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병(아썸 회장·생태학박사)

태양계에서 생명이 살 수 있는 행성은 지구뿐이다. 태양계에서 액체상태의 물이 존재하는 행성도 지구뿐이다. 즉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의 첫째는 물이다. 그래서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라는 절대명제가 성립한다. 나아가 “물은 생명 그 자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산소원자 하나와 수소원자 둘로 구성된 지극히 단순한 분자구조를 가진 이 물질이 생명에게는 지구상의 다른 모든 물질을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한 존재이다.

지구의 탄생초기부터 존재해온 물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아마도 대부분이 얼음덩이와 먼지로 구성된 혜성들이 지구와 충돌하면서 생겨났을 것이다. 즉 우주로부터 날아온 것으로 물질인 셈이다. 이 얼음덩이들이 태양계 내에서 절묘하게 Habitable Zone(생명가능구역)에 공전궤도를 가진 지구의 표면에서 액체상태의 물로 존재하게 되어 현재 “생명이 살 수 있는 행성”이 된 것이다.

지구 내의 물의 총량은 지질시대 이후 거의 변함이 없다.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자체재생산이 가능한 핵심자원이 물인 것이다. 지구의 지속적인 물 순환 시스템 덕분에 자연적인 생태계가 회복되고 인류의 문명도 지속될 수 있었던 셈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물의 총량은 늘 일정한데, 지구 전체의 수량에 비하면 정말 적은 양에 불과하여 오늘날까지 인류의 삶을 지탱하기에 충분했다. 물은 오염되기도 하고 증발, 강우 등으로 순환하기도 하지만 결코 파괴되거나 새로 창조될 수는 없다. 단지 움직일 뿐이다.

지표면의 70%를 덮고 있어서, 지구를 우주에서 보면 에메랄드빛을 내는 보석 같은 행성으로 만든 물은 지구 상에 얼마나 있을까? 대략 14×10^17(10의 17승)톤 정도로 추정하고 있고, 만약 지구표면이 공처럼 고르게 평평하다고 가정하면 지표면을 덮고 있는 물의 깊이는 3,700m가 될 것이다. 무게는 지구상의 모든 바위 무게의 절반 정도이고, 지구 지각 무게의 약 5%에 해당한다. 이 중에서 해수가 전체의 97%이상이고, 담수는 고작 3%에 지나지 않는다. 그중에 담수의 75%가 빙하나 극지의 얼음상태로 존재하고, 나머지의 대부분은 지하수로 존재한다. 인간과 동식물들이 사용 가능한 하천과 호소의 총량을 더해봐야 고작 담수의 0.26%에 지나지 않는다. 달리 표현하면 지구 전체의 물을 5리터 용기에 담는다면, 육상생태계가 이용 가능한 담수는 찻숟가락 하나 정도이다. 즉 인류가 사용가능한 담수의 총량은 연간 약 3만 4천㎦에 불과하다.

문제는 인류가 이미 그 총량의 절반 이상을 사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남은 절반의 물은 대부분 이용하기 거의 불가능하거나 이용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것들이다. 그런데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하여 인류의 물 수요는 1950~90년 사이에 이미 3배나 증가했고, 2025년 까지 다시 2배가 증가할 전망이다. 따라서 생태계 안에 존재하는 물을 8백만 종 중의 1종에 불과한 인간이 거의 모든 물을 다 사용하게 되면 나머지 생명체들의 어찌될 것인가? 아마도 인간이 쓰고 난 나머지 물을 운 좋게 얻어 쓰거나, 인간이 버린 폐수에 적응한 일부 종들 외에는 멸종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의 생태학자들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300년 전부터 이미 지구생명의 대량멸종(제6의 대량멸종)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고 걱정스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옛말에 “내 논 물꼬에 물 들어가는 모습”과 “내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은 같은 비유로 쓰였다. 가뭄 끝에 단비가 오면 농부들은 새벽부터 물꼬를 지키러 나간다. 만약 강수량이 부족하여 해갈이 되지 않으면 이웃 간에도 싸움이 나기 일쑤였다. 논에 물을 적절히 확보하지 못하면 농사에 치명타를 입게 되고, 이는 곧 가솔의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1894년 동학혁명의 직접적인 동기도 만석보의 물을 둘러싼 고부군수와 농민들의 갈등에서 비롯된 물 전쟁의 양태를 띠고 있다. 생존의 절대요소인 물을 둘러싼 갈등은 지역 간, 국가 간 이념전쟁보다 훨씬 뜨거운 불씨로 오늘날에 도처에 산재해 있다.

1967년 6월에 일어난 3차 중동전쟁의 직접적인 발발은 요르단 강의 물을 둘러싼 수자원 확보전쟁이었다. 물이 절대 부족한 이스라엘,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은 요르단 강을 사이에 놓고 오래전부터 갈등을 빚어왔다. 요르단 강의 수량은 제한되어 있고 각국의 물 수요는 크게 늘어나자, 급기야 물을 확보하려는 싸움이 국가 간의 전쟁으로 번진 사례이다.

