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덕석 K-water 시화본부 도시경관팀장

유난히 일찍부터 찾아온 겨울의 기세가 그만큼 빨리 누그러드는 분위기이다. 출퇴근길에 앙상하게 남은 가로수의 나뭇가지를 응시하며, 자연의 힘으로 거리가 풍성해지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꿈틀거리는 새싹의 기개처럼 지난해 그리고 겨우내 쌓아두었던 내 안의 무언가를 꺼내놓고 힘차게 시작할 한해의 시작에 또다시 가슴이 설렌다.

조경이라는 학문을 직업으로 삼고 지내온 만만치 않은 시간, 그 시간과는 반비례하게 조경이라는 두 글자가 주는 부담과 책무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그것을 덜기 위한 노력과 고민이 더욱 필요한 때인 것 같다.

큰 강물이 말라갈 때는 작은 물길부터 살피고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흙과 뿌리를 보살피라는 말이 있다. 공원과 녹지를 만들고, 물길을 끌어들이고, 새와 곤충이 함께 공존하는 건강한 장소를 조성하는 우리의 일에는 자연과 생물에 대한 이해와 배려, 나아가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한 공간창조의 힘이 필요하다. 도시민에게 자연이 담긴 건강하고 쾌적한 휴식처를 제공하여 문명사회에 균형추를 맞춰주는 이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기본이며 근간이다.

경제성과 효용성 논리에 치우친 도시계획에서 배정받은 공원과 녹지 공간, 콘크리트 토목구조물 위에 파랗게 덮인 잔디카페트, 생육공간이 비좁은 길가에 싹둑 잘린 뿌리로 힘겹게 버텨야하는 가로수, 유지관리를 고려하지 않은 자수화단, 피폐한 흙에 빠져나갈 물구멍에 대한 대책이 전무한 곳의 식재 공간 등이 향후 방치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배우고 깨닫는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대로 피어나는 야생초와 같이 싱그런 자연과 함께하는 행복한 장소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일종의 책임감이기도 하고...

최근 현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과 맞물려 조경과 관련된 각종 법의 제·개정 때 조경 영역이 축소되거나, 조경 관련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조경가가 배제 되는 등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타 분야의 지속적인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으로 이런 현상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참으로 고민스럽다. 우리가 너무 공원과 숲, 녹지 안에서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 안에서만 해결책을 찾고자 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한 성찰도 하게 된다. 정책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다. 식재수량을 늘리고, 조경예산을 늘려 잡아 안정적인 기반을 다지겠다는 당위성을 위해 할애된 시간만큼, 유연한 공격적 사고는 좀 부족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스스로 공간을 한정짓는 것에 대한 답답함을 깨는 것이, 조경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좀 더 효율적인 접근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방어해야 할 일 많다는 것은 그간 성장을 많이 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지만, 방어에만 급급해서는 결코 만족스런 결과를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나무를 보기보다는 숲을 보자라는 말이 적절할까? 우리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좀 더 넓고 깊숙이 들여다보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1990년대 후반,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라는 새로운 사조가 등장했다. 도시를 만들고 계획하는데 있어서 조경이 이를 주도해야 하고,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경을 중심으로 토목과 건축, 도시계획과 사회과학 등 인접분야와 협력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좋은 도시를 만들 수 있는 해법이라고 이야기한다. 도시는 인간이 살아 숨쉬는 장소다. 요즘과 같이 복잡한 사회에서는 물리적인 편익과 경제의 논리로만 도시를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유기적으로 소통하고, 그 안에서 활기차고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만들어 주는 것이 도시를 만드는 사람의 기본적인 책무다. 자연과 경관을 도시 만들기의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것을 단순히 어느 한 분야의 영역 확장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그 근본이 매우 건전하고 훌륭하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외부공간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고민하고 발전해야 한다. 공원과 녹지를 바탕으로 도시 전체를 바라보고, 조경시설물만이 아닌 모든 공공시설물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다양한 프로그램과 이벤트 등의 기획을 통해 지역을 활기차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여야한다. 운영과 이용을 활성화하여 외부공간의 효용성을 높이고, 더불어 생태적으로 건전한 삶을 살기 위해 조성해 주어야 하는 시스템과 설계기법, 그리고 스스로 환경과 자연 및 경관에 대한 고찰을 통해 개선하고 변화하여야 한다.

공공디자인 역시 마찬가지다. 도시의 무미건조한 공공시설물에 내가 사는 곳의 영역표시를 하는 것이 공공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좀 더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하는 디자인 측면의 참신함과 공공시설이라고 하는 지속가능한 꾸준함이 녹아있어야 한다. 그러한 면에서 공공디자인은 자신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함과 동시에 경관시설로서 도시와 어떻게 만나서 어울리고 조화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우리의 역할이 있다. 도시가 경쟁력인 요즘 시대에 우리나라 도시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2015 AFC 아시안컵이 한창이다. 아시아의 맹주라고 하는 우리나라는 1960년 우승 이후 단 한 번도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월드컵에 8회 이상 연속으로 진출하였으며 아시아팀에선 처음으로 월드컵 4강에 진출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대륙별 국가 대항전에서 최근 우승기록이 없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이 글을 쓸 때가 이라크와의 준결승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니, 신문이 나올 즈음에는 54년만의 우승 소식이 있기를 기원해 본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이야기가 있다. 리드하고 있는 팀이 수비만하다가 동점골과 역전골까지 허용해 경기에서 지고 말 때 많이 회자된다. 축구 경기의 특성 상 결국 골을 넣지 못하면 비기거나 지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우리 분야에서 방어보다는 공격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면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공격적인 사고로 영역성이 불확실한 무한 경쟁시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결국은 누가 국민들에게서 인정받을 수 있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정책화하여 좋은 호응을 얻느냐에 달려있다. 이를 위해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기존의 사고와 조직, 직제와 틀은 좀 더 유연하게 바뀌어야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은 아레테, 즉 탁월함을 추구하였다. 다른 사람과 경쟁이 아닌, 자신의 예술에 대한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이다. 우리도 우리가 만드는 공간에 대하여 탁월함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우리의 영역을 지키고 확장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양덕석(객원 논설위원·K-water 시화본부 도시경관팀장)

키워드
#조경 #양덕석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