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18일 문을 연 서울숲이 개원 10돌을 앞두고 있다. 이 기간의 거의 절반은 숲 가꾸기가 중심이 되었다면 최근 수년간은 시민들이 함께하는 숲의 운영과 관리에 방점이 찍혀있다. 이 모든 활동의 중심에는 시민단체인 (재)서울그린트러스트가 있다.
이강오 서울그린트러스트 사무처장은 과거를 돌아보며 “이제는 공원 조성 시대가 아니라 운영과 경영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이미 서울시의 공원은 2700여 개에 이르고 있다. 새롭게 조성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운영하고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강오 사무처장은 공원의 수준과 질은 ‘행정’이 아닌 ‘시민들의 손끝’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숲을 비롯해 서울의 녹지와 공원 환경 등을 바라보는 서울그린트러스트의 시선을 이강오 사무처장 인터뷰를 통해 짚어봤다. 5월 28일 서울숲 방문자센터에서 만난 이 사무처장은 서울시가 ▲현장 중심의 행정으로 전환 ▲미집행공원 문제 해결 ▲녹색 인프라의 유기적 관리 등 숙제를 안고 있다고 봤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서울그린트러스트가 함께 협의하고 풀어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장기적으로 서울그린트러스트는 도시공원의 중요성과 사회적 가치를 인식시키는 ‘파크무브먼트’ 등의 운동도 계획하고 있다.
그는 또한 인터뷰 중 녹지 확산과 관련 조경계가 공원 ‘리모델링’이 중요해지는 시점을 앞두고 공원 운영관리를 함께 고민하고 시민들 참여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사무처장은 조경계의 협업 방안으로 마을조경가 등 활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고령화와 저출산, 높은 자살률, 양극화, 가계부채, 청년실업 등 한국이 안고 있는 문제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야말로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이강오 처장은 “힘든 사회에서 오히려 공원이나 정원이 위험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원의 변화가 도시로 확장되고 지역으로 퍼져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 서울그린트러스트의 바람이다.
다음은 이강오 사무처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서울그린트러스트가 최근 진행하고 있는 주요 사업은?
첫 번째는 기업과 함께 숲을 만들어 가고 있는 사업이다. 유한킴벌리, 하나투어 등 여러 기업과 최근 3년간 한강을 중심으로 숲을 만들어가고 있다. 두 번째는 서울숲에서 지속해서 시민들이 참여하고 봉사하는 사업이다. 지난해만 4000여 명이 약 5만 시간 동안 자원봉사를 했다. 지금 새롭게 집중하는 것은 ‘도시정원사’를 키우는 것이다. 1년에 30명 정도가 교육을 받고 있는데 이분들이 교육을 받고 가정과 도시에서 새로운 기운을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시민이 참여하고 배우면서 도시 전체의 가드닝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은 사람이다. 정책이 아니라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 그 일을 서울숲이 하고 있다.
지속해서 하는 사업과 신규 사업을 구분해 본다면?
2007년부터 동네 숲 운동을 해오고 있다. 초기에는 주로 숲을 늘리는 작업을 많이 했다. 지금은 28개 만들어 놓은 동네 숲을 지켜보고 지속해서 어떻게 관리해야 할 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지역 주민이 본인 삶의 터와 동네를 바꿔나가야 한다. 사실 이건 단순히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 습관이나 삶의 방식을 바꾸는 문제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 서울그린트러스트는 주민 스스로 골목을 바꾸고 자생적인 역량을 키우는 데 노력하고 있다. 열린 정원 등 프로그램도 그런 노력의 하나다. 사람들이 이제 ‘지역을 우리가 가꿔야 하는구나. 행정에서 해주는 게 아니구나’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유한킴벌리 기금으로 ‘나꿈커 기금’ 지원도 시작했다.(도시에 녹색 공간을 만들고 가꾸는 시민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기금, 올해 6개 정원에 각 500만 원 지원)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최근 그린트러스트 활동이 조금 달라진 것 같은데?
전에는 ‘큰 공원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주겠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사람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공원의 가치를 높이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을 바꿨다. 사실 공원이 있다고 그 지역이 훌륭해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잘 관리된 공원만이 지역의 가치를 높여주고 지역을 안전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한 계기가 있다면?
1980~90년대 성장한 사람들과 소위 ‘386’, ‘486’ 이렇게 불리는 그룹들은 ‘한국사회를 바꿔보겠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었고 시민운동도 그렇게 진행됐다. 바꿔보겠다고 공원을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들기는 했는데 시민들이 더 참여하지 않고 늘어나지 않았다. 사회적인 변화나 가치관의 변화를 읽으면서 사회운동도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와 시민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궁극적으로 보면 한국사회가 오래전부터 이뤄졌던 통치사회에서 이제는 자치사회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공원 같은 공공시설이 과거에는 정부에서 만들어 준 것이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게 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모두가 다 주인인 셈이다. 주인으로서 행동하도록 하는 것을 어떻게 끌어낼 것이냐가 시민단체의 숙제다. 시민들에게 공원을 조성해주고 칭찬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안에 숨어있는 것은 공원의 주인이 당신이라는 것이다.
