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병(아썸 대표, 생태학박사)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의 단식이 40일을 넘기면서 단식이 갖는 정치적 사회적 파장이 대단함을 깨닫게 된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원만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한 인간의 죽음을 담보로 한 단식투쟁은 그와 뜻을 함께하는 동조단식이 전국적으로 2만5000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단식(斷食, fasting)은 특정 목적으로 일정기간 동안 음식과 음료의 섭취를 자발적으로 끊는 행위를 말한다.(위키백과) 인간은 살아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반드시 호흡과 섭식과 대사를 해야지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호흡을 하지 못하면 5분 이내에 사망하게 되고, 물을 포함한 일체의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면 3일을 버티지 못한다. 단식을 하되 물만 먹을 경우 4주 정도를 버틸 수 있지만 역사적 기록을 보건대 최장 66일까지 버틴 사례도 있다.
1981년 IRA(아일랜드독립운동단체)의 대원이었던 Boby Sands(당시 27살)는 아일랜드인에 대한 영국의 인권유린에 항의하여 메이즈교도소에서 동료 9명과 함께 무기한 단식에 들어가 66일 만에 장렬한 죽음에 이른다. 당시의 영국 수상은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마가릿 대처로서 끝까지 불관용 정책을 고수하면서 Boby Sands는 물론 그와 함께 했던 동료 9명 모두 차례차례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인체에 음식물 섭취가 중지되면 몸은 비상사태에 돌입하게 된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대사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대부분 외부로 부터의 음식물 섭취에 의존하게 된다. 따라서 어떤 이유에서건 섭식이 중단되면 인체는 체내에 축적된 지방이나 단백질 조직에서 포도당을 꺼내 사용하게 된다. 당연히 체내에 저장된 지방과 단백질을 모두 분해하여 사용하고 나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오랜 기간 수렵생활을 해온 인류는 굶주림과 혹독한 추위와 늘 싸워야 했다. 대형 동물의 사냥으로 주식을 해결했던 인간은 한 마리의 들소나 사슴을 잡기까지 1주일에서 열흘정도 들판을 헤메야 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래서 인간의 몸은 굶는데 잘 길들여져 있고, 일단 사냥을 하면 충분한 영양분을 비축하기위한 시스템도 잘 발달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가 과식을 하는 습성과 이로 인한 비만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이유도 인류 진화과정의 산물인 셈이다.

약 600만 년의 인류 진화사의 99%이상을 차지하는 수렵시대 생존을 위한 인체시스템이 우리의 DNA에 고스란히 기억되어 매일 세끼 식사를 찾아 먹는 현재에도 늘 작동되기 때문이다. 사냥 후에 섭취하는 식사 때마다 다음 번 식사를 언제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본능적으로 최대한의 영양섭취를 해두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식탐의 본능은 아주 뿌리 깊은 인간의 생존욕구인 것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지방층이 더 두텁게 진화한 이유도, 사냥에서 돌아오는 남자들에 의존해야했기 때문에 굶는 기간이 더 길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더구나 딸린 아이에게 수유까지 해야 하는 불리함 때문에 그만큼 지방의 비축량을 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식탐과 비만의 문제에 여자들이 더 민감해 졌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원시인류시대의 인간에게 섭식중단은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피치 못할 절대상황이었다. 때때로 음식물을 구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질 때, 아사하지 않고 생존한 굶주림에 강한 DNA가 우리 몸속에 남아있다는 게 정설이다. 필자는 25년 전에 우연히 다카하시 단식법을 경험한 적이 있다. 맹물만 먹고 전혀 소금이나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고 하는 단식법이었는데, 4주 동안 그런대로 버틸 수 있었다. 1주일의 감식기와 본단식 2주 그리고 1주일의 복식을 하였으니 실제 단식은 2주였던 셈이다. 어쨌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면서 할 수 있었고, 체중이 약 14키로 빠지고 건강은 그 전보다 나아졌던 걸 경험하였다. 특히 술과 담배를 즐겼던 필자는 단식 후에 몸속의 독소가 빠져 컨디션이 좋아졌고, 특히 장이 매우 좋아졌던 기억이 있다.

