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0일 MERS(중동 호흡기 증후군)가 우리나라에 발병한 이래 오늘로 36일이 지났다. 그동안 온 나라가 메르스 신드롬에 빠졌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5년 6월 25일 오전 9시 현재, 확진자 180명, 사망자 29명, 격리자가 3103명에 달하고 있다. 그간에 격리되었다가 해제된 사람이 1만1210명으로 발표되었다. 아직도 메르스 사태는 진정기미를 보이지 않고, 모두가 우려했던 지역사회 감염으로 확대될 조짐이 있어 불안을 더해가고 있다.

MESR-CoV는 중동에서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시작된 호흡기 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Coronavirus)의 약자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RNA virus의 일종으로 원래는 표면에 거친 돌기가 있어서 Ruff RNA

virus(R-RNA)라 불리었으나 그 모양이 개기일식 때 보이는 코로나와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별명이다. 바이러스 종류에는 크게 DNA 바이러스와 RNA 바이러스가 있다. DNA로 유전정보를 저장하는 DNA 바이러스에 비해 그보다 작고 덜 진화한 상태인 RNA 바이러스는 돌연변이가 일어날 확률이 1000배 이상 높다고 알려져 있다. 2013년 살인진드기 공포를 몰고 온 SFTS, 2014년 아프리카를 비롯하여 온 세계를 뒤흔든 에볼라 바이러스, 국내 축산업계에 큰 타격을 주었던 AI 바이러스와 구제역 바이러스, 그리고 2015년 한국에 현재 진행 중인 메르스 바이러스 등이 모두 RNA 바이러스에 속한다. DNA 바이러스에는 헤르페스 바이러스와 간염 바이러스 등이 있다.

1893년 러시아 이바노프스키가 처음 발견된 바이러스(담배모자이크바이러스)는 인류에게 알려진지가 불과 120년 밖에 안 된 신참 병원균이다. 그러나 우리가 정체를 알 수 없었을 뿐 과거 인류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역병의 상당수가 바이러스가 원인이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즉 바이러스성 질병이 현대에 느닷없이 나타난 새로운 질병이 아니라 인류 역사와 늘 함께해 왔던 오래된 병원균이라는 사실이다. 인류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지구에 존재해왔던, 아니 생물학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생명의 역사 40억 년의 첫 페이지 첫 문단쯤에 등장하는 원초적 존재로 보아야 할 것이다.

