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상욱 (LH 파주사업본부 건설사업단장)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은 이미 90%를 넘어서서 국민 5천만명의 대부분이 도시지역(시와 읍)에 살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70년대의 서울 강남새도시를 비롯하여 90년대의 성남 분당, 고양 일산 같은 제1기 새도시가 만들어졌고, 2000년대의 화성 동탄, 파주 운정 같은 제2기 새도시들이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새도시가 농지와 산지 같은 곳에 만들어지기 때문에 건설과정에서 기존 산림이나 보호수를 살리려는 지자체와의 갈등이 자주 빚어진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새도시건설사업과정에서 일어난 사례를 들어보자. 지구의 자원조사 과정에서 여러 그루의 보호수가 확인되었고 택지개발사업의 개발계획을 수립하면서 수령 400년, 높이12m 너비24m의 느티나무를 포함해 모든 보호수를 제 자리에 살리기 위해 공원으로 배치시키는 토지이용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런데, 대지조성공사 실시설계과정에서 이 느티나무를 살리기 위해 배치한 약 6000여㎡의 공원용지가 인근 공동주택용지의 조성고보다 16m정도 높게 된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현 토지이용계획으로는 새도시의 주민들이 제대로 이용할 수 있게 공원을 설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조경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보호수와 해당 공원을 인근의 평지로 옮기는 개발계획 변경(안)을 작성하여 지자체와 협의하였으나, 지자체의 보호수 존치 요구에 부딪치면서 갈등을 빚었다. 이 경우 토지이용계획이 변경(공원의 위치 이동)되지 않으면 조경전문가가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 설계해도 수십억원짜리 땅 위의 피라미드꼴에 보호수 한 그루 달랑 서 있는 깍두기 공원에서 크게 벗어날 수가 없다.

시민에게 쾌적한 생활환경을 만들어 주는 공공영역의 공원녹지를 조성하면서, 주택 등 건축물의 사적(私的) 조경공간을 만들면서, 조경가는 도시, 건축, 토목, 전기 등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어느 단계에서 어떻게 협력하고 상생하면서 제 구실을 해야 할까? 어떤 역량을 키워야 할까?
인류가 발명한 최대 인기상품이라는 도시는 엄청난 크기의 면적, 수많은 인구, 대규모 건축물 등이 집적된 인공공간으로 도시, 건축, 조경, 토목, 정보통신, 문화, 사회, 경제,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함께 맞대고 고민하고 계획하며 만들어 가고 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도시기본계획·도시관리계획·지구단위계획을 줄기로 하여 지자체나 사업시행자가 계획을 수립하고 있고, 공원·녹지 등 도시의 공간시설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공원녹지기본계획, 도시공원·녹지 확보, 설치 조항을 기준으로 택지개발 등 각각의 개발사업을 통해 계획되고 조성되고 있다.

실무적으로 조경분야와 도시계획분야 사이의 협력이 가장 필요한 절차가 바로 도시관리계획 단계로서 개발계획과 실시계획 수립과정에서 공원·녹지와 관련된 사항이 물 흐르듯이 연계되어야 한다. 개발계획단계에서 공원녹지계획(공원부지의 위치, 크기)이 제대로 수립되지 못하고, 실시계획단계(공원 유형, 공원의 진출입 위치, 도로, 녹지의 위치)에서도 걸러지지 않은 채 법정 도시계획시설인 공원녹지로 고시되면, 앞서의 깍두기 공원이 생겨 날 수 있는 데 이 참담한 결과는 억울하겠지만 오롯이 조경가의 몫으로 남겨진다. 조경가는 도시전문가가 주도하는 도시관리계획단계의 개발사업 실시계획 수립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공원녹지계획’을 제대로 수립하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도시분야와 상생 협력하여 곧바로 상위의 개발계획을 변경해서라도 실시설계단계에서 조경설계가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는 바탕을 선행 단계에서 미리 확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건축분야와의 관계에서도 상생협력이 필요하다. 조경가는 ‘주택법’의 부대시설(녹지와 조경수 등 조경시설, 안내표지시설 등)·복리시설(어린이놀이터, 주민운동시설, 주민휴게시설 등) 조항과 건축법(조경기준 포함)의 대지조경 조항에 따라 민간영역의 건축물 조경을 계획·설계·시공·관리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단계가 인허가 단계로서 도시개발의 토지이용계획처럼 단지계획(건축물 등의 배치)과정을 통해 건축물과 놀이터·운동장·휴게소 등 옥외공간이 제 자리를 잡고, 도로·보행로 등 단지 안의 동선체계가 결정된다. 다음 단계인 녹지, 놀이터, 운동장, 휴게소, 마당, 보행로 등 옥외공간의 설계는 조경전문가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기에, 조경과 건축 분야는 단지계획(배치)단계에서의 상생과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 이 때에 해당 공간의 조경실시설계를 고려하여 건축물을 통합디자인하고 여러 옥외공간을 제대로 배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나아가 세부적으로는 건축물의 옥상녹화와 벽면녹화, 건축물과 통합한 조경구조물, 건축물 내부 1층의 주민공동시설 배치 등에서 소통하며 함께 융합할 수 있는 파트너쉽을 확보해야 한다.

