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이 시작되면서 ‘불가능이 우리를 이끈다’는 개회식 주제가 내 가슴에 다가선다. 몸이 조금 아니 많이 불편하지만 하고픈 의지를 꺽지 못하리라는 믿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 선수들에게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빌면서, 제도권에 진입한 지 40여 성상의 조경계인데 아직도 장애인 아닌 장애인으로 이곳저곳에서 투쟁해야 하는 현실이 못내 안타깝다.
앞서 같은 곳에서 열린 제17회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박태환의 금메달 소식을 듣지 못한 아쉬움 못지않게 45개 참가국의 국기조차 경기장 주변에서 볼 수 없었던 게 아픈 추억으로 남는다. 봄부터 대한민국을 삼켜버렸던 세월호의 아픔도 제대로 매듭을 풀지 못한 채 국민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참가국 깃발’이나 ‘세월호’의 갈등은 ‘다른 것’과 ‘틀린 것’을 제대로 나누지 못해서 생긴 아픔이다. 우리 사회는 헌법 등을 잣대로 틀린 것을 가려내는데 익숙하다. 아쉽게도, 우리가 만든 법률이 틀린 사람을 벌주기 위함이 아니고 이 사회를 건전하게 가꾸기 위함이라는 것을 자꾸 잊고 산다. 이제 나와 다른 사람을 벌주는 노력보다 우리 사회를 살리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는 여유와 그 다름의 원천인 나의 정체성을 함께 닦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조경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는 공동주택의 주민공동시설 총량제를 지난해부터 제도화시켜 왔고, 조경계는 제도 변화에 매우 민첩하게 대응하고 있는데, 조경계가 국토교통부와 직접 부딪치는 모양새는 아쉽다. 사회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입주민이 쾌적한 주거환경의 잣대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정부의 주택정책방향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주택건설기준등에관한규정의 주민공동시설 총량제도 그렇고 건축법의 조경기준 폐지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공원시설협동조합 등 이익단체의 자구행위 또한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학회·협회 등은 보다 합리적인 방향으로 대응해야 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어린이놀이터의 의무화 논란 우려만 살펴보자. 어린이놀이터(공간과 시설-국토교통부)는 어린이(청소년-여성가족부)들의 놀이·운동·여가·학습 공간으로 이런 공간의 제도적 변화는 어린이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나 학부모 특히 어머니들(대한어머니회 등)에게 매우 민감한 의제다. 공동주택의 어린이놀이터가 초중고학생들의 전인학습과 사회성 기르기에 얼마나 중요한 지 등 공공성을 밝혀내고, 그렇기 때문에 조경계는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어른들이 안전하고 호기심을 끌 수 있는 적정 놀이공간을 초중고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확충해주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이끌어내는 노력에 힘을 먼저 쏟아야 한다. 놀이터의 공공성이 사회적 공감대를 얻는 게 중요하며, 그 다음은 조경계가 어린이에게 필요한 놀이공간의 기술적 사항(시설 기준 등)을 전문가답게 책임지고 풀어내면 되는 것이다. 직접 국토교통부와 부딪치기에 앞서서 다른 중앙부처나 시민사회단체 등 여러 사회 주체들과 힘을 모아 에둘러 가는 용기를 내어 보자.
사회간접시설과 건축물 옥외공간을 둘러싼 토목분야와의 해묵은 갈등도 이제는 매듭지어야 할 때이다. 도로·보도·보행자전용도로·자전거전용도로(교통시설),광장·공원·녹지·유원지·공공공지(공간시설),학교·운동장·체육시설·청소년수련시설(공공·문화체육시설),하천·유수지(방재시설),공동묘지·자연장지(보건위생시설)의 법적 기준은 국토계획법과 하위령인 도시·군계획시설의결정·구조및설치기준에 관한 규칙이다. 위 도시계획시설은 대부분 콘크리트 중심의 구조물, 식생 중심의 녹지, 차도포장/보도포장, 배수시설/빗물침투시설 등으로 구성된다. 대체로 구조적 해석이 필요한 구조물·차도(아스콘)포장· 배수시설은 토목분야에서 식생 중심의 녹지·보도(브럭)포장과 빗물침투시설은 조경분야에서 주도적으로 맡고 있으며, 건축법·주택법에 따른 건축물 옥외공간에서도 비슷한 잣대로 서로의 영역을 나누고 있다.