바이러스는 생명체가 아니다. 또한 무생물도 아니다.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에 위치한 반 생명(半 生命)체가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살아있는 생물의 특성은 대사(代謝)와 생식(生殖)이다. 대사란 개체의 존속을 위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영양을 섭취하고 찌꺼기를 배설함이고, 생식이란 자신의 DNA와 같은 2세를 복제하여 생명이 이어지도록 함이다. 이 두 가지 필요충분조건에 맞아야 비로소 생명을 가진 존재 즉 생물이라 부른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대사의 능력은 전혀 갖추지 않은 채, 자기 복제능력만 갖춘 불완전한 존재다. 생물도 아니고 무생물도 아닌 반생물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바이러스를 죽일 수 없다. 생명이 있어야 생명을 빼앗을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구제역이나 AI 바이러스의 방역책으로 숙주인 가축을 살처분 하여 땅속에 묻어두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살아있지도 않은 존재이니 죽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메르스의 경우에 숙주가 사람이 되었으니 살처분을 사람에게 적용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들은 지극히 단순한 RNA 염색체 상태로 존재하며 이 염색체 타래를 보호하는 외피를 둘러쓰고 있는 모습인데, 이를 확대해 보면 SF영화에 등장하는 운석이나 혜성 잔해물처럼 표면이 거칠거칠하고 돌기 같은 것이 돋아나 있는 형태인 것이다. 여기서 잠시 옛날 생물시간으로 돌아가 DNA와 RNA에 대해 정리해보자. DNA는 살아있는 세포의 핵막 속에 존재하는 염색체를 구성하는 물질로서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프로그래머라 할 수 있다. 모든 생명체가 각기 조금씩 다른 고유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이 정보는 각각의 세포를 어떠한 세포로 만들 것인가와 전체적인 모습과 기능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정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우리 몸에 필요한 단백질을 적재적소에 만들기 위한 정보인데, 이를 위해서 누군가가 DNA가 지령한 정보를 해석한 뒤, 단백질을 만드는 공장에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 역할을 하는 자가 RNA이다. 즉 설계자가 DNA라면 이를 공장에 전달하는 자가 mRNA(m=messenger,전령)이고, 재료를 운반해주는 자를 tRNA(t=transfer)라 한다. 이에 따라 단백질을 생산하는 공장은 리보솜(Ribosome)이라는 세포 내 소기관이다. 세포내에는 기본적으로 중심에 핵이 있고,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소 역할을 하는 미토콘드리아가 200~400개 있고, 여러 개의 리보솜이 있으며, 세포 형태를 지탱하는 세포골격역할을 하는 섬유질도 있고 소포체와 골지체등이 있다. 이들은 지난 40억 년 동안 부단히 최적의 생명을 유지하도록 진화하여 현재의 다양한 생명체들을 이루고 있다. 생명의 역사에서 최초의 기적인 진핵세포의 탄생은 아메바와 비슷한 단세포 생물이 세균의 일종인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를 체내에 끌어들여 세포 내 공생을 이룬 사건이다. 독립적이 생명체인 시아노박테리아가 다른 단세포 생물의 몸에 들어가 세포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가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핵세포(eukaryoic cell)의 기원이다. 스스로 광합성을 하여 태양에너지를 유기영양물로 환원시키는 기능을 발전시킨 세균인 시아노박테리아와 단세포 생물의 M&A는 비로소 무한한 생명의 진화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진화의 원동력이 된 이 진핵생물은 그 후 생존전략에 따라 식물과 동물로 큰 갈래를 나누어 진화하였고, 따라서 식물세포의 핵심 기관인 엽록소도 그 기원은 시아노박테리아인 것이다. 인류 조상도 거슬러 올라가면 이 진핵세포에 다다르게 된다. 진화 초기에 존재하였던 시아노박테리아는 오늘날도 지구상에 존재하며 우리가 녹조라고 부르는 남조류의 한 종류이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이들은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생물이다. 여기서 한마디 덧붙이면, 그래서 녹조가 반드시 인간이 퇴치해야만 할 공적은 아닌 것이다. 단지 인간과 공존할 수 있도록 관리가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다시 메르스로 돌아가서 이 R-RNA바이러스는 스스로 대사기능이 없기 때문에 공기 중에서는 48시간 이내에 무력화 되며, 스스로는 자기복제도 하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지만, 그 이전에 자신이 최초 발생했던 원시지구상태와 비슷한 환경인 동물의 체세포(숙주) 내에 들어가면 비로소 활동을 개시한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의 크기는 1~300nm(1nm=1/10억m)로 매우 작은데, 메르스 바이러스는 80~160nm 정도의 크기로서, 세포크기의 수십만 분의 1 정도 크기다. 이들이 어떤 경로를 통하여 살아있는 숙주 세포 내에 침투하면 세포 내 영양물질을 취득하여 활발한 자기 증식을 시작한다. 숙주세포는 자기 고유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밖에서 이상한 놈이 침투하여 영양분을 빼앗아 가며 빠른 속도로 증식하니 몸이 아프기 시작하는 것이다. 심지어 숙주세포가 자기복제를 할 때 염기서열의 아무데나 가서 붙어 엉뚱한 정보를 제공하게 되어 정품을 만들지 못하고 불량품을 만들게 훼방을 놓아 우리 몸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다행히 우리 몸에는 외부 병원균을 골라 퇴치하는 면역시스템이 잘 되어있어 건강한 사람이면 초기에 집중적으로 메르스 바이러스를 퇴치하기도 하지만, 일시에 다량의 바이러스가 들어오거나, 노인이나 환자처럼 면역력이 떨어진 경우에 치명적이 되는 것이다. 이때 고열이 나는 것은 면역시스템을 고효율로 높이기 위한 우리 몸의 적절한 대응이며, 기침과 설사가 나는 것은 우리 몸의 세포 중 직접 외부와 접촉해야하는 폐 세포와 소화기 세포가 1차 공격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엉뚱한 RNA를 전달해 정상적 세포설계를 훼손했을 때에도 우리 몸에는 DNA 복제에서 오류가 난 것을 수리하는 기능이 있어서 다행이다. 실제로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는 체세포의 자기복제과정은 매우 정교하고 복잡하여 때때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를 찾아내 잘못된 부분을 떼어내고 새로 만들어 붙이는 자기수리시스템이 있어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우리 몸의 DNA 복제기능은 40억 년 동안 끊임없이 기술진보를 해온 고도의 신비스런 최첨단 생산시설인 것이다.

지난 36일간의 메르스 난리를 겪으면서 마침 수생태공학의 기초분야였던 환경미생물학과 분자세포생물학을 공부했던 짧은 지식으로 생각나는 몇 가지 기본적 지식들을 정리해 보았다. 이번 사태의 흐름을 보면서 메르스와 같은 반 생명체인 바이러스를 방어하고 퇴치하는 데는 정치공학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엄연한 진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과거에 치명적인 역병이라 불렸던 이러한 감염병들은 현대문명사회에 사는 인류에게는 더욱 위험할 수 있다. 인구의 도시 집중현상과 교통수단 발달로 과거보다 전파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접적 퇴치가 불가능한 원시 반생물인 바이러스를 어찌 인간사회의 정치적 판단으로 방어할 수 있겠는가? 청와대 수뇌부에 미생물을 전공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더라면, 아니면 전문가 자문을 겸손하게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사태가 여기까지 왔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번 사태야 앞으로 한두 달 지나면 진정되겠지만 나라 전체에 끼칠 직접적 경제손실과, 불특정 다수 중에서 희생자가 나온 것에 안타까움이 든다. 앞으로도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은 더욱 빈번해질 개연성이 있고, 독성이나 전파력이 강한 새로운 종이 나타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교훈으로 우리의 공공 의료정책과 방역체계의 허점을 보강하고 감염병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시민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권오병 집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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