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춘매 화가의 ‘시간여행’, 작품크기(가로×세로) : 72.7x53.0㎝, 재료 : Acrylic on canvas, 제작년도 : 2013년

 


정동은 어느 계절이든 멋지지만

정동은 어느 계절이든 멋지지만

 

 

정동은 어느 계절이든 멋지지만
정동은 언제라도 좋다. 여름도 겨울도, 낮도 밤도. 덕수궁 돌담길과 이어지면서 휴먼 스케일을 유지하는 길은 고즈넉하고 그 길을 따라 만나는 오래된 건축물들은 이국적이다. 한마디로 걷는 맛이 있다. ‘광화문 연가’라는 노래가 그냥 나온게 아니다. 언제라도 좋은 정동, 그래도 정동이 제일 좋은 계절은 가을이다. 특히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변하는 11월이다. 가로수로 심긴 은행나무의 노란색은 주변 붉은 색 건축물들과 잘 어울리고, 빨간 벽돌 건물을 따라 올라간 담쟁이는 마지막 정열을 불태운다. 바람에 날리는 은행나무와 담쟁이는 ‘가을을 맘껏 즐기세요!’하고 손짓하는 듯 하다.

‘11월이다’는 말은 ‘올해도 다 갔다’는 말을 동반한다. 11월은 그런 달이다. 완전히 한해가 끝나는 달이 아닌, 한해의 한 달을 남겨둔 달이라 쓸쓸하면서도 아직 남은 한 달을 잘 보내자는 생의 의지가 생기는 달이기도 하다. 세상살이 별거 없어 하면서도 ‘그래도’ 라는 부사가 입술 사이로 삐져 나오는 이런 이유로 ‘11월이다’로 시작되는 김용택 시인의 ‘이 하찮은 가치’는 11월의 우리가 쓸쓸하지만 외롭지 않다고 말해준다.

혼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금의 이 하찮은, 이유가 있을 리 없는
이 무한한 가치로
그리고 모자라지 않으니 남을 리 없는
그 많은 시간들을 새롭게 만들어준, 그리하여
모든 시간들이 훌쩍 지나가버린 나의 사랑이 이렇게
외롭지 않게 되었다

화가의 11월 정동

화가의 그림에는 이런 11월 정동의 정취가 듬뿍 담겨 있다.

그림에서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빨간 색의 정동교회와 노란색의 은행나무다. 그런데 정동교회도 노란 은행나무도 갸우뚱하게 서있다. 그림을 보는 이의 앞을 향해 세게 흐르는 강줄기. 화가는 길을 파란색으로 그려 시간의 강줄기를 은유했다는데, 하여튼 정동교회와 노란 은행나무는 강줄기에 떠밀리지 않으려 발바닥에 힘을 꾹 주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사이의 사람들, 앞으로 흐르는 시간과 무언가를 지키려는 시간의 저항 사이에서 자기 템포로 내 갈 길은 가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자신들이 향하는 방향과는 다르게 흐르는 물줄기에 저항하지만 그렇다고 건축물들이 방향에는 호응하지 않는 그들, 정동의 가을 정취를 즐기려는 관광객이든, 정동에서 일상을 사는 이들이든, 상관없이 그들은 생의 의지를 보여준다.

아! 이 그림, 쓸쓸하면서도 힘이 있고 어떤 체념이 보이면서도 의지를 건네준다.

정동길의 무수한 강 줄기

화가가 그림에서 길을 물줄기로 표현한 것은 정동에 있던 서울예고를 다니던 정동시절, 일주일에 한번 정동교회에서 예배 보던 지난 시절에 대한 감회 때문이란다. 화가는 이 그름을 그리면서 ‘그림’에 처음 입문하던 때를 생각하며 각오를 새롭게 했을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이 시간의 물줄기는 개인사를 떠나 정동의 역사에 대한 은유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아름다운 정동의 가을 뒤에는 아픈 역사가 있기에.

원래 정동은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이 있어서 ‘정릉동’이라 불렸으나 이방원이 이 능을 도성 밖으로 옮기면서 ‘정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정동이란 이름이 붙여진 연유다. 정동이 역사적으로 중심에 선 것은 대한제국 때다. 1883년에 미국공사관이 처음 들어섰고, 고종이 1896년 아관파천을 단행하고 1897년 경운궁으로 이어하여 대한제국의 수립을 선포하면서 정동은 대한제국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되었다.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각국 공간이 들어섰고 서양 선교사들도 여기에 터를 잡으면서 근대문물의 중심지가 되었다. 현재에도 많은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정동사거리를 향해 가다 보면 서울시립미술관(구 대법원청사, 등록문화제 제 237호), 정동극장, 정동교회, 정동교회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배재학당 동관(서울시기념물 제 16호,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이화여고 박물관(등록 문화제 제 3호),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정동아파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등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안으로 좀 더 들어가면 구세군 중앙회관, 일제강점기 경성방송국이 있던 덕수초등학교, 옛러시아 공사관도 만날 수 있다.

건물 하나하나는 역사적 이야기를 갖고 있다. 이화여대 100주년 기념관은 과거 손탁호텔이 있던 곳이다. 손탁호텔은, 을사늑약을 강요하고 우리나라의 식민지화를 주도했던 이토히로부미가 이곳에 머물면서 고종황제와 우리나라 신하들을 협박했던 곳이다. 정면으로 정동 중심 길을 향하고 있어 많은 이들의 추억이 되는 정동교회는 1885년 4월 아펜젤러 목사가 한옥 한 채를 구입해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 처음 세워진 감리교 교회당이고 가장 오래된 빅토리아식 예배당이기도 하지만, 일제강점기 항일 활동의 거점이었고 독립 선언문을 비밀리에 등사했던 곳이기도 했다. 또 덕수궁 돌담길 건너편 덕수궁 안에 있는 증명전은 1905년 을사늑역이 체결된 장소다.

정동은 이제 ‘근대문화 유산’의 상징이 되었다. 아프지만 역사로 인정할 만큼 우리는 문화적으로 성숙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정동길을 걸으며 가을을 만끽하고 근대가 남긴 이국적 정서를 즐긴다. 서울시는 서소문 별관 13층을 대중에게 내주면서 정동을 보다 잘 즐기도록 했다. 가을 이곳에서 정동길과 덕수궁의 풍경은 본다는 그 자체로도 정서적 포만감을 준다. 그러나 다만 정동 길이 단순히 문화적 공간으로만 소비되질 않기를, 역사의 물줄기, 역사적 물줄기에 저항했던 이들의 의지를 읽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참고 자료: 정동 탐방하고 기념 스템프 모으자, 위키트리 2014년 11월 3일 기사.

 

김연금(조경작업소 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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