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미국에서 날아온 2명의 한국 수학 천재 학생 소식이 화제가 됐다.

첫째는 남들은 대학에 입학할 나이인 19살 한인 대학생 김준식군이 미국 워싱턴대를 수석 졸업하는 영광을 차지했다는 소식이었다.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그는 고등학교 때 워싱턴대의 ‘청년학자 아카데미’에 합격을 해서 15살에 대학을 진학했고 이미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석·박사 통합과정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앨빈 로스 박사 지도를 받을 예정이다. 오랜만에 한국인 천재 출현 소식에 한국인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또 하나는 미국 버지니아 주 토머스 제퍼슨 과학고에 재학 중인 김정윤양이 미국 명문 대학인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에 동시에 합격해 두 대학을 2년 씩 모두 다니게 됐다고 했다. 국내 거의 모든 언론들이 이 천재 소녀의 화려한 등장을 떠들썩하게 보도를 했고 어느 종편 방송에서는 재빠르게 김 양과 전화 인터뷰로 대화까지 하면서 한국인의 우수성과 자긍심을 높여주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 후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자 전직 언론인인 그의 아버지가 대학에서 보냈다는 전자우편을 공개하며 진실 공방에 불이 붙었고 사태가 점점 커지더니 종국에는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의 하나인 허언증에 집착된 어린 소녀의 사기극으로 끝났다. 여기에 확인도 안하고 칭송 보도한 한국 언론은 국제적 망신을 사게 됐다.

리플리 증후군은 미국의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쓴 소설 ‘재능있는 리플리 씨(The Talented Mr. Ripley)’에 나오는 주인공인 톰 리플리의 행동에서 나온 말이다. 소설 주인공은 재벌의 아들인 친구를 죽이고 죽은 친구로 신분을 속여 그의 인생을 대신 살아가는데, 거짓을 감추기 위한 거짓말이 점점 대담해져서 완전범죄로 가는 듯 했으나 진실이 드러남으로써 종말을 고하게 된다는 스토리다.

리플리 증후군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부정하면서 상상하는 허구의 세계를 진실로 위장하여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뜻한다. 우리나라에도 2007년 신정아의 학력 위조 사건을 비롯해서 유명 영어강사, 방송인 등이 무더기로 노출되어 여기에 해당이 됐다. 학벌 위주의 한국 사회의 병폐가 낳은 부끄러운 사건이었다.

이번에 김 양의 사건을 두고 지나친 경쟁이 아이를 극단적으로 몰고 갔다는 동정론과 명문대 입시에 얽매인 강박적 교육 환경이 만든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반드시 치유해야할 중병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가 이문열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시골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어린이들 사이에 형성된 절대 권력과 허구성이 일정기간 유지되다가 종국에는 그 권력이 몰락해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리플리 증후군의 단면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리플리 증후군과 전혀 무관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필자는 단연코 누구나 리플리 증후군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고 본다. 사물이나 일을 지나치게 과장하여 믿음성이 없는 말이나 행동을 말하는 허풍과 그 허풍이나 거짓말 따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인 ‘뻥’을 한 번도 쳐본 적이 없는가 말이다. 살면서 속마음과 다르게 체면치레를 하거나 체면이 사나워져본 적이 누구나 있었을 것이다.

짧은 시간의 영웅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어린 소녀의 일탈을 보면서 너무나 쉽게 확인없이 열광한 언론과 매몰차게 돌아서는 어른들이 부끄럽다. 이제 치유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 치유를 흙에서 찾는다면 더없이 좋겠다.

 

▲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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