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승] 한국명승의 현주소와 전통명승

본지에서는 다음호(312호, 2014년 8월 14일자)부터 매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을 소개하고자 한다. 명승의 가치와 의미는 물론이고, 명승에 얽힌 이야기를 중심으로 재미있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전국 107개 명승을 지역별로 소개할 예정이며, 첫 번째는 명승 1호가 있는 강릉에서 시작할 예정이다. 자료는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에서 제공할 예정이다. 명승 소개에 앞서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전반적인 내용을 먼저 싣는다. <편집자 주>

2000년 초에 각 지자체에서 ‘신팔경(新八景)’을 지정하기 위해 분주하던 때가 있었다. 지자체들은 앞 다투어 관광수익으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유명한 장소를 연계하여 지정한 것인데 일부 지역은 지역거점의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대상의 선정에 머물러 성공하지 못한 사업으로 남게 되었다. 과연 우리 산하에 과거부터 명소가 될 만한 곳이 없었던가? 결코 그것은 아니다.
우리 국토경관은 예부터 금수강산으로 알려져 왔다. 바로 우리 선조들이 애호하던 명승에 대한 역사적 관심이 제대로 계승되지 못한 탓이 크다 하겠다. 고문헌을 살펴보면 경승지, 즉 명승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들이 많이 언급되는 것에 놀라게 되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명승지들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문헌류들은 명승지 기행에 대한 내용 이외에도 옛 선조들의 깊은 사색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과거 명승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팔경(八景)으로 표현되었는데 팔경시의 연원으로 중국의 ‘소상팔경시’와 그 원조로 ‘소상팔경도’가 주로 거론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에 걸쳐 ‘송도팔경’과 ‘신도팔경’이 형성되면서 승경(勝景)을 팔경화하는 우리나라 고유 팔경의 전통이 확립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 명승개념 도입의 시작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김홍도가 그린 기로세련계도를 보면 조선시대 터만 남은 개성의 만월대를 배경으로 노인들이 계회를 하는 모습에서 과거 명승지 향유에 대한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명승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임원경제지’, ‘지봉유설’, ‘신증동국여지승람’, 각종 산수유기 등에 잘 나타나고 있다. 이중 ‘임원경제지’ 이운지편에는 재미있는 기록이 있어 당시 명승에 관한 선조들의 유행풍조를 읽을 수 있다. 임원경제지 이운지 명승유연조에는 우리 조상들의 명승여행법과 놀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나타나고 있다. 명승지를 여행할 때 갖추어야 할 행장과 이들을 소개할 때 재료·모양·용도·제조법·예술적 가치·사용법·효과 등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명승(名勝)의 최초 지정시기는 1970년으로 중국, 일본 등 인접국가에 비하면 늦은 편이다. 1922년에 11건의 명승을 처음 지정했던 일본은 1933년에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회를 설치하였고 당시 강점하에 있던 우리산하의 명승은 한 건도 지정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가 명승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해방 바로 전의 일이다. 1960년 문교부 지정문화재목록에 보면 명승은 단일문화재가 아닌 고적, 천연기념물과 중복된 개념으로 ‘고적 및 명승’은 남한이 3건, 북한이 1건, ‘명승 및 천연기념물’은 북한이 1건으로 집계되어 있다. 이는 현재의 ‘명승’개념 위주보다는 천연기념물과 고적에서 ‘주변지역’을 포함한 개념으로 명승의 경관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분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명승 지정추이를 보면 1970년에서 2000년 사이에는 지정 건수가 총 7건에 지나지 않았다. 1980년~1996년까지는 한 건도 지정되지 않았으나 2003년부터 년 3~4개소로 시작하여 2006년 명승정책 활성화 사업에 힘입어 2007년에 11건, 2008년 21건, 2009년 16건이 각각 지정되어 2014년 7월 현재, 총 107건에 달하고 있다. 이는 2003년부터 현재까지의 급격한 지정 증가 추이로 볼 수 있다.
문화재보호법의 명승지정 기준별로 보면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은 25개소, 동·식물의 서식지로서 경관이 뛰어난 곳 3개소, 저명한 경관의 전망지점 10개소, 역사·문화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곳 44개소, 저명한 건물 또는 정원 및 중요한 전설지 등 경승지 25개소가 지정되어 있다.
지역별 지정현황으로는 강원이 25개소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전남 17개소, 경북 15개소, 경남 12개소, 충북과 제주 각 9개소, 전북 6개소, 서울 4개소, 경기와 충남 각 3개소, 부산 2개소, 인천과 광주 각 1개소 등이다. 그러나 이에 비해 명승에 대한 국민의 인지도는 아직도 낮은 상황이다.

문화재청에서는 2006년부터 명승 지정 보호 활성화 방안 계획을 수립하여 역사․문화 경관지의 보존 활성화와 인문적 역사․문화경관개념의 도입을 통한 명승 개념의 확장, 관광자원 활용 등을 목적으로 명승지정기준을 정비하고 지정 대상을 확대하는 등의 정책을 추진하여 왔다. 이는 명승분야에서 불과 10여년 남짓한 기간에 이루어낸 급속한 성장세로 평가되고 있으나 문제점과 과제 또한 만만치 않다. 문화와 관련된 정책은 지속성이 그 원동력이 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큰 그림이 요구된다. 단시간의 사업성과보다는 국민들의 정서에 각인될 수 있는 전통명승의 모습을 찾아 이를 체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명승은 우리 선조들이 살아 숨 쉬고 활동한 삶의 결과로 박물관의 박제역할에서 벗어나 과거와 현재의 사람들이 숨 쉬고 교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원호(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이원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