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승] 경승지 암곡에 세워진 조선시대 별서
[한국의 명승] 경승지 암곡에 세워진 조선시대 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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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5.11
  • 호수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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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편-16> 예천 초간정원림(명승 제51호)
▲ 예천 초간정(명승 제51호) 전경 <사진제공 문화재청>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예천읍에서 문경방향 약 12km지점에 송림이 울창하고 기암괴석 사이로 계류가 흐르는 경승지 암곡에 세운 초간정은 본가에서 약 2km 떨어져 있는 초간 권문해 공의 별서이다.

그는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선조24년 사간이 되었으며 49살에 벼슬을 마다하고 낙향하여 이 초간정사를 지었다 한다. 선조 25년(1592) 일어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광해군 4년(1612)에 고쳐지었다. 이때에는 석조헌, 화수헌, 백승각 등 건물이 함께 있었지만 모두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으로 다시 불타 없어져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선생의 원고 등을 보관하기 위해 고종 7년(1870) 후손들이 권문해의 유고(遺稿)를 보관하면서 기와집을 짓고 초간정을 계승하였다고 한다. 그 후 후손들이 중창하였으며 문집에 ‘초간집(草磵集)’이 있었고 ‘초간일기’에는 초간정 조영에 대한 사실이 남아있다. 도승지 소고(嘯皐) 박승임이 ‘초간정사(草澗精舍)’현판을 썼고, 남야(南野) 박손경(朴遜慶)이 중수기를 써서 걸었다. 현재 부속건물은 모두 없어지고 정자와 현판만 남았다.

건물 구성은 매봉과 국사봉 사이로 해서 동남 방향의 예천읍으로 흐르는 금곡천가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수령이 오래된 수림사이로 거대한 암반위에 조선 시대의 정자 초간정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정자 아래에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자연암반을 이용하여 그 위에 막돌로 기단을 쌓고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앞면 왼쪽 2칸은 온돌방이고 나머지 4칸은 대청마루로 4면에 난간을 설치해 두었다.

주변은 소나무를 비롯한 여러 나무들이 울창하며 초간정을 에돌아 흐르는 냇물은 깊고도 맑다. 초간정은 조선시대 사림의 은일(隱逸)생활과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바탕으로 하는 선조들의 자연관을 보여주는 명승지로 바위를 휘돌아 흐르는 계류가 시원한 운치를 자아내는 등 경관적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자료제공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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