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승] 가파른 절벽 위 정자와 소나무숲 장관
[한국의 명승] 가파른 절벽 위 정자와 소나무숲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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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11
  • 호수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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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편-8> 예천 선몽대 (명승 제19호)
▲ 예천 선몽대 일원(명승제 19호) 선몽대 돌계단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제공 문화재청>

예천 선몽대는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백송리 75번지 등 지역으로 해발 약 80m에 위치하며, 내성천 남쪽 우암산 자락에 조성되어 있다. 이 정자는 명종 19년(1563)에 우암 이열도가 창건했다. 퇴계 이황이 신선이 내려와 노는 꿈을 꾸었다하여 선몽대(仙夢臺)라는 대호로 시를 지었을 만큼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다산시문집’에서 정약용은 선몽대가 유독 그 기괴한 모양 때문에 여러 군에 이름이 났다고 적었다. 선몽대 하면 대표적인 것은 파노라믹하게 펼쳐지는 하천과 모래밭, 가파른 절벽 위의 정자와 소나무숲이다. 선몽대는 중요한 경관조망점 중의 하나이지만 건너편에서 선몽대를 바라보는 것도 장관이다.

정자 내에는 당대의 석학인 퇴계 이황,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청음 김상헌, 한음 이덕형, 학봉 김성일 등의 친필시가 목판에 새겨져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선인들의 유교적 전통공간으로서의 역사적 의미가 크다. 선몽대 일대는 기러기가 내성천에서 풍부한 먹이를 먹고 백사장에서 한가로이 쉬는 형상이라 하여 풍수상 평사낙안형이라 전하고 있는데, 예천에서 안동 방향으로 흐르는 내성천의 강물과 십리에 이른다는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역사적 유래가 깊은 선몽대 및 숲과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아내고 있는 곳이다. 예천은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많이 나타나는 감입곡류지형이 유명한 곳 중 하나이다. 선몽대는 내성천이 S자형으로 감입곡류하면서 북서류로 방향이 바뀌는 지역에서 공격사면의 하식절벽에 인접하여 있다. 해발 160m 내외의 낮은 산봉우리들이 북서-남동 방향의 능선을 이루며, 능선의 북쪽 끝자락에 선몽대가 자리 잡고 있다.

인조 1년(1623)에 선몽대가 허물어짐에 장서각의 책을 다 본집으로 옮기고, 현종 13년(1671)에 중수했다. 또 1922년에 중수할 당시에는 15대손 인희가 주관했는데 본래 대(臺)가 12칸, 주사가 10칸, 학심대 4칸, 방학정 4칸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학심대와 방학정은 지대가 경사져서 풍우에 넘어져 복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1949년에 중수할 때는 16대손 중화가 이 일을 주도했고 기둥을 돌로 교체하고 헌함도 개조했으며, 주사도 새로 10칸을 세웠고, 송정 4칸을 신축했다고 한다.

백송리 마을 뒤 높은 산 중턱에 잎과 나무줄기가 흰 소나무가 있어 마을 이름을 ‘백송(白松)’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뒷산에 병암이 둘러싸고, 선몽대를 중심으로 동·서로 흐르는 내성천 모래밭 평사십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내성천과 더불어 소나무는 선몽대 주변의 주요경관요소이다. 선몽대 입구 내성천변에는 노송이 무리지어 자라고 있다. 많은 시(詩)와 기문(記文) 등에는 선몽대 주변의 빼어난 경관과 ‘적송(赤松)’ ‘청송(靑松)’ ‘장송(長松)’에 대한 표현이 많은 것도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선몽대 숲은 선몽대와 선몽대 뒤편의 백송리 마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조성된 우리 선조들의 풍수사상이 깃든 전통적인 마을 숲으로 100~200여년 수령의 소나무 노거수와 은행나무, 버드나무, 향나무 등이 함께 자라고 있으며 수해방비림, 방풍림, 수구막이숲 및 비보림의 역할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

▲ 강 건너에서 바라본 선몽대 <사진제공 문화재청>
▲ 강건너로 보이는 선몽대 <사진제공 문화재청>

<자료제공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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