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왕자의 신분으로 고통을 모르고 성안에서 살던 석가모니는 성 밖으로 외출을 나갔다가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석가모니는 산다는 것은 고통의 연속이라며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말했다. 어려운 불황의 조경고해(造景苦海)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마음은 바다에 떠가는 나뭇잎처럼 파도에 쉽게 흔들린다. 정말 마음의 갈피를 잡아 나가기 힘들다. 아침에 이런 마음이 들었다가도 저녁에는 다른 마음이 들고 세상 탓하다가도 스스로 자책하여 마음이 무너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바뀌는 허무한 마음이 든다. 이토록 막막한 조경고해(造景苦海) 시대의 원인은 무엇인가? 정말 그동안 우리는 순혈주의라는 온실 속에서 화초(花草)처럼 자라 환경 변화에 순응할 줄 모르기 때문인가? 아니면 변화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존 방법에 집착(執着)하고 있기 때문인가? 어떻게 하면 조경고해 시대를 지혜롭게 벗어날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는 바다가 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모인 물은 세상에서 가장 넓은 바다를 만들고 그 끝 수평선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하늘과 만난다. 바다는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움직인다. 그 움직임의 끝에는 태풍이 있으며 저 바다 밑까지 온전히 뒤집혀져야 다시 새로운 생명을 만든다. 제 몸을 온전히 뒤집어 내고서야 비로소 새 생명을 만드는 바다, 그래서 바다는 생명의 어머니다. 우리 삶에서 태풍은 고난과 고통의 상징이다. 태풍의 시기에 어디에 있었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과 역사는 달라진다. 큰 배도 큰 사람도 작은 파도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결국 노아의 방주처럼 조경고해 시대에는 절실히 큰 배와 큰 사람이 필요하다. 그럼 과연 사분오열된 조경계의 현실에서 노아의 방주는 어디 있을까?

우리에게도 분명 노아의 방주 역할을 할 단체가 있다. 1992년의 세계조경가연맹(IFLA) 서울-경주 대회 때 결성된 '조경연합회'의 정신을 계승한 (재)환경조경발전재단이 있다. 2004년 10월 8일 환경부 인가를 받아 설립된 (재)환경조경발전재단은 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사회, 한국환경계획조성협회, 대한건설협회 조경위원회, 대한전문건설협회 조경식재·시설물설치공사업 협의회 등 조경분야 6개 단체가 주축이 되어 있는 거대한 단체이다. 최근 조경진흥법 제정을 위해 힘쓰고 있는 환경조경발전재단은 지난 10년 동안 조경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무슨 전략을 세우고 준비했는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수많은 조경인이 십시일반(十匙一飯) 모아서 조성한 약 15억 원의 재단기금은 지금 같은 조경고해의 시대를 위해 준비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조경고해 시대에 환경조경발전재단이 노아의 방주가 될 수 없다면 정말 한마디로 시대유감(時代遺憾)이다.

지난 11월 20일자 조경시대 진승범 객원 논설위원은 ‘철저한 무사유(無思惟)를 경계하며’라는 글에서 필자는 단체에 있어서 구성원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면서, 단체의 모든 일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방관자적 태도 -타자의 입장에서 서서 생각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 철저한 무사유(無思惟)- 를 보이는 부류가 단체의 발전에 가장 해악한 집단이라고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인용하여 전하고 있다. 맞는 말이고 시의적절한 지적인 것 같다. 무슨 힘든 일이든 함께 모여 나누면 가볍게 해 낼 수 있다. 많은 사람의 염원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저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혼자 걷는 길보다 여럿이 걷는 길이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된다. 조경고해의 시대에 노아의 방주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더 이상 조경 단체에 대한 무관심과 무사유의 태도를 버려야 한다. 조경 단체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곧 노아의 방주이며, 이 시대를 헤쳐 나갈 유일한 대안이다.

천학단재(淺學短才)한 필자가 어느덧 마지막 원고로 한 해의 마무리 인사와 새해 인사를 동시에 드린다.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2014년 갑오년(甲午年) 말(午)의 해가 저물어 간다. 내년은 을미년(乙未年) 양(未)의 해가 되겠다. 을미년(乙未年) 양의 해는 청양띠라고도 하며, 청양띠의 특징은 비교적 온순하고 무리생활을 즐기며 사회성과 친화력 뛰어나 공동체 내에서 잘 융합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새해에는 우리가 조경을 사랑하는 마음들이 푸른 양처럼 한데 모아져 조경GO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조경고해(造景苦海) 시대에 힘든 조경인의 마음을 임재범의 ‘고해’로 대신 시대공감(時代共感) 하고자 한다.

어찌합니까 어떻게 할까요/ 감히 제가 감히 조경을 사랑합니다/ 조용히 나조차 나조차도 모르게/ 잊은 척 산다는 건 살아도 죽은 겁니다/ 세상의 비난도 미쳐 보일 모습도/ 모두다 알지만 그게 두렵지만 사랑합니다/ 어디에 있나요 제 얘기 정말 들리시나요/ 그럼 피 흘리는 가엾은 제 사랑을 알고 계시나요/용서해주세요 벌하신다면 저 받을게요/ 허나 조경만은 제게 조경 하나만 허락해주소서/ 어디에 있나요 제 얘기 정말 들리시나요/ 그럼 피 흘리는 가엾은 제 사랑을 알고 계시나요/ 용서해주세요 벌하신다면 저 받을게요/ 허나 조경만은 제게 조경 하나만 허락해주소서/ 어디에 있나요 제 얘기 정말 들리시나요/ 그럼 피 흘리는 가엾은 제 사랑을 알고 계시나요/ 용서해주세요 벌하신다면 저 받을게요/ 허나 조경만은 제게 조경 하나만 허락해주소서

안세헌(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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