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승] 해식절벽과 난대림 조화 이룬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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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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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편> 6 - ‘부산 영도 태종대’(명승 제17호)
▲ 부산 영도 태종대(명승 제17호) <사진제공 문화재청>

태종대는 해안형 경승지로 명승적 가치가 높은 해식절벽과 수림, 푸른바다 등 주요 경관요소와 신라 시대의 역사적 장소성을 지닌 곳이다. 또한 순환로를 따라 조망되는 해안의 경관과 등대 등 경관 또한 우수하다. 특히 바다에서 유람선을 이용하여 조망되는 해식절벽의 모습이 매력적이다. 2005년 명승지정 당시‘부산 태종대’에서 이곳을 영도의 상징적인 명승지로 가꾸고자 하는 지역민들의 건의에 따라 2006년 문화재 지정명칭을 ‘부산 영도 태종대’로 변경하였다.

태종대는 파도의 침식으로 형성된 약 100m에 달하는 해식애가 울창한 난대림과 굽이치는 파도와 함께 어울려 그야말로 절경을 이룬다. 청명한 날이면 멀리 일본 대마도까지 바라다 보인다고 하며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많이 찾았던 곳이다. 조선 선조40년(1607)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경운의 ‘해차록’에서도 바다를 바라보는 달밤의 풍광을 노래한 기록이 전할 정도로 경관이 빼어나다.

태종대에 자생하는 상록활엽수로는 생달나무, 후박나무, 참식나무 등이 있고, 해송과 상록활엽수 이외에 약 120종이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주변 숲에서는 노루, 산토끼, 다람쥐, 꿩, 메추리 등의 동물이 서식하고, 망부석·신선바위·병풍바위 등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해안경관을 이루고 있다. 바닷가 등대 오른쪽의 평평한 바위가 바로 신선바위이며, 그 위에는 왜구에 끌려간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여인이 돌로 변하였다는 망부석이 있다. 망부석 바로 뒤에 우뚝 솟은 것이 기괴하게 생긴 태운암이다. 이 태종대에서 순환도로를 따라 20m 동남방으로 바라보이는 섬이 있는데 주전자처럼 생겼다고 ‘주전자섬’이라고 부른다. 원래는 바다 위 물결을 따라 항상 흔들리는 것처럼 보여‘생도(生島)’라 불러왔다고 한다.

‘동래부지’ 산천조에는 “태종대는 동래부 남쪽 30리 되는 절영도 동쪽에 있는데 해수가 주변을 돌아 하나의 석교가 있어 노는 사람이 겨우 통과하며, 속전에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성취한 후 전국의 명승지를 탐방하던 중 이곳에 들러 궁인들과 함께 울창한 수림과 수려한 해안절경에 심취된 후 잠시 머물며 활을 쏜 곳이라고 하여 이름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 제3대 태종(太宗)이 1419년 큰 가뭄이 들자 그 해 5월에 비가 내리기를 빌어 비가 내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로부터 음력 5월초에 내리는 비를 ‘태종우(太宗雨)’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사묘조에 절영도 신사에 관한 기록에서도 “돌로 단을 만들었으며 옛날에는 비를 빌어 징험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없어졌다”고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편찬 시기가 1530년임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그 이전까지 영도 태종대에 신사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태종대는 국가의 안녕을 비는 자연성지 역할도 했음을 알 수 있다.
 

▲ 부산 영도 태종대(명승 제17호) <사진제공 문화재청>
▲ 부산 영도 태종대(명승 제17호) <사진제공 문화재청>


<자료 제공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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