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상욱 (LH 파주사업본부 건설사업단장)

12월도 중순을 향해 간다. 사무실 창밖의 운정호수공원에도 얼음이 얼고 호숫가를 빙 둘러선 숲에는 화려했던 옷을 벗은 나무들이 을씨년스럽다. 지난 1월에 이 연재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읽는이들과 나누고자 약속했던 게 있다. 되돌아보니 한말 조경용어, 땅과 흙과 물 중시, 조경 정책, 조경 관리, 인접 분야와의 소통 등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통계와 참여와 공공성은 제대로 나누지 못한 것 같다. 오늘은 미처 다하지 못한 주제와 몇 가지 토막을 더해 이야기하면서 제 연재 글을 마감하고자 한다.

하나, 조경의 공공성에 주목하자! 지난 40여 년 동안 국토개발과 도시개발이 대규모로 진행되면서 공원·녹지·도로·산업단지 등 도시기반시설 확충에 따른 수요가 조경분야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1990년대부터는 국민소득 향상으로 개인 건축물의 조경과 정원에 대한 수요가 증대되어 왔는데, 성장이 제자리를 맴돌며 건설산업 전반의 정체분위기와 맞물려 조경분야가 힘든 시기를 맞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최근의 정책흐름도 조경계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규제 완화라는 차원에서 국민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경 관련 기준마저 허물어지고 있다. 이른 바 조경면적의 축소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러한 흐름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공원녹지 등 조경분야가 맡고 있는 시설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효과를 계량화시키고 금액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명분과 가치만으로는 정부와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탄소저감 효과, 열섬방지 효과, 건강증진 효과, 심리치료 효과를 구체적으로 계량화시켜 국민과 정책입안자에게 조경의 공공성을 쉽게 보여주어야 한다.

둘, 정책통계 구축에 힘을 쏟자. 통계청 누리집에는 우리나라 주요 주제별 통계 예를 들어 인구, 가구, 고용, 노동, 임금, 건설, 주택, 농림, 기업 등의 정보가 가득하다. 그러나 조경 관련 통계를 내 입맛에 맞게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공원녹지 등은 지자체별 개소 수와 면적 자료는 있지만 개별 공원녹지의 세부 정보는 제공하고 있지 않다. 지자체의 통계를 확인해보아도 공원종류별 위치, 면적, 주요 시설 등이 들쭉날쭉하다. 녹지면적과 시설면적, 교목과 관목수량, 주요 시설물 등이 제공되지 않아 실태를 파악하고 분석하는게 거의 불가능하다. 조경정책 및 발주기관(행정·공기업), 학계(학회·대학·고교), 조경산업(종합건설업·전문건설업·수목농장·원자재회사·시설물제조회사), 설계업(기술사사무소·엔지니어링업)의 조직·종사자·매출액·계약금 등에 대한 통계도 종합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공동주택단지와 산업단지 등의 조경면적과 조경수목 통계도 구축해야 한다. 조경 관련 공간과 시설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지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조경분야가 맡고 있는 다양한 정보를 통계로 구축하해야 하며, 전문가들이 시계열로 분석하여 조경분야의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조경계의 눈으로 정부나 지자체의 통계체계를 개선시켜야 하며, 그 다음에는 학계와 산업계의 통계기반형 연구와 영업 전략이 필요하다.

셋, 조경 정보와 자료의 사랑방을 만들자. 생활사로서의 조경 역사가 천년을 넘고 제도화된 지도 40여 성상을 지났으며, 지금도 수많은 조경 정보가 생겨나고 있다. 소중한 과거의 자료가 조용히 사라지고 쏟아지는 정보는 모이지 않는다. 조경인이나 일반 시민들이 궁금해 하는 과거와 최신의 조경정보나 자료를 찾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대학, 학회, 라펜트, 기술사회 등 나름대로 모으고 있고 모은 자료를 제공하느라 힘쏟고 있지만 불편함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중장기 계획을 세워 흩어져 있는 조경자료를 모아 조경아카이브를 만들자. 어디엔가 조경도서관과 조경박물관도 세워야 하며 조경정보센터도 구축해야 한다. 조경정보센터의 경우 구축할 정보의 종류와 틀을 잘 만들어 시민들과 쌍방향형으로 구축하면 저비용으로도 빠르게 구축하고 유지관리도 쉬울 것이다.

