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병(아썸 대표·생태학박사)

1. 세계 3대 트레킹
세계 3대 트레킹을 꼽는다면, 첫째가 스페인의 산티아고 트레킹(Camino de Santiago)이고, 둘째가 남미 페루의 마추픽추 트레킹이고, 셋째가 밀포드 트레킹이라고 한다. 굳이 하나 더 보탠다면, 티벳고원의 둘레길 차마고도(茶馬高道)를 들 수 있다. 필자는 운 좋게도 3년 전에 산티아고를 시작으로, 2년 전에 차마고도, 지난해 마추픽추에 이어 올해 밀포드까지 세계 4대 트레킹을 모두 다녀왔다. 아쉽게도 차마고도 트레킹은 총연장 2800km 중의 일부인 300km정도(리싸에서 호도협을 거쳐 샹그릴라까지)밖에 가지 못했다. 해발 2700m에서 시작해 14일 동안 걸어 해발4300m쯤에 이르러 고산병 증후군으로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도시생활의 온갖 스트레스에 쩔은 60살의 몸을 차마고도는 받아주지 않았다. 부디 이글을 읽는 분들은 내 꼴이 되기 전에 젊고 건강할 때 꼭 다녀오시기 바란다.

2. 뉴질랜드 여행의 계획
이번 밀포드 트레킹은 3년 전부터 계획한 여행이다. 애초 계획은 회갑여행으로 아내와 함께 뉴질랜드 종단을 하려고 했었다. 북섬의 오클랜드(Auckland)에서 출발해 남섬 끝 인버카길(Invercargill)까지 해안가로 걸어서 약 1300km를 2개월간 여행하려 했으나, 하루 종일 걸어도 숙박할 마을이 없는 현지사정 때문에 포기하였다. 국토 면적은 남한의 2.7배에 달하지만 인구는 430만 밖에 되지 않아서, 해안도로에는 마을과 마을사이가 50km이상 떨어진 곳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캠핑카를 렌트하는 방법을 연구하였으나, 다른 친구 부부와 일정 맞추기가 어려웠고 또한 성수기에 캠핑카 예약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수정한 것이 밀포드 트레킹이었다.

