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7일부터 한 달간 4월 임시국회를 여는 가운데, 정부·여당이 학교 앞 호텔 건립을 가능하도록 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일명 ‘학교앞호텔법 혹은 ‘경복궁옆호텔법’)의 처리를 추진하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세월호 참사 1주년을 전후해 열리는 이번 임시국회는 세월호 인양문제, 공무원연금개혁 등 각종 정치·경제·노동계 현안이 정기국회만큼이나 수두룩하다. 이 가운데 ‘학교앞호텔법’ 개정안은 관광과 경제활성화를 위해 학교의 보건·위생·학습 환경을 저해할 만한 유흥시설이 없는 관광숙박시설을 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에도 설치할 수 있도록, ‘학교환경심의위원회 심의’ 절차를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행 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은 50m까지는 절대 정화구역으로, 50~200m 까지는 상대 정화구역으로 나뉜다. 절대 정화구역은 지금과 같이 금지하고, 상대 정화구역에서는 심의 없이 ‘유해시설이 없는’ 호텔이나 여관, 여인숙 등을 지을 수 있게 개정하는 것이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덕성여중, 덕성여고, 풍문여고 3개 학교와 이웃하며 경복궁 옆에 위치해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서울 종로구 송현동 49-1번지 일대 대한항공 소유 땅에 호텔이 건립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이곳 3만7000㎡ 부지는 풍문여고와 덕성여중 정문에서 50m 안에 일부가 걸쳐있으며 나머지 대부분도 상대정화구역 안에 있다. 대한항공은 수년간 이곳에 7성급 호텔을 건립하려고 사업을 추진해오다가 교육청을 상대로 행정소송까지 벌였으나, 대법원에서 결국 학교가 있기 때문에 호텔을 지을 수 없다는 패소 판결을 받았다. 정부는 바로 그 시점 이후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들고 나왔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대한항공 특혜법’, ‘재벌 특혜법’이라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지만, 정부는 급증하는 중국인 여행객 유치, 일자리 창출 등을 핑계로 계속해서 그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10개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송현동 호텔건립반대 시민모임’은 “유해시설이 전혀 없는 관광호텔이라도, 일단 들어서면 주변에 유흥시설 같은 것들이 우후죽순 들어서 학습환경을 파괴할 것인데, 그런 시설들은 어떻게 막을 것인가?”라고 지적, “외국 관광객 유치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호텔의 수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말하며, “현재도 학교 앞 호텔 건립의 심의 통과율이 65%로 충분히 높은 상황에서 법을 개정해서까지 호텔을 지어야 한다는 논리에 대해 찬성하기 어렵다”라며 개정안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경복궁과 북촌, 인사동을 잇고 있는 땅의 가치로 볼 때, 많은 시민들이 호텔보다는 소나무숲, 공공 공원, 도서관 등의 의견들을 많이 내주고 있다”며 “대한항공이 시민들의 이런 바람들을 받아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문체부는 “관광진흥법 개정이 특정 기업을 위한 맞춤형 개정이라는 것은 오해”라며 “이는 오히려 중소기업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호텔은 유해시설이 아니며, 현재의 관광진흥법은 시대의 요구와 맞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월 임시국회 때는 여야가 합의해 이 법을 통과시키려 했으나, 야당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관광진흥법을 재고할 수밖에 없다”고 다시 의견을 바꾸었다. 정부·여당이 1년이 넘도록 계속해서 ‘공실률’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는 점, ‘땅콩 회항’으로 대한항공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는 점 등의 이유에서다.

증가하고 있는 관광객 호텔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정부·여당의 주장도 근거가 부족하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호텔 객실 점유율(전체 객실 중 이용 객실)은 2010년 63.9%, 2011년 64.9%, 2012년 64.7%, 2013년 62.9%로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특1급 호텔의 객실 점유율은 2010년 72.8%에서 2013년 67.6%로 떨어지면서 70% 선이 무너졌다. 해마다 관광객이 200만 명 가깝게 증가했지만 서비스드 레지던스, 게스트하우스, 홈스테이, 펜션, 여관 등 다양한 형태의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도 호텔 객실이 남아돌고 있는 상황에서 외래 관광객이 증가한다 해도 공급이 급증한다면 공급과잉 현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경실련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의 전년 대비 호텔 증가비율을 보면 2011년 7.2%, 2012년 8.8%, 2013년 19.3%로 점차 높아지고 있다. 특히 2013년 말 기준으로 신규 사업계획이 승인된 호텔이 모두 지어질 경우 192개에서 293개로 증가(52.6%)한다. 호텔 객실수도 1만6543실이 늘어나 4만6771객실로 급증(54.7%)한다.

여기에 호텔 숙박을 통한 관광객의 소비 증가 효과도 미미한 것으로 조사됐다. 호텔가격 비교 서비스 업체인 '호텔스닷컴'이 발표한 '2014년 호텔 가격 지수(HPI)'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 호텔에 지출하는 평균 지출액(16만1232원)은 전년(15만9052원)에 견줘 1%(2180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같은 기간 일본(-14%)과 미국(-6%) 등 17개 국가에서 온 관광객 호텔 지출은 오히려 줄었다.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는 조선시대에는 서울의 중심인 경복궁 옆 양반 계층의 주거지로 소나무가 많아 송현(松峴)이라 불렸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 식산은행원 숙소 부지로 쓰이다 해방 후 미대사관직원숙소로 활용됐다. 한진그룹은 2008년 삼성생명에게서 2900억 원을 주고 부지를 사들였다. 최근까지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을 실질적으로 추진해오던 당사자는 '땅콩회항'으로 물의를 일으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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