요르단 강의 상류에 시리아가 자국의 물 확보를 위하여 댐건설을 강행하자 하류에 위치한 이스라엘은 즉각 폭격기를 출격시켜 댐을 파괴해버렸고, 이것이 3차 중동전의 시작이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정전협정의 약속을 어기고, 1981년 강의 상류 발원지인 골란고원을 합병해버렸다. 그 후 1982년에는 서부 레바논을 침공하여 더욱 확실히 요르단 강의 통제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건조기후의 악화로 인한 요르단 강물의 절대량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전쟁과 폭력의 힘으로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는 물 전쟁은 어떠한 평화협정도 불가능한 사태에 이르러 있다. 이스라엘에 의해 장악된 요르단 강물은 인접국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팔레스타인국민들이 간신히 음용수를 공급받는 정도에 그치고 있어 어떠한 산업화도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 있다.

4대 문명의 발상지였던 이집트의 나일 강, 모든 강들의 아버지이며 문명의 근원인 나일 강도 예외일 수 없다. 길이가 6800km에 이르러 지구상에서 가장 긴 강인 나일 강은 케냐와 우간다에 걸쳐있는 빅토리아 폭포에서 발원한 백나일과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발원한 청나일이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서 합쳐져 이집트와 수단의 경계에 걸쳐있는 아스완 하이댐으로 흘러든다. 전 국토의 98%가 사막인 이집트는 겨우 2%에 해당하는 나일 강가의 땅에 8천만 인구가 몰려 살고 있다. 이들에게 나일 강은 생명 줄이나 다름없다.

1959년 이집트는 수단과의 협정에 따라 1년에 550억 톤의 물을 할당받았으나, 1998년 이집트의 물 수요는 이미 680억 톤을 넘어섰으며 현재의 수요는 800억 톤을 넘어서고 있어, 모든 물을 두 번 이상 사용하는 등 거의 이스라엘 수준의 물 사용 효율을 높여 가까스로 버텨가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일 강의 상류에 위치한 수단과 에티오피아가 가난과 내전으로 피폐해 있어 관개수로 등 물 사용 시설을 할 수 없는 형편이라 근근히 현상유지를 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에서도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나일 강의 강물을 상류의 수단이나 에티오피아에서 과다하게 갈라 쓸 때는 어김없이 정벌에 나서 관개수로와 보를 가차 없이 파괴했던 기록이 있다. 오늘날도 수단과 에티오피아의 지도자들이 나일 강의 상류에 자국의 경제개발을 위해 댐을 건설하려하거나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려 하면 이집트는 즉각 폭격기를 동원하여 파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터키, 시리아, 이라크, 이란의 국경이 서로 얽혀있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역시 복잡한 중동 정세의 핵심적인 갈등요소로서 물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강의 상류에 위치한 터키는 GAP(아나톨리아 남부개발계획)에 의거, 22개의 댐을 건설하여 170만 헥타아르의 황무지를 농경지로 개간하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는 유프라테스 강물의 40%를 줄어들게 하여 중류의 쿠르드족과 시리아에게는 치명적 위기를 초래할 것이고, 하류의 이라크는 80~90%의 수자원을 잃게 될 것이다. 서로 물고 물리는 강을 둘러싼 터키와 시리아, 시리아와 이라크의 이해관계는 알라신도 해결할 수 없는 난제인 것이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도 오래된 물 싸움의 갈등이 있다. 미국 서부의 콜로라도 강과 중부의 리오그란데 강을 둘러싼 갈등이다. 대공황이후 뉴딜정책으로 알려진 콜로라도 강 협곡에 건설한 글랜 캐념댐과 후버댐 등은 라스베거스, LA 등 캘리포니아의 주요 대도시들 3천만 명의 인구에 대량의 물을 공급하는 한편, 애리조나의 사막지역에 관개수로를 건설하여 거대한 농경지를 만들었다.

그 결과 맑은 물이 넘실대며 흐르던 콜로라도 강 하구는 말라버렸고, 세계 4대 어장의 하나였던 멕시코의 켈리포니아만의 황금어장은 황폐화되었다. 또한 중부의 뉴멕시코주를 가로질러 텍사스와 멕시코의 국경을 이루는 리오그란데 강을 둘러싼 물 전쟁의 역사는 200년에 걸친 뿌리 깊은 분쟁과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 외에도 인도의 갠지스 강과 인더스 강을 둘러싼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와의 물 분쟁도 피로 얼룩진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의 역대 왕조들도 강물을 사이에 두고 물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의 역사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리나라도 최근 북한강 상류 북한 쪽의 금강산댐과 임진강 상류의 황강댐 건설이 하류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예민해 있는 실정이나 다른 나라의 사정에 비추어보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강물의 우선 사용권을 둘러싼 분쟁은 철저히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생존권이 걸린 너무나 큰 이해관계이기 때문에 협상에 의한 해결책은 거의 없다. 오직 전쟁과 군사력에 의한 균형 밖에는 방법이 없음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예부터 치산치수(治山治水)는 통치자의 으뜸가는 덕목이었지만 오늘날처럼 인구과잉과 농업뿐 아니라 산업발달에도 물의 수요가 급증한 시대는 없었다. 비록 현재 중국이 중앙집권화된 통일 국가체제로서 물 문제를 관리하고 있지만, 필자가 50여 차례 중국의 여러 지방을 다니며 수질과 수자원 문제를 연구한 결론은 “매우 심각하다” 는 것이었다. 어쩌면 물 분쟁과 환경오염이 거대한 중국을 분열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1세기 인류에게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핵전쟁이나 이데올로기 싸움보다, 수자원의 분배갈등과 환경오염으로 인한 대멸종 사태가 더 크게 느껴진다.

권오병(집필위원·아썸 회장·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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