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 만휴정 원림(명승 제82호) <사진제공 문화재청>

만휴정은 조선시대의 문신 김계행(金係行, 1431~1521)이 말년을 보내기 위하여 건립한 정자로서 그는 연산군으로 인해 정사가 어지럽게 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송천의 가장 깊숙한 곳, 바위 인근에 쌍청헌이라는 집을 지었다. 이 쌍청헌은 후에 만휴정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실제 보백당 김계행은 말년에 본제인 묵계서원 부근과 만휴정을 오가며 생활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건물은 중수를 거치면서 일부만이 조선 후기 양식을 보인다.

만휴정은 커다랗고 둥근 바위를 등에 지고, 물길에서 조금 안쪽으로 움푹 패여 들어간 공지 안에 조성되어 있다. 만휴정이 등지고 있는 아래쪽 바위는 단층면을 이루고 있으나, 위쪽은 밋밋한 곡선을 드러내고 있고, 그 위에는 여기저기 세력이 왕성하지 못한 소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북에서 동쪽으로는 길안천, 계명산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묵계서원, 남쪽에는 임봉산, 황학산이 있다. 묵계서원에서 개울 건너 산 중간부에 들어선 깊은 계곡 반석 위로 폭포를 동반한 곡간수가 흘러 절경을 이루는 동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폭포를 원림 안으로 끌어들인 정자로 유명하다.

만휴정 동쪽 방 앞에 걸려 있는 나무판에는 ‘지신근신 대인충후(持身謹身 待人忠厚) : 겸손하고 신중하게 몸을 지키고, 충실하고 돈후하게 사람을 대하라’는 뜻의 유훈이 쓰여 있으며, 서쪽 방 앞 나무판에는 ‘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 : 내 집에는 보물이 없으니, 보물이라면 오직 맑고 깨끗함이 있을 뿐이다’는 글씨가 ‘선생의 집 마루 편액은 이 뜻을 취한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쓰여 있다.

16세기 초에 지은 만휴정은 세월의 변화 속에서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 아래 떨어지는 폭포는 장관이루며 계류, 산림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안동의 명승지이다.

<자료제공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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