건설분야가 정체되고 서로의 몫을 주장하며 내땅지키기에 힘을 쏟다보니 어느 정도의 갈등은 생겨나기 마련이다. 행정·제도·건설업 규모 등에서 취약한 조경계가 온 몸으로 부딪쳐 왔지만 이제 조금 돌아서 가보자. 국민소득 수준의 향상, 사람중심의 도시, 경관과 환경 중시 등으로 조경분야의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강조되어가는 사회환경을 잘 활용해야 한다.
시행사의 CEO·인허가권자인 공무원·건축분야 엔지니어링 종사자들에게 계량화된 자료를 바탕으로 조경분야의 장점(상품 경쟁력-사람먼저, 보행먼저, 디자인, 생태성, 경관성 등)을 설득하는데 힘을 쏟자. 그리고 소비자인 시민(NGO)과 입주민(입주자대표회의 등)과 교류·학습·지원하면서 조경가들이 생산한 상품을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힘을 모으자. 실내에서 열리는 조경박람회 틀을 넘어 옥외의 광장에서 시민들과 직접 만나는 조경문화박람회는 이런 차원에서 기대가 크다.
우리는 ‘조경공사’라는 말에 익숙하다. 조경공사는 토목공사, 건축공사와 같이 건설공사(건설산업기본법)의 하나로 계획·설계·시공·관리에 필요한 기준이 다양한 제도적 틀 속에 규정되어 있으며, 특히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공공부문에서는 국가를당사자로하는계약에관한법률에 따라 조경공사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공공부문의 공사발주 비율이 높다보니 조경계에서는 건설공사로 시행되는 조경공사에 힘을 쏟아 왔지만 이제는 사회여건 변화에 따라 생겨나는 작지만 다양한 움직임에도 눈길을 모아야 한다.
마을만들기, 도시농사, 정원만들기, 도시재생, 지역만들기 등 주민과 시민의 참여속에 문화·경관·경제·자치·공동체·나눔을 중시하는 중앙정부·지자체·공기업·시민사회단체의 시책·사업·움직임에도 조경계가 능동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마을만들기전국네트워크·도시농업운동본부·도시만들기/도시재생 지원센터에 참여하고, 도시포털·지역발전포털 등을 활용하면서 다양한 시민·전문가와 만날 기회를 넓혀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비록 조경계가 눈길을 많이 주지 못했고, 공사비는 적고, 일하기도 어렵겠지만 새로운 소통·참여형 사업을 조경계의 품으로 정성껏 끌어안아야 한다.
관악기와 타악기와 현악기가 함께 모여 지휘자의 손길에 맞추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관현악단)의 감흥을 떠올려보자. 관현악단은 바이올린연주자나 피아노연주자 등 모든 연주자들이 지휘자의 손짓·몸짓 아래 자신의 소리를 약속대로 내면서 서로의 몫을 다할 때만 훌륭한 곡이 태어날 수 있다. 우리 사회도 관현악단처럼 국민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헌법의 질서 아래 사회의 발전을 위해 힘을 모아가는 것이 중요하며, 조경계도 마찬가지다.
학회, 협회, 조경사회, 설계사, 시공사, 자재사, 공기업, 대학, 시민사회단체, 행정 등 다양한 주체가 조경계의 담대한 미래를 꿈꾸어 보자. 그리고 큰 꿈을 펼치기 위해 각자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자. 조경계의 미래를 여는 큰 꿈을 가지고 작은 다름은 큰 같음을 위해 받아줄 수 있는 아량과 여유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산·학·NGO·행 등 각각의 조경주체는 조경계와의 협업뿐만 아니라 인접 분야의 산·학·NGO·행 주체와도 꾸준하게 만나고 공감하면서 조경의 장점을 나누고 그들의 아픔을 안아주자. 조경계의 담대한 꿈을 그리고 나누고 조율해 줄 리더 또한 필요하며, 큰 그림 아래 조경계의 꿈을 향해 각 주체가 에둘러 돌아가는 지혜를 우리 함께 나누자.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사무실 창 밖 운정호수공원의 지름길엔 힘찬 아줌마들이 넘쳐나지만, 숲속에 난 에움길을 두 손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의 뒷모습 또한 평안하고 아름답다.
안상욱(객원 논설위원·LH 파주사업본부 건설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