토목분야와의 관계에서도 상생과 협력이 필요하다. 토목분야의 주 공종인 토공사(土工事)는 조경공사의 선행공종으로 조경식재공과 조경시설물공의 바탕을 이루고 있으며, 토공(조경토공), 포장공(조경포장공), 배수공(빗물침투 및 배수공), 비탈면공, 자연형 하천공 처럼 서로가 중첩되거나 홀로 해결할 수 없는 공종이 많다. 무엇보다도 하나의 지역·단지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대지조성설계의 토공·포장공·빗물침투 및 배수공· 비탈면공·자연형 하천공의 기본설계과정에서 조경가가 참여하여 조경과 토목의 역할을 나누고 연계방안을 협의하는 절차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거꾸로 공원같은 하나의 공간에서는 통합디자인원칙을 세우고 토공· 배수공·비탈면공·건축공 등을 조경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전문역량을 키워가야 한다. 전기분야와의 상생협력 또한 중요하다.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도시의 야경에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공원이나 건축공간에서 조경전문가는 특정 공간의 경관연출계획을 수립하고 경관조명설계의 목적과 기본방향을 설정한 뒤 세부설계과정에서는 전기분야와 역할을 나누어 맡는 등의 협력 설계를 통해 소비자인 시민과 고객이 바라는 쾌적하고 쉬고 싶은 공원이나 옥외공간을 창출해야 한다.

조경전문가는 다양한 개발사업, 건설사업의 추진과정에서 도시,건축,토목,전기 분야 전문가와 협력 상생해야 한다. 대체적으로 조경전문가는 사람의 행태에 관심이 많고, 나무와 땅 등 생명이 살아있는 자연환경에 관한 지식이 깊고, 경관과 디자인에 대한 학습시간도 상대적으로 많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의 계획과 개발, 건축물의 건설 과정에서 조경가는 행태, 생태, 경관 등 스스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각 단계에서 필요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발휘해 주어야 우리의 도시가 보다 건전하게 성숙할 수 있다.

나날이 조경을 둘러싼 주변 분야에서 조경의 몫을 나눠가지러 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거꾸로 조경가들이 도시, 건축, 토목, 전기 분야와 상생의 파트너 쉽을 높이기 위해 해당 전문영역과 소통하고 학습하며 조경가의 역량을 키워가야 한다. 이제 조경인이 정말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노력해야 할 때이다. 먼저, 선행 단계나 선행 공종이 그어 높은 그리고 만들어 놓은 헐벗은 콘크리트나 사막위에서 꽃만 피우러 아옹다옹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조경전문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공원이나 건축물 옥외공간의 조경실시설계단계 보다는 상위, 선행 단계인 개발사업의 개발계획·실시계획 단계, 건축설계의 단지계획·건축배치계획 단계, 토목설계의 대지조성기본설계 단계에 조경가를 투입시켜야 한다. 대학에서는 도시계획, 단지계획, 건축계획, 조명계획, 토양학과 수리학 등을 가르쳐 주어야 하며, 조경사회나 학회에서도 인접 분야와의 융합에 필요한 실무아카데미 같은 학습 강좌를 끊임없이 열어주어야 한다.

아무리 떠들어도 나를 위해 들어주지 않는 세상을 탓하지 말자.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인다면 이제 주변을 탓하는 힘으로 스스로를 키워나가자! 그리고 조경가들은 반드시 나아갈 것이라 믿는다.

안상욱(객원 논설위원·LH 파주사업본부 건설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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