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덕석 K-water 시화본부 도시경관팀장

봄이다. 꽃샘추위로 주춤하지만 여전히 대세는 봄이다. 매년 찾아오는 그 뻔한 봄이 별 다를 게 있겠느냐마는 여전히 올해의 봄도 새롭다. 새로운 각오와 희망, 본격적인 업무가 맞물리는 이때에 우리네 조경인의 봄맞이는 어떨까?

주변 산이나 공원의 나무보다 작년 내가 조성한 현장의 수목이 하루라도 더 빨리 깨어났으면 하는 조급한 마음과 욕심어린 기대감을 가짐과 동시에 혹시나 내가 기울인 정성과 기도를 배반하여 못 깨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봄을 맞이하는 건 조경인으로 살면서 매년 느끼는 운명 같은 감정이다.

따뜻한 봄기운의 스침으로도 느티나무의 푸름이 주는 축복을 행복으로 느끼고 즐기는 시민의 모습이 떠오르고, 매화, 개나리, 명자나무, 라일락, 배롱나무로 이어지는 꽃나무의 릴레이를 기다리는 건 소위 조경하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특권으로서의 감정이다.

조경인에게 봄의 시작은 따뜻한 기온보다 매화가 더 직설적이지 않을까? 봄을 상징하는 많은 것이 있지만, 매란국죽의 사군자(四君子)에서 매화는 봄을 상징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분매에 물을 주라”는 이황의 마지막 말은 기생 두향과의 애틋한 사랑을 그립게 한다. 당나라 맹호연의 탐매(探梅), 송나라 임포의 매화 등 매화와 관련된 다양한 고사와 함께 나에게는 생각나는 매화가 있다. 전남 장성 백양사에 있는 고불매이다. 설명에는 수령 350년의 홍매라고 되어 있는 이 멋진 만개 절정의 매화를 만난 건 4월 13일이었다. 대웅전 앞뜰을 가득 채운 향기는 그 진원지로 발길을 끌었고, 나무를 쓰다듬으며 전해진 그 진한 향기는 여전히 추억된다. 일생을 혹한 속에 살지만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말은 이날만큼은 아니었나 보다.

다음은 단가 ‘사철가’의 첫 부분이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더라’ 노래 가사처럼 기대감 보다는 쓸쓸한 봄맞이를 하는 곳이 또 있는 것 같다. 때로는 밥벌이의 지겨움을 주고 소규모, 영세성을 여전히 안고 있는 조경계다. 언제부터인가 조경이라는 두 글자 뒤에 따라붙은 위기라는 단어는 신종 합성어인 듯 이제는 위기라는 단어가 풍기는 위기감마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된 듯하지만, 이 실체 없는 조경의 위기를 타개하려는 노력이 조경 각계에서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어 다행이다. 각종 기술세미나 및 토론회, 대담, 기고문 등을 통해서 말이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이란 말이 있다.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인데, 세상에는 나쁜 것도 좋은 것도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변화하고 변화 속 극한점에 이르면 전혀 반대 성질의 것으로 변하는 것이 바로 물극필반이다. 조경의 위기가 더 극으로 치닫게 될지 아니면 필반할지 알기 어려우나 올해의 봄이 그 필반의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그나마 2015년 1월 6일에 제정되고 2016년 1월 7일에 시행예정인 ‘조경진흥법’의 탄생은 큰 기대감과 위안을 준다. 지금이야 말로 위기의 조경을 기회의 조경으로 바꿀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은 그 식상함이 오히려 반감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해야겠고 그 지혜의 한 가지 방안을 생각해 보았다.

문질빈빈(文質彬彬)의 지혜다. 논어에 나오는 말인데 문(文, 글을 꾸미는 형식)과 질(質, 글의 내용이 되는 바탕)이 잘 어울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조경에 적용해 보자면 문은 디자인이나 외양을 말하고 질은 공간이 담아내는 본질, 숨은 내용이다. 빈빈은 문과 질이 조화를 이룬 모습니다.

그동안 조경은 내면적 철학과 의미의 공간 조성보다는 외양의 발전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인 측면이 있다. 식재만 해도 그렇다. 그야말로 빵빵이로 표현되는 수목의 식재설계는 많은 경험과 지식이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되는데, 설계에서 가장 쉬운 분야로 취급받고 그 중요성이 무시되기 일쑤다. 토양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중요하게 주장하면서 정작 토양개량에 소요되는 공사비는 과다비용으로 생각되는 부분도 그렇다. 외국 공원에서 새로 심은 나무를 보게 되면 우리나라에서는 묘목으로 취급될 수 있는 자그마한 나무를 양질의 멀칭재와 함께 아주 정성들여 심어 놓은 것을 종종 발견한다. 그것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 정작 우리는 초기경관을 이유로 대형목 위주의 식재를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겉모습만 화려하고 본질을 잃어버린 곳, 본질은 갖추어져 있지만 보기에 고통스러운 곳은 좋은 공간이 아니다. 디자인과 실용, 본질이 잘 어우러진 문질빈빈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이제라도 우리가 알고 있고 교육받은 대로의 기본을 지켜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조경의 발전을 위해 좀 더 절실해져야 할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그래야 된다.

양덕석(객원 논설위원·K-water 시화본부 도시경관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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