서울시와 함께 진행하는 사업과 현재 진행 상황은?
개인적으로나 서울그린트러스트 이름으로 노들섬 등에 자문을 하고 있고 깊이 개입하고 있지는 않지만 서울역 고가 등 사업에도 의견을 내고 있다. 서울숲 관련 사업도 여전히 같이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시와 함께하는 일은 조금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왜냐하면 서울시가 시민단체처럼 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건 일단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단체는 행정보다 한 발짝 앞서 나가 방향을 찾아내는 일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서울시와 협력하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한다. 길게 생각해보면 이 과정에서 서로 발전하지 않을까.
서울시의 녹지 정책과 관련 주요 과제는 무엇인가?
첫 번째는 이미 있는 2700여 개 공원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공원 행정을 훨씬 더 현장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원의 수준과 질은 행정이 아닌 현장에 있는 사람들 손끝에 달려 있다. 두 번째는 미집행공원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하는 것이다. 미집행공원을 어떻게 할지가 현재는 최고 숙제다. 서울 시장은 한 평의 공원도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로 알고 있다. 꾸준히 예산을 편성해 매입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등의 방안이 있는데 이게 결국은 행정의 힘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고 시민들이 나서서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새로운 정책 전망을 내놓는 것이 서울시가 가지고 있는 세 번째 과제 같다. 앞으로는 생물 다양성 등이 중요해질텐데 그런 측면에서 서울의 세 가지 녹색 인프라(산, 강·하천, 공원)를 통합적이고 유기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서울그린트러스트의 역할은?
시민들이 공원을 이용하도록 하고 스스로 운영, 관리할 수 있도록 해 공원의 수준을 함께 높여가는 일을 현재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해야 한다. 그린트러스트가 함께 협의하고 풀어가야 할 문제 중에서 미집행공원 문제가 가장 큰 숙제다. 그린트러스트가 시민들 힘을 모아내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북미 같은 곳에는 ‘파크무브먼트’라고 공원운동이 존재한다. 이건 도시공원의 중요성과 사회적 가치를 인식시키는 일인데 이것이 시민참여나 예산, 기부금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이 되고 있다. 이건 시민단체만 하는 게 아니라 공무원도 함께 참여해서 하는 일이다. 현재 우리는 이런 운동이 없는데 긴 미래이기는 하지만 이런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이제는 공원이 단순히 녹지 공간으로서만 기능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공원이 가치가 있는 것을 녹색이 보여줘야 한다. 녹색이 도시를 변화시키고 재생할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녹색이 도시를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조경가들과 협업할 내용이 있을까?
이 일은 단순히 조경문화의 성장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좋은 일이기 때문에 조경가들이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일 같다. 조경계에서 좋은 디자인은 기본이어야 하고 국내 공원 경영이나 운영 관리 등에 새롭게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뉴질랜드, 호주, 일본 등을 중심으로 IFPRA(국제공원레크리에이션행정연맹)가 있는데 최근 이 조직이 이름을 월드어반팍스(World Urban Parks)로 바꿨다. 일종의 애드버카시(Advocacy·옹호) 운동을 하는 것이다. 공원의 가치를 홍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려면 공원의 가치에 대해 연구가 돼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우리는 너무 자료가 없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연구가 우선이다.
구체적으로 풀어 얘기한다면?
외국 같은 경우 커뮤니티가든 등에 조경가들이 진짜 열심히 들어온다. 시민들이 텃밭을 가꾸는 곳에서 경관을 변화시켜줄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주어진 공간의 조경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의 또 다른 영역에서 조경가들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 도로도 조경가들이 손대면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조경계에서 도시에 대한 접근을 높여야 한다. 조경과 숲, 공원, 정원이 도시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얼마전 건축가 한 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성수동의 집을 고치는 역할을 자기가 하겠다며 마을건축가가 되겠다고 하더라. 그런 것처럼 마을조경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마을조경가가 일관된 특성을 가진 정원과 조경을 보여주고 그것이 공간을 바꿀 수 있는 무기라는 것을 보여준다면 의사결정자를 이해시킬 수도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서울시 공원 총감독이 있는 것처럼 구청에 원예나 조경 관련 일종의 헤드가드너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운영 및 관리에서 조경 분야의 역할은?
공원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조건이지 필수조건은 아니다(의식주에 비하면). 하지만 어느 시대에는 필요조건이 아니라 필수조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회적 의제나 이슈를 공원이 잘 이해하고 어떤 역할을 해줘야만 가능할 것이다. 항상 위기는 기회다. 안 그래도 문제가 많고 힘든 사회에서 ‘도시공원을 만드는 것이 필수적인가?’, ‘공원이 이미 포화상태인데 비즈니스가 가능한가?’ 이런 물음에 역발상을 해보면 어떨까. 공원이나 정원만이 이런 위험한 사회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고 실제로 보여줄 수도 있다. 이제는 조성의 시대가 아니라 운영과 경영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운영과 경영을 해야지 리모델링도 할 수 있다. 앞으로 리모델링이 중요해질 텐데 조경계에서도 이 부분을 함께 고민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