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종상(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역사적으로 볼 때 근대로 들어서면서 조경은 이전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국면으로 진화해왔다고 할 수가 있다. 이전까지는 신이나 왕 혹은 일부 특권층만을 위한 장소 조성이라는 제한된 범위에 머물렀던 조경이 도시화와 그에 따른 공공 혹은 대중의 등장에 따라 새로운 수요층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도시가 성장하게 되면서 다양한 공간으로 분화됨에 따라 조경은 공원, 광장, 가로, 공개공지, 주택단지, 녹지, 하천 등 이전에 없던 새로운 공간을 다루는 전문 집단으로서의 역할이 중시되었다. 정원에서 공원으로 공간적 대상에서의 확장과 함께, 특권 소수가 아닌 불특정 대중에의 봉사라는 새로운 서비스 영역으로의 확대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공공성에의 주목이라 할 수가 있겠다.
근대 도시에서 새로 발명된 공원이라는 열린 공간을 가난한 이나 노동자 계층이 부자나 중산층과 차별 없이 함께 즐김으로써 건전한 ‘시민’ 의식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중요한 진전이었다. 새로운 문물의 집결장이었던 근대 도시에서 조경은 공공성이라는 새로운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근대화의 상징 내지는 문물로서 화려하게 등장하게 된 셈이다.

성장해 온 과정으로 보자면 한국에서의 조경 역시 공공성은 중요한 가치로 간주되어 왔다. 70년대 경제개발과 국토건설의 시대에 훼손된 자연을 복구하고 새로운 공공 환경을 창출하기 위한 전문영역으로서 조경이 탄생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고속도로 사면 녹화, 휴게소 조경, 관광지 조경, 역사문화유적지 복원 등의 국가적인 사업이자 공공의 영역에서 조경은 이전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지식과 기술을 선보이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시대적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주체로 한국조경공사라는 공기업이 탄생하여 수많은 국가적 사업에 주역으로 활동하였다는 사실에도 한국 조경의 공공성이 역설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개인 보다는 집단 혹은 국가적 가치를 우선시 하여 온 한국에서 조경이 공공의 영역에 더 치중해 온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자 현상이라고 할 수가 있다.

다루는 대상에서부터 공공 영역 비중이 큰 조경이 공공성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 실행 전 과정이 대단히 중요하다. 실행 방안으로서 계획이나 설계가 착한 기준과 근거에 맞는 것이어야 하고, 실행 과정이 공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시민 참여가 공원이나 녹지 등의 조경업역에서 유달리 많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작금의 현상 역시 조경의 공공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어 주는 좋은 예이다. 뿐만 아니라 시민 단체와 관이 공동으로 힘을 합쳐 공원이나 녹지를 조성하거나 관리운영하는 녹색 거버넌스도 조경의 공공성을 잘 대변해 준다. 우리사회에서도 내셔널트러스트, 그린트러스트 등의 다양한 새로운 주체의 등장과 함께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1평 공원, 동네숲, 도시텃밭, 마을정원 등에서도 조경의 공공적 면모를 확인할 수가 있다.

근래에 와서 기능을 다한 공공 소유의 땅이나 시설이 공원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 역시 공공 환경의 필요성과 함께 조경의 공공성을 입증해 주는 좋은 단면이다. 사관학교가 보라매공원으로, 쓰레기 매립장에서 하늘공원과 월드컵공원으로, 정수장에서 선유도 공원으로, 경마장에서 서울숲공원으로 그리고 최근 미군기지에서 용산공원으로 용도를 바꾸게 된 것은 공원이 주는 공적 가치와 효용이 무리없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실 모두에게 제공되면서 다수가 공감하기 좋은 것으로 공원만한 것이 달리 없지 않은가 말이다. 얼마 전에 법적 용어로 등장한 국가정원은 가장 사적인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정원조차도 공공 속으로 나올 필요가 있을 만큼 조경을 둘러싼 공공성이 부각되는 시점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공공성을 근간으로 하는 조경이 안팎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 국가적으로는 민영화와 규제완화라는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최근의 정책기조는 공공성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윤추구를 지상과제로 하는 민간기업이 공공재의 보편적 공급 의무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고 보면 민영화에는 공공성의 위축 현상을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다. 현 정부가 역점 과제로 제시하고 있는 규제완화 역시 공공성과 상충된다. 안전과 공익, 그리고 환경 등에서 최소한의 기준 유지를 위한 규제를 완화시킴으로써 초래되는 문제점을 우리는 세월호 참사에서 뼈져리게 겪었다. 최근에 개정된 공원녹지와 관련된 일련의 법제는 모두 다 규제 완화의 일환이라 하여 공원녹지에 대한 조성 의무를 경감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최근의 법제 개정을 보는 시선이 결코 편안하지 않은 것은 그 까닭이다. 공공 차원에서 필요한 조경(공원, 녹지 등)을 굳이 설치하지 않고도 개발사업을 할 수가 있게 된 마당에 누가 애써 공원을 조성하려 할 것인가?

