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승] 뛰어난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문화유산
[한국의 명승] 뛰어난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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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16
  • 호수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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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편> 가야산 해인사 일원(명승 제62호)
▲ 가야산과 해인사 전경 <사진제공 문화재청>

‘가야산 해인사 일원’은 국내 제일의 법보사찰인 해인사가 정연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매우 웅장하게 건립되어 있는 전통적인 고찰로서, 해인사에는 부속암자인 원당암을 비롯하여 홍제암·용탑선원·삼선암·약수암·국일암·지족암·희랑대·청량사 등이 있다. 이들 부속암자는 가야산의 기암괴석, 소나무 숲과 어우러져 뛰어난 경승을 이루고 있다.

경남 합천군에 있는 가야산은 한국 12대 명산의 하나로서 예로부터 조선 8경에 속한다. 주봉인 우두봉(상왕봉)을 중심으로 암봉인 두리봉과 남산·비계산·북두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산들이 이어져 있다. 가야산은 높이가 해발 1430m이며, 우뚝하고 기이한 모습을 자랑하는 돌과 물, 소나무 숲 등은 가야산 특유의 자연경관을 나타내고 있다.

가야산은 소의 머리와 그 모습이 비슷하다고 하여 우두산(牛頭山)이라고 불렀으며, 상왕산·중향산·지달산·설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야산이라는 이름은 옛날 가야국이 있던 이 지역에서 가장 높고 훌륭한 산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야의 산’이라는 뜻으로 부른 것이라고 전해진다.

해인사는 여러 차례 불이 나서 건물 대부분이 타버렸고, 지금 건물들은 대부분 조선시대 후기에 세워졌다. 해인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로서, 신라 애장왕 때 고승인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우두산에 초당을 지으면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애장왕비가 등창이 났을 때, 선정에 들었던 두 스님이 병을 낫게 해주었는데 이에 감동한 왕은 가야산에 와서 원당을 짓고 정사를 돌보며 해인사 창건에 착수하게 하였다고 한다. 순응이 절을 짓기 시작하고 이정이 그 뒤를 이었으며, 결언대덕이 이어받아 절의 주지가 되었다. 918년 고려를 건국한 태조는 당시 주지 희랑(希郞)이 후백제 견훤을 뿌리치고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이 절을 고려의 국찰로 삼아 해동 제일의 도량이 되게 하였다.

1398년(태조 7)에 강화도 선원사에 있던 고려팔만대장경판을 지천사로 옮겼다가 이듬해 이곳으로 옮겨와 호국신앙과 관련된 가람으로서 법보사찰이 되었다. 그 후 해인사에는 세조가 장경각을 개수하고 확장하였으며, 조선 성종 때는 가람을 대대적으로 증축했고, 근세의 해인사는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이 사찰은 창건 이후 일곱 차례의 대화재를 만나 그때마다 중창되었는데, 현재 건물들은 대부분 조선 말엽에 중건한 것들로 50여 채에 이르며 창건 당시 유물로는 대직광전 앞뜰 3층 석탑과 석등이 있다.

현재 해인사 안에는 고려 고종 23년(1236)에서 1251년까지 15년간에 걸쳐 완성된 호국안민의 염원이 담긴 고려대장경판(국보 제32호)이 있다. 그 밖에 해인사 장경판전(국보 제52호), 반야사원경왕사비(보물 제128호), 해인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264호),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보물 제518호), 합천 치인리마애불입상(보물 제222호) 등이 있다.
뛰어난 가야산 자연경관과 역사의 숨소리가 살아 있는 해인사 지역 문화유산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 해인사 전경 <사진제공 문화재청>


<자료제공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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