후에 다카하시 단식법을 누구에게도 권하지 않았던 것은 저자 일본인 다카하시의 이력 때문이었다. 그는 2차 대전 중 일본군 군의관으로써 전쟁 말기에 홋카이도의 어느 군사시설 건설부대에 소속되었다고 한다. 당시 그가 소속된 부대에는 수천 명의 한국인 징용자들이 밤낮없이 강제노동에 혹사당하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공급되는 식사는 하루 한 끼의 주먹밥과 일본된장이 전부였다. 그리고 하루에 14시간 이상 돌과 흙을 나르는 중노동을 시켰다고 한다.
의사인 그는 하루 800칼로리 정도의 영양분을 공급하고 3000칼로리 이상의 노동을 하게 되면 생물학적 원리에 따라 성인 남자라 해도 3개월 이내에 체내의 모든 지방과 단백질이 소진되어 사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조선인 징용자들은 그 참혹한 조건에서도 70%정도가 1년 이상 생존하여 일본의 패전을 맞이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오히려 어느 정도 충분한 영양이 공급된 일본군들이 설사병이나 전염병으로 다수가 숨질 때도 극도로 비위생적인 생활조건에 있었던 굶주린 징용자들은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 불가사의한 현상을 관찰한 그는 전쟁이 끝난 다음 단식의 특별한 치유능력을 확신하여 “다카하시 단식법‘이란 책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즉 인체에는 극단적인 장기 굶주림이 올 때 특수한 효소가 분비되어 섭취 칼로리의 몇 배에 해당하는 열량을 내며, 외부 병원균을 물리치는 백혈구의 양도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던 것이다.

인류역사에서 단식은 대개 종교적이거나 정치적 단식이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된다. 단식행위는 행위자의 확실한 자기의지에서 비롯되며, 자신의 죽음을 건 고행 또는 저항의 표시다. 건강회복을 위한 일시적 단식은 사회적 의미를 부여할 수 없으므로 개인적 치유행위로 보면 될 것이다.
종교적 의미를 갖는 단식의 대표적인 예는 예수의 광야에서 40일 단식과 구약 예언자들의 단식, 이슬람의 라마단 단식, 불교에서 붓다의 6년간에 걸친 득도수행을 본받은 스님들의 단식이 있고, 천주교의 사순절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 단식 등이 있다.
정치적 단식은 하도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렵지만, 앞에 언급한 Boby Sands의 66일간 단식, 간디의 145일간의 옥중 단식, 지율스님의 5차례에 걸친 200일 단식, 5공화국시절 신군부의 정치활동 금지에 맞선 YS의 23일간의 단식, 1990년 DJ의 13일간의 단식이 있다. 최근의 예는 2007년 FTA 체결에 반대하여 열린우리당 천정배의원이 25일, 민노당 문성현 대표가 26일을 단식하여 YS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현재 정치인 최장기록은 2007년 제주해군기지건설에 반대해 27일간 단식한 민노당 현애자 의원이 갖고 있다.

정치적 사회적 단식의 공통점은 힘없는 약자가 자기주장을 관철시킬 수단이 모두 막혔을 때, 그 내용이 사회적 요구와 합치될 때 의미를 갖는다. 인간의 생명은 고귀한 것이고 한 인간의 죽음은 본인에게 있어서 세계를 잃는 것과 맞먹는 보편적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커다란 사회적 파장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역사를 길게 볼 때 죽음에 이른 단식을 기억하는 이는 많아도, 끝까지 그의 주장을 무시한 이를 기억하는 사례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생태학에서 오랜 단세포생물 시절에 갑작스런 열악한 환경이 주어져 모두가 죽을 위험에 처했을 때 혼자만 살아남으려 고집을 부렸던 집단은 모두 사멸하여 도태되었으나 스스로 자신의 몸을 이웃에 내어주어 전략적 M&A를 감행한 생물의 후손이 바로 오늘날 살아있는 생명체들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어 2개의 생명체가 하나로 합체함으로서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하였고, 이 비밀이 바로 진화의 역사인 것이다. 즉 우리 몸은 자기희생적 M&A를 감행하여 살아남은 동료의 몸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존속시킨 수백조 개의 위대한 세포의 유기적 결합이기 때문이다.

권오병 집필위원(아썸 대표·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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