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트워스 식물원(Fort Worth Botanical Garden)의 일본정원이다. 이곳은 별도로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지만 식물원의 대표적인 정원에 해당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제공 길승호(Texas A&M Univ. Visiting Scholar) >
“신비하고 매혹적인 일본정원으로 들어서십시오. 구부러진 소로는 여러분들의 오감을 매혹시키고, 한 굽이 돌 때마다 새로운 보물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을 사로잡는 수천 마리의 이국적인 비단잉어에게 먹이를 줘보십시오. 먹이를 주면서 그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질 수 있습니다. 돌, 대지, 나뭇잎 그리고 물이 7에이커의 놀라운 땅에서 하나가 됩니다” <Fort Worth Botanical Garden:Japanese>

위의 문구는 포트워스(Fort Worth) 식물원의 일본정원 홈페이지에서 일본정원을 소개하는 글이다. 일본 정원은 포트워스 식물원의 여러 정원 중 대표적인 정원에 해당한다. 식물원 입장료와 별개로 일본정원은 별도의 입장료(어른 $5)를 지불해야 하지만 미국인들에게 일본정원은 경관미와 정서함양의 측면에서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곳이다.

한 나라의 이름을 걸어 놓은 정원이라서 그런지 일본정원은 일본의 시대적 흐름에 따른 전통정원의 양식을 한꺼번에 뭉뚱그려서 넣어 놓은 듯, ‘지정(池庭)’, ‘회유식(廻遊式)정원’, ‘고산수(枯山水)정원’ 그리고 ‘다정(茶庭)’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배치해 놓았다. 이렇게 조성된 정원은 현지인에게 이국적인 문화 다양성으로 다가가면서 동양을 대표하여 서양인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신비로운 정서를 선사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당연한 의문을 가져본다. 동양의 정원이 일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정원도 있는데 왜 유독 일본정원만 머나먼 지구 반대편인 이곳에서 동양을 대표하고 있는가?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는 개연성은 일본정원이 이곳 한 곳만 있으면 성립한다. 즉, 누군가 이국적인 일본정원에 매료된 현지인이 헌신적으로 이곳에 조성했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미국 내에는 일본정원이 훨씬 많이 산재해 있다. 대표적으로 Japanese Garden Journal(www.rothteien.com)에서는 북미에만 약 300여 곳 이상의 일본정원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저널에서는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상위 25개 일본정원을 정원전문가들의 설문조사를 통해 게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번에 방문한 포트워스 식물원의 일본정원은 상위 25개 정원에 들지 못할 정도이니, 미국 내 주요 대도시에 산재한 일본정원은 질적으로 상당히 우수하리라는 것은 미뤄 짐작이 가능하다.

미국에 이렇게 일본정원이 많은데 다른 나라에도 이렇게 일본정원이 많을까? (사)일본조원학회에서는 해외에 전파된 일본 정원에 대해 ‘해외의 일본정원(海外の日本庭園)’이라는 보고서를 2006년에 작성한 바 있고, 이듬해인 2007년에는 ‘Japanese Gardens outside of Japan: 海外の日本庭園’으로 영문판도 간행을 하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정원이 붐을 이루게 된 단초는 1984년 영국 리버풀에서 개최된 세계최초의 정원박람회인 ‘영국 리버풀 국제정원박람회’에서 일본정원이 그랑프리를 차지하면서 부터라고 소개하고 있다. 물론 그전부터 일본정원이 세계 각국에 여러 가지 동기로 조성되고 있었지만, 1984년을 기점으로 이후 10년(1984~1993년, 1994~2003년) 간격으로 각각 100여 개 이상의 일본정원이 전 세계적으로 조성 및 공개되었고, 2004년 이후에도 연간 10여 개소의 일본정원이 꾸준히 건설되어 그야말로 붐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앞서 집계된 통계는 일본정부가 지원한 공공장소에 세워진 것이고, 해외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일본정원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일본 정원의 해외 보급에 기여하고 있는 우에스키 다케오(上杉武夫)씨는 “지금도 해외 어딘가에서 일본 정원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문화에 있어 한류를 자랑스럽게 얘기하지만 적어도 정원 쪽에서는 일본의 바람이 거의 돌풍 수준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해외의 일본정원을 소개하는 홈페이지(www.nodaigarden.jp)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되어 동경농업대학(東京農業大學)이 운영 중에 있다. 일본이 자국 정원의 세계화에 기울이는 정성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홈페이지의 내용은 상당히 구체적 정보까지 구축되어 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해외의 일본정원은 5대륙 100여 개 국가에 약 500여 곳이 산재해 있다고 한다.

