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비단을 바위 위에 널어놓은 것 같은 폭포
설악산 토왕성폭포 (명승 제96호)

▲ 설악산 토왕성폭포 (명승 제96호) <사진제공 문화재청>

우리나라는 예부터 삼천리 금수강산으로 백두산에서 한라산 끝까지 백두대간을 이루며, 금강산을 비롯한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등 수많은 명산들과 그 아름다운 기상을 자랑하는 천하절경의 폭포들이 많다. 이러한 폭포는 천지자연의 동맥이 만들어내는 강렬한 분출로서 거대한 흐름의 대장관을 펼치며, 하늘을 맞닿은 고산과 산천의 절벽에서 암벽을 가르고 힘차게 떨어지며, 산천을 뒤흔드는 굉음소리와 함께 대자연의 무한한 생명력을 과시한다(전평국, 2009). 이러한 폭포의 선경을 화폭에 담은 이경윤, 김명국, 윤정립 등 관폭도의 작가들도 있었으며 겸재 정선이나 이인상, 김홍도의 작품에도 폭포를 주제로 한 것들이 제법 있다.
명승 제96호인 ‘설악산 토왕성폭포’는 세계자연유산 잠정목록으로 지정된 설악산 내 천하의 절경들이 모인 명승 10경 중의 하나로 이중 외설악에 해당하는 곳에 육담폭포, 비룡폭포와 이웃해 있다. 특히 강원도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명승 25곳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설악산은 단일지역에 명승이 가장 많이 분포한 곳으로 가치가 높으며 외설악 5곳과 내설악 5곳 등 총 10곳 중 폭포는 3곳에 이른다.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산41에 있는 이 폭포는 노적봉 남쪽 토왕골에 자리잡고 있는데 33만8740㎡가 문화재지정구역으로 되어 있으며, 모두 3단으로 구성되어 총 길이가 320m(상단 150m, 중단 80m, 하단 90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평상시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으나 겨울철에는 빙벽전문가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빙벽등반대회 개최장소로 알려져 있다.
토왕성은 ‘여지도서’ ‘양양도호부’ 고적조에 “토왕성(土王城) 부(府) 북쪽 50리 설악산 동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을 돌로 쌓았는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세상에 전해오기를 옛날에 토성왕이 성을 쌓았다고 하고 폭포가 있는데, 석벽사이로 천 길이나 날아 떨어진다”고 기록되어 내려온다.
토왕성폭포는 화채봉에서 흘러 칠성봉을 끼고 돌아 떨어지는 연폭으로 하늘에서 비류하는 광경은 천상의 절경을 이룬다. 마치 선녀가 흰 비단을 바위위에 널어놓은 듯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폭포의 물은 토왕골을 흘러 비룡폭포와 육담폭포가 합류 쌍천으로 흐르고 있다.
조선 정조때 성해응의 동국명산기 중 ‘기관동산수’에서 토왕성폭포의 기이하고 웅장함을 묘사했고, 김창흡의 ‘설악일기’에서 토왕성폭포를 중국의 ‘여산’보다 낫다고 표현하기도 했을만큼 절승 중의 절승이다.

한국 3대 폭포 중 하나로 물보라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
설악산 대승폭포(명승 제97호)

▲ 설악산 대승폭포(명승 제97호) <사진제공 문화재청>

명승 제97호인 설악산 대승폭포는 해발 740m에 있으며, 높이 약 88m의 웅장한 폭포로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한국 3대 폭포의 하나이기도 하다.
인제 8경 중 제3경에 해당하는 곳으로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 산 1-67에 있으며 주변의 가리봉, 주걱봉, 삼형제봉의 아름다운 산세가 펼쳐지는 좋은 조망지점이기도 하다. 물기둥이 89m로 한국에서 가장 긴 높이를 자랑하는 대승폭포는 떨어지는 폭포수의 물보라와 이 물보라에 이어지는 무지개가 영롱한 아름다움을 자아내 장관을 연출한다. 신라 경순왕의 피서지로 전해지며 폭포 아래쪽에 또 중간 폭포가 있어 특이한 자연미를 선사하고 있다. 대승폭포가 있는 남설악지역 대부분은 중생대 백악기에 관입한 화강암류가 분포되어 특히 주변에는 인제와 원통, 양양을 잇는 단층선을 따라 발달한 폭포중의 하나로 성인별로는 단층폭포, 유형별로는 수직낙하형 폭포에 속하며, 형성된 급사면과 단애에 크고 작은 폭포가 분포하고 암석들이 풍화작용과 침식작용을 받아 형성되어 수려한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폭포 명칭과 관련된 전설이 남아있다. 옛날 한계리에 대승이라는 총각이 살았다. 부모를 일찍 여읜 총각은 버섯을 따다 파는 것으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폭포 절벽에 밧줄을 매고 버섯을 따던 총각은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절벽 위에서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그 소리에 정신없이 올라가 보니 어머니는 간데없고 커다란 지네가 동아줄을 갉아 먹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어머니의 외침 덕에 총각은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죽어서도 아들의 생명을 구해준 어머니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고 하여 이 폭포를 대승폭포라 불렀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대승폭포에 대한 한시로 이명한의 한계폭포 증옥상인 등 11명의 11수가 전해져 역사경관적 가치를 증명해 주고 있다.
특히 폭포 맞은편 반석 위에 ‘구천은하(九天銀河)’라는 한자가 새겨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명필 양사언의 글씨라고 전해해지는 설과 헌종 3년(1837) 강원감사 홍치규가 썼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최근 최병헌씨의 주장에 의하면 1709년 임적이 쓴 ‘한계폭포기’에 “관폭대에 오르면 구천은하라는 네 개의 큰 글자가 새겨있다”라는 언급이 있는 것을 들어 연대를 추정하고 ‘자운서원묘정비’에서 찾은 ‘구·천·하’ 세 글자와 찾지 못한 ‘은’ 자 한자의 형태를 들어 곡운 김수증이 가까움을 주장하고 있어 이중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자료 제공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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