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종상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한국생태환경건축학회장

조경이라는 용어와 학제가 한국에 도입된 것도 어언 40년이 넘었다. 그 동안 한국 조경은 정부 혹은 공공 주도의 국가적 사업이나 신도시 관련 사업에서부터 민간 기업의 조경 관련 사업으로 업역을 확장해왔다.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1990년대 이후부터는 각 지자체별로 공공환경 개선이 주요 현안으로 대두되면서 도시공원, 하천 등은 물론 가로, 광장, 옥상 등이 조경의 업역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또한 민간 부문에서도 아파트와 리조트 등에서 조경의 중요성이 부각되기도 하는 등 조경의 업역과 역할이 어느 정도 정착되는 성과도 얻을 수가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산업화와 개발 주도의 이른바 토건 시대가 더 이상 추진력을 가질 수 없는 현 시점에서 한국 조경은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 듯하다. 그 출구를 찾으려는 노력의 하나로 필자는 조경이 지닌 본연적 가치와 효용을 재확인하고, 그것을 우리 사회에 공감하도록 할 필요성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생각한다. 조경의 가치와 효용에 대해 우리 사회가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면 저절로 조경 수요로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조경이 지닌 본연의 여러 가치 중에서 필자가 특별히 내세우고 싶은 키워드는 건강과 행복이다. 그 시작은 조경의 주대상인 자연을 매개로 하여 일어난다. 조경의 역사에서 그 구체적인 사례로는 초창기 도시공원을 보는 인식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공원의 등장은 18세기 산업화와 도시화로 환경과 노동문제가 심각해져가던 도시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도시 환경과 위생을 개선하고 노동자들의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는 유력한 처방으로 공원이 제시된 것이다. 더럽고 과밀한 도시에서 벗어난 피난처로서 도시공원은 이후 공중위생법의 등장과 함께 축구장, 보울링그린, 테니스장 등의 운동시설을 확보함으로써 시민들 건강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는 행복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장으로 부각되었다.

당시 영국 수상 William Pitt the Elder(1766-68)가 공원을 ‘런던의 폐’ the lungs of London라고 칭한 데에는 이러한 인식이 단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공원을 보는 이런 시각은 그대로 신생국 미국에도 이어졌다. 19세기 중반 이후 유럽으로부터 이민자가 대거 유입되면서 위생, 범죄, 마약과 알콜 중독, 인종간 갈등 등의 각종 사회적 병리로 시달리던 뉴욕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으로 공원이 제시되었고, 그 구체적 성과물이 센트럴파크라는 사실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서구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우에도 이미 구한말에 유길준이 서구 도시를 유람하면서 본 공원을 정신과 기력 회복의 장이면서 부자와 가난한 자를 화해시켜주는 사회적 통합의 장이라고 간파해 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와 닿는다. 이미 수세기 전부터 공원은 단순히 자연으로 치장된 오아시스를 넘어 시민의 육체적 건강을 증진하고 도덕과 민주의식을 고양함으로써 사회적 갈등과 병리를 해소해 줄 수 있는 치유의 장으로서 역할을 해 온 것이다.

유사한 시각을 한국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가 있다. 조선 시대 수많은 선비들이 자연 속에서의 수양과 강학을 중시하여 구곡을 조영하고 유산을 즐겼던 것도 자연이 주는 그러한 효용을 중시하였기 때문이다. 풍수지리도 건강한 삶을 위한 자연 환경을 찾으려는 노력의 산물에 다름 아니다. 조선시대 최고 유학자 퇴계 이황조차도 땅의 지세를 따져서 어디에 거처하느냐에 따라 기운이 다르다고 하지 않았던가?

최근에 쏟아지고 있는 조경 공간과 건강간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는 보다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녹지와 건강과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들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관리된 오픈스페이스가 유발하는 여가 및 운동에의 능동적인 참여 효과 연구(Kaplan and Kaplan, 1989; Maas, 2008; Thompson, 2010), 자연이나 녹지에의 경험이 주는 질환 예방이나 완화 효과 연구(Pretty et al., 2005; Thompson, 2011) 등은 그 좋은 예이다.

단순히 녹지공간에 근접해서 거주하는 것이 건강과 웰빙을 향상시킨다는 주장(Mitchell and Popham, 2007)이나, 창문으로 그린이 잘 보이는 병실 입원환자가 회색 벽만 보이는 병실보다 치료 효과가 빠르고 결과적으로 입원기간이 짧았다는 연구(Ulrich, 1984)는 조경의 건강 효용을 직설적으로 설명해 준다.

또 대도시 내 일상 환경에서 걷기를 위한 오픈스페이스의 존재가 노인들의 장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Takano et al. 2002)와, 공동주거에서 잘 유지 관리된 공용의 정원이나 수목이 범죄나 가정폭력을 저감시킨다는 연구(Sullivan and Kuo, 1996; Donovan et al. 2012)도 있다. 이들은 모두 조경이 만드는 녹색 환경이 단순한 경관이나 휴식, 레크레이션 등의 효용뿐만이 아니라 구성원의 육체적, 심리적, 정서적, 사회적 건강을 촉진할 수 있다는 ‘건강생성조건으로서 조경’ Landscape as a Salutogenic Context (Thompson, 2011: 187)의 확장된 효용 가치를 입증해주고 있다.

우리 사회에도 이미 많이 익숙해진 주제인 환경복지, 건강도시, 치유정원 등은 물론,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치유적 경관 therapeutic landscape, 건강지리학 health geography, 치유적 이동 therapeutic mobility 등의 개념들도 모두 조경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각종 병리현상으로 진통 중이다. 온갖 범죄와 대형 참사가 거의 날마다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최근에는 노인 및 빈곤층 문제와 청소년 비행도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자살률과 이혼율은 근 10여 년째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출산율은 거의 바닥 수준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행복지수가 OECD국가 중 최하위 수준인 것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게임이나 TV를 오래 즐기는 우리 아이들이 전두엽 성장이 더디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왕따나 학교 폭력, 게임이나 인터넷 중독, 품행장애와 ADHD, 청소년 우울증과 자살, 아토피나 비염 등도 모두 그와 무관하지 않다. 날로 교묘하게 발달하는 게임이나 인터넷, 핸드폰 등에 육체와 정신을 통째로 붙들린 채 헤어나기 어려운 우리 청소년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미국의 아동교육 전문가 리처드 루브는 인간이 자연과 멀어지면서 생기는 문제를 ‘자연결핍장애 nature-deficit disorder’라는 개념으로 적시하고 있다. 감각 둔화, 주의집중력 결핍, 육체적 질병이나 정신적 질환 증가 등은 모두 자연과의 접촉 부족과 관련이 크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을 자연에서 멀어지게 하는 사회는 심한 질환을 앓고 있는 사회라고 갈파한 그의 주장은 작금의 한국 사회에 진지한 고민을 요구하고 있다.

앞에서 본 여러 연구결과들은 이런 문제 해결의 처방을 조경에서 찾을 수도 있다는 개연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독일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프 코흐가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찾을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 다양한 행복 찾기를 한 끝에 정원 가꾸기를 가장 효과적인 방편이라고 고백한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IT 기술의 나라, 세계 10대 경제 대국인 한국에 살고 있는 조경인으로서 어릴 때 뛰놀았던 앞 시냇가나 뒷동산이 새삼 아쉽기만 하고 그러기에 우리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하다는 고백은 필자의 지나친 감상 탓만은 아닐 것이다.

성종상(객원 논설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한국생태환경건축학회장)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