▲ 밀포드 트레킹

3. Fiordland National Park
남섬의 남서쪽 귀퉁이의 1만5000㎢(남북 300km, 동서 50km)에 달하는 빙하지형 국립공원은 지난 200만 년 동안 13번의 빙하기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지질학과 자연생태의 보고로서 문명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고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밀포드 트레킹은 이 국립공원의 북쪽에 있는 빙하계곡 한 줄기 60km를 4일간 걸어가는 코스다. 수십 개에 달하는 U자 모양의 빙하계곡은 평균 높이 1000m~1600m의 직벽을 이루며 수천 개의 폭포를 품고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태즈매니안해에서 불어오는 습한 공기가 빙하계곡의 직벽에 부딛쳐서 1년에 180일간 비가 내리고, 연 평균 강수량이 7000mm에서 1만1000mm까지 내린다. 세계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지형적 특성을 지닌 곳이다. 봉우리의 정상은 여름에도 만년설로 뒤덮여 있고, 깊은 계곡은 풍부한 강수량으로 강물이 넘쳐나 급류를 이루고 온갖 습지생물들이 온대정글을 형성하고 있어서 처음부터 인간의 접근을 어렵게 하였다. 밀포드 루트도 19세기에 와서야 영국탐험가들에 의해 천신만고 끝에 개척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4.퀸즈타운(Queenstown)
밀포드 트레킹의 시발점인 퀸스타운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을 기념해 붙여진 도시다. 번지점프의 도시이자 ‘반지의 제왕’을 촬영한 도시이기도 하다. 남섬에서 가장 긴 호수인 Wakatipu 호숫가에 설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시골도시 퀸스타운은 ‘Adventure capital of the world’로 불리며, 요즈음 전 세계의 Extrem Sports를 즐기는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번지점프, 스카이다이빙, 래프팅, 산악자전거타기, 스키, 행글라이딩, 열기구풍선, 제트보트, 제트스키, 카약, 파라플라잉, 리버스핑 등 온갖 스릴 넘치는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퀸스타운은 원래 마오리족이 살던 곳이었는데, 1850년대에 금광이 발견되면서 유럽인들이 점령해 개척한 도시다. 지금도 냇가에 가면 간단한 플라스틱 바가지로 누구나 사금을 채취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필자도 단 한 바가지의 검은 모래에서 10여분 만에 작은 금 조각 몇 개를 찾아낼 수 있었다. 대다수 관광객들이 밀포드사운드 관람을 위해 이곳을 방문하지만 대부분은 하루에 여러 번 있는 크루즈관광을 하고, 그 중에 하루에 단 50명만 밀포드 트레킹의 예약이 가능하다. 뉴질랜드 정부에서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엄격하게 인원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전 구간 트레킹 코스는 단 하나이고,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험한 숲길에 오로지 남쪽에서 북쪽으로만 일방통행이 되는 길이다. 그나마 중간 중간 쓰러진 거대한 나무에 가로막혀 있거나, 엄청난 강수량으로 강물이 넘쳐 길이 끊어져 허리까지 차는 빙하 녹은 찬물을 감수해야 한다. 단 한 개비의 담배도 허용되지 않으며, 휴지 한 장도, 샌드위치 조각도 버리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거대한 빙하계곡에 압도되고, 이 웅장한 자연을 철저히 보호하려는 뉴질랜드 사람들의 생태주의 사상에 큰 감명을 받았다. 밀포드 트레킹 전구간의 폭포수나 강물과 호수물은 언제든지 식수로 그냥 마셔도 된다고 한다.

 

