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악산 만경대(명승 제104호) <사진제공 문화재청>
명승 지정 기준에는 저명한 경관의 조망지점 항목이 명시되어 있다. 예부터 선조들이 높은 곳에 올라 주변 경치를 감상하던 곳이 바로 대(臺)이다. 대는 설문해자에 의하면 사방을 볼 수 있는 높다란 곳을 일컫는다. 계성의 원야에서는 대는 돌로 높이 쌓은 곳, 또 이규보는 사륜정기에서 판을 대어 높이 쌓은 곳이라 정의하기고 했다. 설악산의 만경대는 자연형상에 속하는 대의 일종이다.

만경대는 문화재지정구역이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산12-21, 산75번지 일원으로 된 오세암 바로 앞의 해발 922.2m인 봉우리이다. 오세암으로 내려가기 직전에 내설악을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바로 만경대라 할 수 있다.

만경대는 글자 그대로 만가지 경치가 보여지는 곳으로 그 의미로도 손색이 없다. 이 곳은 용아장성, 공룡능선, 흑선동계곡, 나한봉 등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저명한 경관조망지점인 것이다. 용의 이빨을 닮았다는 용아장성과 공룡군단이 지금이라도 큰걸음을 내딪는 듯한 공룡능선, 가야동계곡의 천왕문, 아름다운 기암들이 꽃을 피운 듯한 천화대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비경들이 군상을 이루고 있다.

만경대에 서서 발 아래를 보면 아담한 규모의 사찰건물들이 보인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암자를 짓고 ‘관음암’이라 했다가 허물어진 것을 인조 21년(1643)에 설정이 다시 세운 오세암이 바로 그 곳이다.

조선 초기 생육신 중 한 명인 김시습이 여기에서 출가하였고 5세 동자에 얽힌 유명한 설화도 흥미롭다. 설정대사가 고아신세가 된 조카를 키웠는데 겨울에 음식을 구하러 저잣거리에 내려갈 때 며칠동안 먹을 음식을 장만해 놓고 조카에게 이르기를 “이 밥을 먹고 관세음보살을 외우고 있으면 법당안의 관음보살이 너를 보살펴 줄 것이다” 라고 당부하였다고 한다.

밤새 폭설이 닥쳐 겨우내 돌아오지 못하고 이듬해 봄에 조카가 굶어 죽었을 것이라고 체념하고 돌아와보니 조카가 목탁을 치며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다고 한다. 설정대사는 관음의 신력으로 5살의 동자가 살아난 것을 기려 그때부터 이곳을 오세암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세암의 요사채 지붕 너머로 펼쳐지는 설악산의 중첩된 산자락은 운해에 걸려 한폭의 산수화를 옮겨 놓은 듯 여전히 아름답기만 하다.

<자료 제공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