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애란(청주대 교수·조경기술사)

여행과 휴가의 계절 ‘여름’ 그리고 ‘8월’이다. 여행과 정원이라는 다소 대조적인 성향의 장소성과 시간성이 요사이는 부쩍 가까운 관계로 다가온다. 이 두 단어를 생각하다보면 우선 설렘과 동시에 하나는 머나먼 동적인 즐거움 또 하나는 가까운 정적 행복을 갖게 해 준다. 우리나라도 선진국 반열에 이르면서 과거에는 유적지나 유명한 건축물을 보기위한 일명 패키지 관광버스 여행을 떠났다면 이제는 숨과 쉼이 있는 정원여행 또는 진정한 휴식과 정신적 회복의 느린 여행을 선택하곤 한다.

그리고 8월 중순 ‘교황 프란치스코 방한’이다. 진정한 ‘힘’이란 가장 낮은 모습의 ‘봉사와 사랑’이라 말씀하시는 분. 눈 앞의 것을 바라보지 말고 더 멀리 바라보라고 하시며, 물질을 좇지 말며 마음의 나눔을 이어감으로서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나눔의 실천’을 강조하신다. 육신과 정신이 가난한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아시아의 우리나라에 오셨다. 그리고 ‘아시아청년대회’에 참가하신다. 교황님의 쓰신 글 ‘가슴 속에서 우러나온 말들’ 중에서

젊은이들이여!
시류에 거슬러 가시오!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시류에 거슬러 가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최근에 이해인 수녀님의 ‘여행길에서 On A Journey'라는 2003년에 출간된 한영시집을 손에 들게 되었다. 이 중 ’나를 위로하는 날 The days I comfort myself‘ 이라는 시가 있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하면 되쟎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 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나를 소중히 여기고 나를 먼저 위로할 때 진정으로 주변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 다른 이에게도 가슴으로 포용하고 소통하며 서로에게 감사의 말을 나누게 되지 않을까. 이해인 수녀는 1970년대를 시작으로 ‘민들레영토’,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등의 시집과 산문집 ‘두레박’ 마더 테라사의 ‘따뜻한 손길과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를 번역하기도 하였다. 지금 40~50대는 이 분의 책 한 권 소장하거나 읽어보지 않은 이가 있을 까 싶다. 그들이 청년인 시절에 수녀님의 책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고, 주변의 작고 소소한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감사를 남게 해 주셨다.

굉장한 부자집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이 어찌 살아가는 지를 보여주려고 시골로 갔다. 둘이서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의 농장에서 2~3일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다. “어때 재미있었니?” “예, 아주 좋았어요” “그래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았어?” “예, 아빠” “그래, 무엇을 배웠느냐?” 아들이 대답하기를 “우린 개 한 마리뿐인데 그 사람들은 네 마리더라구요. 우린 수영장이 마당에 있는데 그 사람들은 끝없는 개울이 쫙 놓여 있더라구요. 우리 정원에는 전등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밤에 별이 총총히 빛을 내더라구요. 우리 파티오는 앞마당에만 있는데 그 사람들은 지평선처럼 끝이 없더라구요. 우리는 작은 정원에서 사는데 그 사람들은 넓은 들과 함께하고 있더라고요. 우린 하인이 우리를 도와주는데 그 사람들은 남들을 도와주더라구요. 우린 음식을 사서 먹는데 그 사람들은 직접 길러 먹더라구요. 우리 집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사람들은 친구들에게 쌓여 있더라구요” 아버지는 망연자실 할 수밖에…. 그런데 아들이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아빠, 고마워요.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가를 알게 해주어서…”
동일한 현실에 대한 다른 생각들.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하면 항상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갖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또한 아직 갖지 못한 것 그리고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교황님의 말씀처럼 이루기 위해 ‘용기’가 필요합니다.

여행에서 돌아왔거나 돌아오는 중이라면 여행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겨봅시다. 몸의 여행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여행 또한 소중합니다. 꼭 국외로 떠나지 않더라도 잠시 자신을 위해 소중한 나를 위로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그것이 여행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다’ 중에서 일부를 되새겨봅니다.

‘매일 세수하고 목욕하고 멋을 내어보고 이 몸을 나라고 착각하며 살아갈 뿐이다. 우리는 이 육신을 위해 돈과 시간, 열정을 쏟는다. 하지만 이 몸은 내 의지와 간절한 바람과 전혀 다르게 살찌고 야위고 병들고 노쇠화하며 기억도 상실한다. 언젠가는 주게 마련이다. 모든 것은 인연으로 만나고 흩어지고 구름과 같다. 미워도 내 인연 고와도 내 인연. 피할 수 없으면 껴안아서 내 체온으로 다 녹이자. 스스로 나서서 기쁘게 일하자. 언제 해도 할 일이라면 미적거리지 말고 지금 당장 하자. - 이 세상은 풀려가는 순서가 있고 순리가 있습니다. 내가 조금 양보하고 배려하며 낮춤으로서 이런 여유와 촉촉한 인심이 나보다 더 불우한 이웃은 물론 다른 생명체들의 희망공간이 됩니다. 나와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들이 정말 눈물겹도록 고맙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세상은 정말 감사의 연속입니다.’

이애란(객원 논설위원·청주대 교수·조경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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