사회적 수요(Social Need)는 전문직이 성립되기 위해 필요한 요건 중에서 하나이다. 한국 사회에서 업(business)으로서 조경은 이미 40여년이 지났다. 학문이나 제도가 도입된 것도 어언 그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직(occupation, 職)으로서는 아직도 요원해 보이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특히 관공서의 조경관련 직제는 대단히 열악한 실정이다. 공공성이 강한 조경 속성을 고려해 볼 때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의 역할이 중요할 것인데 정작 조경업무를 수행할 조경직 공무원은 여전히 부족하다. 공공적 가치를 우선시하기 마련인 관공서의 조경관련 업무는 초기 단계에 기획업무와 관리업무가 중요하지만 그런 일들은 조경가들의 손이 아닌 다른 분야의 공무원들 손에 맡겨져 있는 실정이다. 특히 조경업역을 관장하는 주무부서인 국토교통부에 조경직 공무원은 지방자치단체에서 파견된 이외에 단 한명도 없다. 국토 전반에 관련된 조경 영역에서의 계획이나 설계, 그리고 관리운영 등의 모든 업무를 조경직이 아닌 다른 직 공무원들이 다루고 있는 것이다.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것이 업체수 12,737개, 종사자수 101,839명, 기술사 등 국가기술자격자 76,640명, 공사비 년 3조에 가까운 조경분야의 현주소이다.

크게는 국토환경계획 및 관리에서부터, 작게는 일상 삶의 질에 이르기까지 환경과 생태, 공원과 정원, 그리고 경관 등이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이 한껏 강조되고 있는 우리 시대에 국토교통부에 조경직 전문가가 전무하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는 곧 이 나라가 그런 부문의 새로운 기획이나 정책 발굴과 같은 심층적인 노력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만큼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위에 말한 공원녹지 관련 법제가 규제완화라는 명목으로 축소 조정되는 것이나 미집행 공원에 대한 일몰제가 심각한 과제로 불거지게 된 것, 국제정원박람회라는 중요한 사업을 국토교통부가 아닌 산림청이 주관하게 된 것, 그리고 정원 관련법을 산림청이 주도하고 있는 등의 작금의 현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 마디로 현 정부에서, 특히 국토교통부에서의 공원, 녹지, 정원, 생태환경 등에 대한 정책이 전문적 식견이나 장기적 비전은 커녕 현실적 문제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실정인 것이다.

우리 시대에 전문직의 역할은 단순히 해당 분야의 기술이나 지식을 동원하여 동 분야의 과제를 처리하는 것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제의 근본 원인과 문제 맥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변화 추세를 예측하여 현 단계에서 바람직한 방안까지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기후변화, 환경복지, 건강, 행복 등이 키워드로 대두된 동시대에 국가적 차원에서 이들을 다루는 정책의 주요 대상이자 주역으로서 조경의 의미와 역할을 발굴하고 제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나 지자체, 공공기관은 물론 국회, 지방의회 등에 공공환경 관련 전문가로서 조경인의 능력과 역할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조경의 공공성을 적극 알리는 한편, 기후변화와 탄소저감, 에너지와 환경복지, 건강과 행복 등을 지원하고 실현하는 핵심 전문분야로서 조경의 역할도 대내외에 보여 주어야 한다.

탈산업시대에 새로운 가치와 효용으로 주목받고 있는 정원박람회, 도시텃밭, 커뮤니티가든 등은 물론 최근 법제화된 국가공원, 국가정원 등을 국가적 관점과 비전으로 다룰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중앙정부 관련 부처에 조경전담부서와 조경직 공무원은 하루속히 설치되어야 한다. 이를 단지 조경인들만의 바람으로만 보는 것은 좁은 시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땅이 건강하고 지속가능하며, 공공성이 삶의 환경에서 제대로 유지하기를 바라는 모든 이들의 정당한 요구라고 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성종상(객원 논설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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