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속히 대피하십시오.”

어제(24일) 신문사가 입주해 있는 오피스텔의 안내방송 스피커에서 나온 말이다. 점심시간에 몇 번의 화재 경고 사이렌이 울려서 궁금하여 복도로 나와 보니 다른 사무실 입주자들도 궁금했던지 출입문을 열고 나와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창밖을 둘러보아도 조용해서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아서 사무실로 다시 들어갔다. 5분쯤 흘렀을까? 다시 사이렌 소리가 아까와는 다른 소리로 들리더니 곧이어 대피방송이 들린 것이다.

요즈음 하도 주위에 사고가 많이 생겨서 불안한 마음으로 경계를 하던 참인데 대피방송이 나오니 내게도 실제 상황이 생긴 것으로 짐작이 됐다. 원고 마감에 바쁜 기자들도 방송을 같이 들은 터라 혹시 모르니 속은 셈 치고 작성 중이던 기사는 저장을 하고 컴퓨터를 끄고 대피하자는 말을 했다. 최종으로 사무실을 나오면서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니 경고 시스템의 오작동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시스템의 오작동이라는 방송을 곧 이어서 했다고 하는데 신문사 직원들은 한 명도 듣지 못했다, 이번에는 오피스텔 방송 시스템의 오류였다. 사고가 아니어서 천만 다행이었지만 두 번의 화재 경고 시스템 작동에 놀랐고, 그 오작동에 대한 정정 안내 방송이 우리 사무실에는 안 들린 것에 화가 났다.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양치기 소년은 너무 유명하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인 “늑대가 나타났다”로 온 동네 사람들이 늑대를 쫒으러 뛰어나오자 이에 재미가 들린 소년이 거짓말을 반복하다가 진짜로 늑대가 나타났을 때는 아무도 소년의 말을 믿어주지 않아서 양들을 모두 잃었다.

두 번의 화재 경고 사이렌이 울리고 대피방송까지 겪은 신문사 직원들은 진짜 화재가 발생해도 양치기 소년 이야기처럼 경고를 무시하고 원고마감에 쫓겨서 컴퓨터 자판에 몰두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언론의 왜곡, 허위보도는 피해자에게 사업이 망하는 상황도 초래하고 심지어는 유명을 달리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SNS에서 양산되는 허위 비방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112나 119에 거는 장난 전화로 실제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늦게 대처가 되는 경우도 많다.

지금 온 국민을 공포에 떨게 만들고 경제에 찬물을 끼얹은 메르스 사태는 대한민국을 불신의 시대로 만들고 있다. 보건 당국의 초기 대응 부재로 인한 정보부족과 일부 환자들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서로를 믿지 못해서 이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방독면 같은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장소는 가지 않게 되고, 공공장소의 출입문은 손으로 열려고 하지 않는다. 메르스 자체보다 메르스 괴담이 더 문제가 되고 있다.

보건 당국의 발표와 말 바꾸기 그리고 삼성서울병원 등의 의료기관과 책임 떠넘기기는 메르스 대응에 대한 불신감을 키우고 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의 반복된 거짓말이 양들을 모두 잃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이야기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장래에 정직한 사회인으로 성장을 하게 하는 교훈적인 것이다. 그러나 양치기 소년에게 몇 번씩이나 거짓말로 농락을 당해도 계속 양치기 일을 하도록 놔둔 마을 주민들은 책임이 없을까? 아마도 잃어버린 양 중에는 자기 것도 있었을 것이다. 거짓말을 반복하는 양치기를 교체하지 않고 그냥 놔둔 마을 주민도 양을 잃은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지속적인 불신이 또 다른 불신과 재앙을 낳게 하니 참 어렵다. 불신을 넘어서는 방법이 진실과 정의의 결과라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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