▲ 밀포드 트레킹

5. Milford Sound Tracking 코스
첫 날은 퀸스타운에서 버스로 출발해 약 2시간 동안 창밖의 목가적인 풍경을 즐기다 보면 테아나우(Te Anau)호숫가의 선착장에 도착한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배를 타고 밀포드 트랙의 입구인 클레이드와프까지 이동한 후 첫 번째 롯지인 글레이드 하우스까지 걸어간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46명의 트래커들과 4명의 전문 가이드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흘간의 동반자가 되는 즐거움에 들떠 간단한 저녁파티를 했다. 시작 첫날부터 비는 쉬지 않고 내렸다. 자신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짐은 자신의 배낭에 져야한다. 내의나 양말은 단 2벌, 매일 저녁 스스로 빨래를 해야 한다. 물론 아내와 나도 각자 빨래와 각자 먹을거리 챙기는 것은 불문율이다. 배낭커버와 판초우의는 필수이고, 숙소 침대는 한방에 4개 모두2층 침대다. 서로 모르는 일행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 하도 비가 많이 오고 습해서 롯지마다 빨래 말리는 공동 드라이 룸은 필수이다. 그날 점심은 아침 식사시간에 각자 샌드위치로 스스로 알아서 챙겨야 한다. 이렇게 불편하지만 비용은 만만치 않다. 4일간 트레킹 코스에 지불하는 비용만 성수기엔 1인당 200만 원 정도이다. 그도 그럴 것이 60km 전 구간에 차가 접근 할 수 없어서, 롯지에서 먹고 자는데 필요한 모든 음식물과 생필품은 헬기로 수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배출된 쓰레기도 헬기로 운반해야 한다.
둘째 날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Glade House를 아침 일찍 출발해 다음날 숙소인 Pompolona Lodge까지는 16km로 약 7시간이 걸린다. 온종일 비는 퍼붓듯이 내리고, 구름과 안개는 계곡을 가득 에워싸고 흐르고, 세찬 강물은 무서운 유속으로 내달린다. 하늘이 안보일 정도의 정글 속에 난 작은 트레킹 길은 끊어질 듯 이어진다. 가끔씩 정글을 벗어날 때면 양 옆으로 1600m의 수직 빙하계곡에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폭포수가 천둥소리를 내며 쏟아져 내린다. 이 거대한 원시의 자연 앞에 인간이란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가?
우거진 숲속으로 다시 들어가면 수백 년 수천 년씩 자란 거대한 나무들에 기생하는 수많은 종류의 이끼류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기괴한 풍경을 연출한다. 중간에 보이는 거대한 늪지대(Wetland)는 생태학자의 눈에는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생태의 보고였다. 애지중지 가져갔던 Canon 5S MarkⅡ는 이날 빗속에서 열심히 우중촬영에 몰두했던 나머지 이틀 만에 고장이 나고 말았다. 3.5kg에 달하는 렌즈 두 개까지 욕심을 낸 덕택에 내 어깨는 남들보다 더 생고생을 한 셈이 되었다.
셋째 날은 가장 힘든 날로 해발 1170m의 가파른 매키넘고개의 정상을 넘어가야 한다. 정상에 오르면 밀포드 루트를 개척하다 죽은 매키넘을 기념해 세운 기념비에서 이틀간 걸어온 U자 빙하계곡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대자연이 주는 웅장함과 경이로움에 빗속에 걸어온 고생은 모두 날아가고, 다시 한 번 하나뿐인 지구를 진심으로 경외하고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간단히 점심을 마치고 다음 숙소인 Quintin Lodge까지는 가파른 하산 길로 3시간 반을 내려오는 동안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야생화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그래도 다리 힘이 남은 우리는 다시 퀸틴롯지에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뉴질랜드 제일의 폭포인 서더랜드폭포(583m)의 웅장함을 보고서야 저녁을 먹었다.
넷째 날은 마지막 코스로서 클린턴 강변을 따라 22km를 걷는 평지코스였다. 밤새 세차게 쏟아진 빗줄기에 강물이 범람해 아침 먹고 2시간을 기다렸다가 트레킹 코스의 안전을 확인한 헬기의 무전을 받고야 출발할 수 있었다. 가는 길 내내 비는 그치지 않아 여러 곳에서 물에 빠져 길을 건너는 위험은 있었지만 우리 일행 모두는 한사람도 낙오자 없이 저녁시간까지 최종 숙소인 밀포드 사운드 마이터픽 산장에 도착하였다. 일행 중 최고령자는 83살의 일본인 할머니였는데 그도 무사히 트레킹을 마치고 그날 저녁 완주축하 파티에서 미리 준비한 기모노를 입고 완주증을 받고 즐거워하였다. 도대체 무병장수하는 일본인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평균수명이 늘어날까 궁금하다.

6. 자연 생태와 관광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은, 생태관광을 내걸며 아름다운 생태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보존해야할 가치가 있는 자연생태계는 철저히 보존해야 한다. 생태관광이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배후에는 상업적 관광수입을 목적으로 한 개발은 결국 자연을 온전히 보존할 수 없고, 이는 오래가지 못한다. 보여주기 위한 인위적 생태계는 온전히 유지될 수 없고, 이를 알아차린 관광객들도 외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도로를 닦고, 호텔과 편의시설을 짓고, 삭도를 설치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 당장에는 상업적 이익이 될지 모르나, 장래에 이런 것에 식상한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가 될 것이고, 그때에는 불편하더라도 진정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밀포드 트레킹과 같은 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생태보전과 관광개발은 본질적으로 전쟁과 평화만큼이나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다. 국토는 좁고 인구는 많은 우리나라지만, 그래도 꼭 지켜내야 할 자연생태는 훼손하지 말고 끝까지 지켜내는 것이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이익이 될 것이다.
 

▲ 밀포드 트레킹
▲ 밀포드 트레킹

권오병 집필위원(아썸 대표·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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