단순한 붐으로 보기에는 일본정원의 독주를 설명하기 힘들다. 일본정원 못지않게 정원의 정체성을 지닌 중국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세계화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일본을 상징하는 문화 키워드에 차, 분재, 스시, 유도, 가라오케, 애니메이션 그리고 정원이 들어간다. 2006년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일본정원의 약 1/3인 152개 정원이 ‘일본의 지방자치단체와 해외 도시 간의 우호·친선 기념으로 만들어진 정원’이라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해외정원박람회라든지 지방자치단체 간 자매결연에 정원이 간혹 포함되는 것에 비하면 매우 전략적인 접근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해외 일본정원 중에는 그 나라에 진출하는 민간기업에서 지원한 곳도 다수 있다고 한다.

정원은 조성도 중요하지만 사후 관리가 굉장히 중요하다. 일본정원은 시대적으로 독특한 유형과 아울러 정적인 이미지, 나무와 바위, 구부러진 소로 그리고 자연적으로 표현된 형형 색깔의 단정한 공간을 무기로 유료정원으로서의 관리정책과 조성 당시에 사후 관리까지 포함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유명한 일본정원이 산재한 곳에서는 지역에서 자체 동호회가 구성되고 심지어는 정기적으로 원조 일본정원을 답사하러 직접 일본을 가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그럼 해외에 산재한 수많은 일본정원은 무슨 역할을 하는가? 과연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탑을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뜨리는 것은 한순간이라지만 곳곳에 안전장치를 해놓은 탑은 무너지는 것도 미연에 방지하고 복구도 용이하다. 정치적으로 동북아시아의 혼탁한 상황은 힘의 논리로 곧장 결과해석이 되는데, 이 힘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장치가 바로 우호 국가의 확보이다. 그런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동북아에서 우리의 위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문화는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정치 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를 만회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예컨대 정치적인 이유로 미·일 관계가 소원해져도, 영화 닌자거북(Teenage Mutant Ninja Turtles), Big Hero 6 등이 흥행몰이에 성공했고, TV에서는 아메리칸 닌자워리어(American Ninja Warrior)라는 쇼 프로그램에 미국인들이 열광한다. 최근 미국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으로 하루 중 가장 많이 접하는 광고는 단연코 일본자동차 광고이다. TV, 라디오, 각종 행사의 스폰서까지 지역 사회 구석구석 전방위적으로 접하게 된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한 나라에 대한 인식이 어느새 생활 깊숙하게 우호적으로 침투하여 정치, 경제를 좌지우지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한 장면으로 서울의 간판 몇 개가 보였다고 호들갑을 떨기 이전에 냉정하게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결과에 이르기까지 일본정원이 은근히 지펴온 군불은 쉬이 꺼지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를 돌아볼 시간이다. 과연 우리의 정원문화도 한류의 한 부분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까? 조경인이라면 이 한 가지 질문만 가지고도 수없이 많은 가능성과 과제를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떠올릴 수 있다. 그게 가능할까? 근본적으로 우리의 조경양식이 정체성은 갖고 있는 것인가? 누가 어떻게 추진하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적으로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 인력양성은? 투자주체는? 등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지만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

최근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12월 9일 조경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는 낭보다. 조경진흥법 내에는 ‘조경의 국제협력 및 해외시장 진출 지원에 관한 사항’이라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세부적으로는 ①관련 정보의 제공 및 상담·지도·협조 ②관련 기술 및 인력의 국제교류 ③국제행사 유치 및 참가 ④국제공동연구 개발사업 ⑤그 밖에 해외진출 및 국제교류 지원을 위하여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사항 등이 포함되어 있다. 법이 공포 및 시행된 후 조경진흥기본계획이 수립될 때 우리 조경의 국제화에 대한 마스터플랜에 기대를 걸어볼 만 한다. 이때 일본정원의 세계화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최송현(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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