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유직(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가족이나 친지 중 누군가가 동업으로 사업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아마도 거의 모든 주변 사람들이 말릴 것이다. 사업을 하는 것도 예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동업이란 형식은 더욱 힘든 일이라 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동업이란 구조는 대단히 어렵고 성공하기 힘든 사업 방식으로 여겨진다. 혼자하면 혼자 했지 다른 사람과 함께 영리 활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우리들 인식의 저변에 깔려 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동업을 남들에게 권유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중에 하나가 바로 농촌지역 소득강화 사업이다.

일반적으로 농촌 개발사업은 지역의 필요한 기초적인 생활기반을 확충하는 일, 경관을 보전하거나 개선하는 일, 주민들의 역량을 끌어올리고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일, 그리고 주민들의 공동수익을 창출하는 일로 구성된다. 네 가지 측면이 골고루 진행되고 일정 수준 이상의 효과를 낳을 때 그 마을은 비로소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선순환 구조를 갖춘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다른 부분과 달리 수익이 발생하는 단계는 본격적인 마을발전의 기반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의를 가진다. 그런데 우리가 농촌마을 만들기에 있어서 주민들을 교육하고 이끄는 소득증대 강화사업은 다름 아닌 마을 주민들의 동업형태를 요구하게 된다. 주민들이 공동으로 생산에 참여하여 소득을 올리고 그 수익을 마을의 발전과 참여한 주민들의 이익으로 돌아오게 하는 이 구조는 가까운 사람이 하겠다고 나서면 말리는 동업에 다름 아닌 것이다.

실제로 농촌 마을만들기에 있어서 가장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 바로 소득증대 사업이다. 마을만들기 사업을 통하여 지역의 경제적인 효과까지 도모하는 일은 가장 이상적이지만 이러한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익을 내기 어려운 아이템을 선정하거나 자체적인 기술과 인력이 없는 일을 시작한 경우, 시설의 사유화로 인해 공동의 협업이 불가능 한 경우, 경영 마인드가 부족하여 주먹구구식으로 대응하는 경우 등 이 일이 쉽게 성공할 수 없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반면에 성공한 사례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성공한 사례들을 살펴보면 그 이유가 단순하다. 대부분의 경우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는 개인이 존재한다. 그리고 몇 가지 유사한 과정을 밟았음이 발견된다. 처음에는 마을의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누군가가 나서서 열심히 뛰어다니며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서 조금씩 효과를 내자 그때서야 마을사람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지역을 발전시키는 가장 궁극적인 목표인 소득구조의 확립이 이처럼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다면 이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네 시골이 잘살기 위해서는 이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치부해 버린다면 젊고 재능 있는 사람들의 귀농귀촌은 더욱 힘들게 될 것이다.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역의 경제적 활동은 주민들 사이의 의견을 수렴하는 시작단계에서 주저앉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주민들 사이의 갈등, 사업에 대한 이해 부족, 리더의 부재 혹은 리더십 결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출발도 못해보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시작은 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해 오히려 사업을 하기 전 보다도 훨씬 더 마을 공동체가 무너지는 경우도 많다.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가지게 된 생각은 농촌의 소득증대 사업에 기업적 사고와 공동체적 정신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누군가 지역의 경제를 살려볼 의지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노력에 비례하는 경제적 이익도 담보되어야 할 것이다. 주민들의 소득증대가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소득증대를 이끌어낸 리더에게는 희생의 보답이 따르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다만 이런 노력이 무한정 이익의 추구로만 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하는 사회적 경제의 영역으로 확대되도록 유도함으로써 지역발전의 상승효과를 올리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지역의 흐려진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경제적인 이익과 가치를 실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점이다. 스페인 몬드라곤의 지역 공동체에 기반을 둔 협동조합의 사례는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스크 지방을 중심으로 출범한 이 협동조합 기업은 8만5000명의 조합원이 균등하게 출자한 111개 협동조합으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에는 120개의 자회사와 255개의 사업체가 속해있다. 현재 세계 20개국 79개 공장의 글로벌 기업으로 확대된 이 협동조합 기업은 유럽연합 출범에서 비롯된 시장의 극심한 변동도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 금융위기도 훌륭하게 극복하였으며 현재는 스페인의 10대기업 반열에 속해 있다고 한다.

최근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커뮤니티 비즈니스 등 여러 이름으로 우리들 주변에서 확산되고 있는 이 활동은 농촌지역 마을만들기에 있어서 여러 가능성을 제시한다. 지속가능한 성장은 환경적인 지속가능성과 함께 사회적 지속가능성과 경제적 지속가능성이 담보가 될 때 가능해 진다. 우리는 그동안 개발중심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환경적 지속가능성에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집중해 왔다. 이제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사람들의 삶과 사회적 관계, 건강한 공동체의 구축이 보다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나아가 그런 환경적이고 사회적인 지속가능성의 기반위에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인 지속성을 갖추는 일이 절실해지고 있다.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지역개발 컨설팅 시장이 조경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대두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자본주의 경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른 사회적 경제라는 화두가 자리 잡고 있다.

이유직(객원 논설위원·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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