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진(디자인스튜디오 loci 대표)

아이폰 6가 이전의 액정크기를 포기하면서 이제 스마트 폰은 대화면의 시대에 완전히 접어든 것 같다. 큰 화면에 대한 소비자들의 체감 만족도는 대체로 높아 보인다. 그런데 이런 경향이 어디 스마트 폰 뿐이겠는가. 가정집에 거치되는 티브이며 영화관의 스크린 크기도 할 수만 있다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크게 보이고, 자세하게 보이는 것이 미덕인 시대다. 지하철의 모든 이들이 자기만의 화면에 몰두하는 풍경도 그만큼 보는 즐거움을 벗어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마치 중독처럼.

우리는 대부분의 외부 정보를 시각을 통해 입수한다. 화려한 패션이나 미용 성형의 유행도, 상대방의 눈에 예쁘게 보이고 멋지게 보이고 싶은 욕망의 결과다. 자극적인 디자인으로 시선을 끄는 거리의 간판들, 고급스런 장정으로 꾸며진 서적들, 한껏 배고픈 이들의 구미를 자극하는 음식점의 메뉴판까지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한 일차적 판단을 보이는 것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 보이는 것들이 모두 진실이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위선으로 가득 찬 어느 정치인의 눈물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이 진실이 아닌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속 빈 강정이라든지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말은 모두 눈에 보이는 것과 실제가 다른 것에 대한 실망과 조롱을 꼬집는 말들이다. 지금은 어느 시대보다 보이는 시각정보가 우리 주변을 가득 채운 세상이지만, 그것에서 오는 불신 또한 만만치 않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것이다.

꽤 오래 전 일이다. 대규모 조경공사가 진행된 단지에 심어진 나무들이, 공사가 준공된 지 십여 년이 지났음에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고사 직전에 놓은 상황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그 원인을 알아내고자 수목 아래를 굴착해보니 단단하게 다져진 논흙에 건설 폐기물까지 뒤섞여 있었다. 나무들이 죽어날 수밖에. 사정이 이러한데 어떤 나무들인들 제대로 살아갈 수 있었겠는가.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필자가 살던 어느 신축 아파트에 심어진 장송이 채 일 년을 버티지 못하고 고사했다. 키가 이십여 미터에 가깝고, 뿌리분의 높이도 거의 사람 키만큼 거대한 나무였는데, 그 나무를 지탱하고 있는 토심은 불과 가슴높이 정도였으니 이런 악조건에서도 일 년 가까이를 버틴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대충 심어놓고 흙으로 덮어 놓는다고 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멋진 소나무만 생각하고 땅 아래 상황에 너무 무심한 탓이다.

조경이나 건축은 그 속성이 사람과 같아서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아무리 신체가 근사하고 외모가 출중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신체 기관들이 온전하지 못하면 건강하다고 말 할 수 없다. 엑스레이, 컴퓨터단층촬영, 자기공명영상장치 같은 기기들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진단하는 장비들 아닌가. 그만큼 보이지 않게 감춰진 것들이 더 중요한 것이다. 건축물 역시 그 기능이 무리 없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외장재가 아닌, 그 속에 감춰진 여러 설비들이 제각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하물며 생명체를 다루는 조경분야에서는 어떻겠는가.

수목이 생육하기에 적당한 토심은 확보되어 있는지, 식재용 토양은 충분히 양질의 것으로 배려되고 있는지, 빗물을 모으고 흘려보내는 장치들은 무리 없이 마련되어 있는지, 물을 공급해 주는 관수장치들도 합리적으로 고려되었는지, 이런 것들은 두 번 세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땅 아래가 건강하지 못하면, 그 위에 생육하는 식물들 역시 온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조경공간에 만들어지는 수공간도 마찬가지다. 물은 매력적인 물질이라 고요한 수면, 역동적인 흐름, 분출하는 형태에 이르기까지 설계자가 가장 즐겨 다루는 요소라고 말 할 수 있다. 작품사진으로 보면 아름답고 매력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실제로 현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름철에는 악취가 발생하고 심하게 녹조가 형성되어 부영양화가 진행되는 경우도 많아, 가동을 중단한 채 흉물로 방치되는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 물이라는 살아있는 물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 생태적인 시스템을 간과한 탓이다. 눈에 보이는 형태와 시각적 효과에만 집중했지 그것이 잘 유지되도록 하는 장치에는 집중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필자도 이런 경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단단한 방수층과 순환펌프만이 능사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근사한 디자인에만 매료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소홀히 다룰 수는 없는 것이다. 기본이 없이 좋은 공간을 만들고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런 반복적인 실수 혹은 무관심이 한편으로는 설계실의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춰진 디테일을 다루는 일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디자인 작업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 말이다. 디테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백 번의 말보다, 이 분야의 전문가를 대우하고 최고가 되도록 지원하는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문제를 건축이나 토목분야 같은 협력 작업자들은 잘 모르고 간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차피 하나의 공간은 모두의 협력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적절히 대응할 때를 놓치면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기반 장치들은 결과적으로 누락되거나 재시공이라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벌써 새해 첫 달의 절반을 넘기고 있다. 우리들의 소중한 작업들이 자칫 보이는 것에만 치중해서 정작 세심하게 챙겨야 하는 것들을 놓치는 일들이 없어야겠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기에,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 많다.

박승진(객원 논설위원·디자인스튜디오 loci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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