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사는 주변 환경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할까?

누구나 생활하는 환경이 위험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쾌적하며 아름답게 살기를 원할 것이며, 그런 환경을 자랑거리라 생각할 것이다.

이런 자랑스러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나 마을을 푸르게 만들기도 하고 집이나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고자 정성을 들인다. 정원이 없는 아파트에서도 이제는 주차장을 지하로 하고 주변을 공원화하며, 베란다에도 미니 정원을 만들거나 꽃이 피는 작은 화분을 배치한다.

식물이 주는 쾌적함과 잎의 녹색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은 일찍부터 느껴 왔던 자연의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 작은 꽃이라도 피면 커다란 생활의 즐거움을 찾게 할 것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아름다움’이란 말은 아름과 다운으로 형태소를 나눌 수 있다. 아름은 ‘아람에서 아름으로 변형된 말’이다. 아람은 상수리 밤이 충실하게 익어 저절로 떨어질 정도가 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그 열매가 다음 세대를 이어 가기에 충분하다는 뜻과 웅장하게 성장한 수목을 양팔로 안아 보았을 때 품 안에 꽉 찬다는 것을 아름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모든 것이 빈틈없이 꽉 차고 제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을 때가 아름다움이다. ‘다운’은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상태를 ‘~다운’ 또는 ‘~답게’라 할 수 있다. 즉 사람은 사람답게 행하고 자연은 자연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을 때를 ‘아름답게’ 또는 ‘아름다운’이 완성 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추구하는 아름다운 환경은 사람이 제자리에 위치하고 자연을 제자리에 돌려주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고 이를 통한 이룸이 아름다운 환경 일 것이다.

먼저 사람을 사람답게 하기 위해서 사람이 제자리에 위치한다는 것은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해 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생활하는 환경을 돌아보면 도심에서 사람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

직장에서 집에서 사람의 자리는 어떤가?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이 생활공간에서 제대로 사람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안전과 안락함. 그리고 편안함을 느끼고 즐기는 것일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생활공간인 도시에서 사람대우를 받는다고 할 수 있을까?

차와 사람이 뒤섞여 불안과 불쾌함의 연속이고 회색빛 건물숲은 안정된 정서를 빼앗아간 지 옛날일 것이다. 사람이 생활하는 도시는 원래 어떤 곳이었을까? 사람에게 편안함을 제공해주는 자연이 차지하고 있는 자연의 공간이었다.

교통의 발달로 사람의 행동반경이 넓어지고 사용하는 도구의 발전으로 자연은 점차 제자리를 잃어버리고 인간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무시당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제 ‘자연’은 사람이 사람으로 대우를 받기 위해 일상을 벗어나 일부러 찾아가서 만나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멀어진 자연은 우리들의 어느 안중에도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잠시라도 여유를 갖게 되면 자연을 찾는다. 사람들이 자연을 찾는 이유는 사람도 자연이고, 자연과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함께 생활해 오면서 형성된 자연과 동화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

긴장되고 바쁜 일상으로 잠시 잊고 살았지만 ‘자연과의 공생’은 모든 생명체의 필수로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을 것이다.

지구 생명체 중에서 가장 대우받고 싶어 하는 인간은 자연을 인정하고 공생해야 한다.

생활터전 확대를 위해 파괴되고 사라져간 자연을 사람의 힘으로 재생하고, 쇠약해진 자연을 제자리를 찾아주어 사람대우를 받고자 하는 것이 바로 조경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여기서 조경의 역할을 좀 더 찾아보면 생활공간에 자연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연은 사람을 돋보이게 해주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해 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조경으로 재탄생되는 공간을 잘 보존된 존치 자연공간과 단절감 없이 편안한 연결, 그야말로 자연을 재창출 하듯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하는 것이 조경이다. 이렇게 조경이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잘 수행할 때 훗날 사람은 제대로 된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지만 잘못된 조경은 자연의 보복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자연은 오랜 세월 동안 순화되고 적응하여 현재의 형태로 균형을 만들었으며 유지되어 가고 있다.

자연이 긴 시간 동안 유지할 수 있는 데에는 식물 서로가 서로를 인정할 수 있는 식물의 사회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자연을 창출하는 조경에도 수목과 초화류의 선택에 식물의 사회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상호 간에 호환이 잘 될 것이며 경관 또한 가장 자연스럽게 형성 될 것이다.

그런데 일부 조경에서는 일시적인 미(美)를 위해서, 외부의 권유로 또는 진행자의 미숙으로 검증 없이 어설프게 만들어진 조경은 자연의 교란으로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런 선택은 자연을 제자리에 돌려주는 것이 아니고 자연에 고통과 파괴를 주는 행위이며 곧 인간도 그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런 지침을 알려주는 곳이 식물원, 수목원으로 조경가를 위한 아주 충실한 교과서이다.

 “자연은 시간입니다.”

인간이 재창출한 자연도 시간이 지나야 목적했던 자연. 즉 사람 대접받는 자연이 만들어 질 것이다. 조경이 만들어낸 자연은 훗날 냉정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조경은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무시하고 파괴한 자연을 복원하는 것으로 책임감 있는 문화이자 자연을 존중하는 철학이다.

이원한(조경학박사·조경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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