넷, 조경은 문화이다. 새삼스러운 말이 아닌데도 절박하게 다가온다. 궁궐정원(공공청사 조경), 서원정원(학교 조경), 별서정원(민간 조경)에서는 저절로 조원원리와 설계자·소비자의 철학과 그 시대의 문화를 떠올린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조경에서 기능과 안전과 디자인 그리고 돈을 떠올리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도시에서도 이제는 사람의 마음을 사려는 수많은 시도가 우리를 감싸고 돈다. 조경에서 강조하는 기능과 안전과 디자인 그리고 환경도 결국 사람(소비자)의 마음을 얻으려는 것이다. 조경이 사람의 생활양식임을 강조하자. 우리 스스로 조경기술을 넘어 조경문화로 인식할 때 미처 보지 못했던 것도 볼 수 있고 낯설었던 것도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 조경가가 마음과 눈을 넓힐 때이다.

다섯, 사회참여는 전문가의 의무이다. 정부·지자체가 주는 행정서비스나 기업이 주는 제조서비스를 시민들이 앉아서 받기만 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21세기의 사회에서는 시민들이 받고 싶은 서비스를 시민들이 요구하고 나아가 직접 만들어가고 있다. 한뼘정원만들기(게릴라가드닝), 한평공원만들기, 공공미술, 마을만들기, 경관개선사업, 도새재생 등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주민참여형 활동과 시책에 조경인들이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 조경계 역량에 비해 사회참여수준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일방적인 공급자의 위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경인들도 시민의 눈으로 시민의 마음을 읽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몫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조경의 과거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여섯. 국민의 마음을 얻자. 우리나라에서 조경분야가 전문분야로 자리 잡은 지 40여 년이 흘렀다. 그 동안 척박한 여건속에서 아쉬움도 적지 않았으나 제자리를 일구면서 나름대로 제 구실을 해 왔다. 조경분야를 필요로 했던 사회환경은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그렇기에 조경계는 현재의 틀에 안주하지 말고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 보듬고 시원하게 풀어주어야 한다. 다른 분야와 다른 마음으로 다른 눈으로 다른 손으로 국민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어야 한다. 개발시대에서 국토와 도시 그리고 국민의 마음을 치유하면서 제 구실을 했듯이 21세기의 사회에서 새로운 구실을 찾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이 연재를 마치면서 개인적으로 나를 돌아본다. 조경가로서 주택도시 공기업에서 일하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주택·도시·복지 그리고 참여를 넘나들었으니 무엇이 아쉽겠는가. 밤낮없이 한창 활동하던 그 40대 시절이 나의 황금기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젊은 후배들을 부러워하는 나를 보곤 놀라고 있다. 모든 재산을 주고서라도 젊음을 사고 싶다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조경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제 40여 년의 중년에 들어선 조경계로서는 지금까지의 틀에 안주하지 말고 아직 젊다는 생각으로 모든 판을 새롭게 바꿔가야 한다. 젊은 조경전문가들의 힘찬 용기와 그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마당을 깔아주는 어른들의 지혜가 함께 필요하다.

탈고하는데 조경진흥법 제정안이 국회본회의를 통과했다는 낭보가 들려왔다. 법률안이 제정되는 오늘까지 온갖 고통을 짊어졌던 관계자들께 고마움의 말씀을 드리며, 응원해준 조경인들과 함께 뜨겁게 축하한다. 그 동안 취약했던 조경의 정책제도화가 큰 열매를 맺는 순간을 지켜보는 증인으로서 가슴 벅차며, 오늘처럼 한 걸음이라도 나아지기를 꿈꾼다.

안상욱(객원 논설위원·LH 파주사업본부 건설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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