어선 적이 없다.

진핵생물의 선택은 M&A전략이었다. 전혀 생존 형태가 다른 두 종류의 생명체가 외부환경 변화로 절멸 위기상황에서 적대적 M&A방식을 통해 생존한 사례이다. 아메바의 먼 조상에 해당하는 혐기성 미생물이, 자기보다 크기가 훨씬 작은 산소와 햇빛에 적응한 시아노박테리아와 같은 호기성미생물을 섭식하여 체내로 끌어들여 세포 내 공생의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당시 지구의 대기는 시아노박테리아와 같은 광합성을 하여 산소를 발생시키는 세균류가 번성하기 시작하여 산소량이 점차 늘어나던 시기였다. 산소가 거의 없었던 원시지구에 적응해 살았던 대부분의 혐기성 박테리아에게는 산소의 증가는 재앙이었다. 산소의 증가는 산소의 강력한 산화력에 의한 산소 독성으로 절멸할 수밖에 없는 위기였던 것이다. 진핵세포를 비롯한 대부분의 세균류가 죽음을 맞이할 때, 한 마리의 용감한 진핵세포는 체내에 독성을 뿜어내는 적을 포용하는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적을 잘 순치시켜 자신의 몸속에 발전소 역할을 하는 중요한 기관인 미토콘드리아로 받아들였다. 비로소 스스로 운동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기관을 보유함으로써 다른 세포들과는 달리 능동적으로 외부에서 유기물을 흡수하고 이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시너지효과를 갖게 된 것이다. 적대적 M&A를 당한 몸체가 작은 박테리아는 또한 숙주의 영양공급으로 인한 안정적 삶을 유지함과 동시에, 숙주의 보호와 운동역량에 힘입어 자유로운 이동을 할 수 있는 능동적 삶을 영위하는 이득을 얻게 된 것이다. 자가발전소를 가진 진핵세포는 엄혹한 외부환경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며, 대사를 통한 잉여에너지를 활용하여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기능성 조직을 발전시켜 마침내 오늘날 무수한 식물과 동물로 진화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염색체 이외에는 모두 숙주의 핵에게 미련 없이 넘겨주었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필수염색체는 숙주의 통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유전체계를 확립함으로써 존재의 가치를 유지발전 시키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즉 암수양성 생식 때 다른 모든 기관은 부계와 모계에서 절반씩 받지만 미토콘드리아 유전체만은 모계에서 모계로만 전달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현생인류의 조상을 찾는 데에도 쓰일 수 있다.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적하면 몇 만 년 전 어느 부족의 한 여인이 우리의 시조임을 밝혀낼 수 있다. 얼마 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추적할 때도 미토콘드리아 DNA가 요긴하게 쓰였다고 알려졌다.

에너지는 생명의 원천이다. 숨이 멈추거나, 심장이 혈액을 세포에 공급하지 않으면 수분 이내에 사망에 이르게 된다. 숨을 들이쉬면 들숨 속의 산소가 혈액을 타고 우리 몸 구석구석의 세포에 산소를 공급하여 우리는 세포호흡을 통하여 에너지를 얻어 생명을 유지한다. 우리 몸은 단위 질량을 비교했을 때 매초 태양이 생산하는 에너지보다 1만 배가 넘는 고효율 에너지 생산 시스템이다. 태양의 밝기를 질량으로 나누면, 태양은 1그램에서 매초 0.0000002줄의 에너지를 생산하지만, 인간의 몸은 초당 2밀리줄의 에너지를 낸다. 왕성하게 에너지를 생산하는 아조토박터와 같은 세균은 태양보다 5000만 배가 넘는 에너지를 생산한다고 한다.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40억 년이 지난 지금까지 옛날 모습과 큰 차이를 보이지 못하고, 어두운 시궁창이나 동식물의 몸 안에 기생하는 음습한 생물로 남게 된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연가시와 같은 기생충이 숙주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의 후손을 이어가듯이, 대장균과 같은 우리 체내에 공생하는 박테리아가 우리의 생명을 조종하는 지도 모른다는 역설이 가설로 주장되기도 한다. 우리의 소화를 도우며 우리 장에서 생활하는 대장균은 숙주의 몸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종을 번식하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이 좋으면 대장균은 20분마다 한 번꼴로 분열한다. 즉 하루에 72번 분열하는 셈이다. 대장균 한 마리의 무게는 약 1조분의 1그램이니까 그 수는 2의 72승이되고 이를 무게로 환산하면 4000톤이 된다. 대장균의 무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단 이틀이면 지구의 질량을 능가하게 된다. 다행히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보통의 상태에서 세균은 절대시간을 굶주리며 보낸다. 먹이가 생기면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다가 양분이 부족하면 가사상태에 들어가 증식을 멈추고 때가 올 때까지 죽은 듯이 기다린다. 숙주가 죽으면 자신도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지 체내에 기생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들도 스스로 개체 수 조절을 하거나 독성을 완화시켜 숙주를 살리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에볼라 바이러스나 메르스 바이러스도 시간의 경과에 따라 처음 발생했을 때보다 독성이 약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분열속도가 너무 빨라서 새로운 변종이 생기는 것에는 속수무책인 셈이다.

생명진화의 위대한 신비가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의 적대적 M&A이나 상호보완적 공생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을 줄까? 급변하는 시대의 패러다임과 환경의 변화를 겪는 우리 조경계도 자신만의 독자생존 전략만으로 어렵다는 판단이 들면 박테리아에게 한 수 배우면 어떨까 싶다. 전혀 이질적이거나 심지어는 적대적인 회사일지라도 미래를 내다보고 과감한 M&A나 공생 전략을 선택하면 어떨까?

권오병(집필위원·아썸 회장·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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