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를 깍지 않으면 풀밭이 되고, 잔디를 깍아 주면 잔디밭이 되죠”
‘잔디는 깍는 것만으로도 80%의 관리가 끝난다’며 잔디 깍기 전도사로 나선 (주)엘그린 이성호 대표를 만났다.

한국 잔디문화 선진화로 가자!
엘그린 이성호 대표에게 새삼 ‘잔디 깍기 전도사로 변신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 한국 잔디문화의 현주소를 짚어 보자며 말문을 열었다.
한국인들은 넓게 펼쳐진 잔디밭을 보며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저 “좋다”고 말할 뿐 생활 주변에 잔디를 확대하려는 노력은 개인이든 관공서든 부족하다. 하지만 생활 속 잔디문화가 깊게 스며든 선진국들을 보면 잔디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인 인식 저변이 좋고, 정책적인 지원이 존재한다는 것.

잔디가 생활권 주변에 잘 조성된 나라를 보면, 도시에 나대지를 그냥 놔두는 경우가 없다. 나대지는 토사유출의 위험이 있어서 잔디라도 심어놓아야 한다는 게 그들의 법이다. 이는 개인 정원도 마찬가지여서 만약 나대지를 포장 없이 방치하는 경우에는 벌금을 물게 된다. 개인들이 잔디를 조성하고 깍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만나게 되는 이유다.
또한 생활권 주변에는 키 큰 풀들을 심지 않는다. 풀숲이나 나무숲은 병균을 옮기는 쥐나 뱀의 서식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대신 키 낮은 잔디밭을 조성해 시민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이렇게 개인은 개인대로 공공은 공공대로의 노력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생활 속 잔디문화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온 여러 국가들을 보면 과연 ‘잔디는 선진문화’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도 이제는 국내 잔디문화의 정착을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해야하는지 근본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으며, “이제 잔디가 좋다고 말만 하지 말고 잔디 문화의 정착을 위해 조금씩 노력하자”는 것이 이성호 대표의 제안이다.

잔디, 일 년에 서른 번은 깍아야 된다
잔디를 깍는 이유는 간단하다. 잔디는 키가 크지 않고, 풀은 키가 크게 자란다. 잔디밭을 깍지 않는다면 잔디는 키 큰 풀들 아래서 햇볕을 받지 못해 모두 죽고 금새 풀밭으로 변할 것이다. 하지만 잔디를 짧게 깍아주면 풀도 길게 자라지 못하므로 종자를 맺지 못해 자연스럽게 1년생 잡초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잔디는 깍아 주는 것만으로도 80%의 관리가 된다니, 알고 보면 잔디 관리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잔디에 대한 우리의 처참한 인식 수준은 오히려 관리 부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성호 대표는 국내에서 잔디 관리가 잘되고 있는 곳은 골프장과 공설운동장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잔디는 관리 필요도 순으로 고관리, 중관리, 저관리로 나눠볼 수 있는데, 국내의 경우에는 관리가 많이 필요한 축구장이나 야구장 등 고관리용 잔디만 관리가 잘 되고 있을 뿐 나머지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잔디광장과 같이 사람들의 이용이 빈번한 중관리용 잔디는 저관리용 잔디에 비해 ‘깍기’ 횟수도 더 필요하고 ‘비료 주기’ 등 관리 매뉴얼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인식 미비 및 제도 미비로 인해 현재 관리 상태가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관상용 조경공간으로 사람의 이용이 거의 없는 저관리용 잔디는 그냥 깍아주는 것만으로도 관리가 충분하지만 대부분은 이마저도 이뤄지지 않아 관리 상태가 엉망이다. 이는 단순히 예산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잔디에 대한 우리들의 전반적인 인식이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또한 이것이 잔디문화가 생활 속으로 스미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며 결과이기도 하다.
실제 외국의 경우 관리 지침상 이뤄지는 잔디 깍기가 일 년에 30회 정도라면 우리나라는 일 년에 1~3회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니, 앞으로 ‘잔디 깍기’만도 30배 정도는 더 많이 해야 하는 셈이다.

 

 

 

▲ 해양경찰청광장(밀록)

세녹과 밀녹, 수요자 중심 시장 개척

 

세녹과 밀녹, 수요자 중심 시장 개척

 

 

 

세녹과 밀녹, 수요자 중심 시장 개척

 

 

국민적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역시 ‘생산․공급자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는 빼놓을 수는 없는 문제이다.
엘그린 이성호 대표는 8년 전 토종 한국 잔디를 개량한 ‘세녹’과 ‘밀녹’을 시장에 내놓았다.
우리나라는 여름철 고온다습하고 겨울철 한랭건조한 기후로 잔디가 생육하기 어려운 조건을 가졌다. 기존 한국잔디는 한국 기후에는 잘 견디지만, 거칠고 밀도가 떨어져 예쁘지 않았는데, 이런 단점을 개선한 것이 세녹과 밀녹이다.
세녹은 이름대로 잎이 매우 가늘고 짙은 녹색을 띠고, 키도 낮아 관상적으로 매우 뛰어나며, 밀녹은 이름대로 낮게 깍아도 밀도가 높아 스포츠용으로 매우 적합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세녹과 밀녹은 현재 8년간의 증식을 통해 공급량을 어느 정도 확보하는 데 성공했으며, 앞으로 비교적 충분한 양을 시장에 공급을 할 수 있을 전망이다. 
 

▲ 경주CC Tee(세녹)

그런데 세녹과 밀녹의 가치는 더욱 넓게 볼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 잔디 시장은 저품질 제품을 저가에 팔아 빠른 회전을 도모하는 시장이다. 수요자들은 당연히 좋은 품질에 싼 제품을 사길 원하지만, 품질 좋은 제품을 내놓아봐야 제값을 받을 수 없는 구조에서 품질은 배제돼 왔다. 저품질 잔디만 공급하는 생산자 중심의 질서가 오랜 동안 이어져오면서, 이를 수요자 중심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세녹과 밀녹은 “고품질 제품도 시장에서 통한다”는 좋은 사례가 돼 줄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무엇을 할 것인가
실제 잔디 시장의 저가 경쟁 문제는 고질적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공적인 기관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한국잔디협회에서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를 두고 고민을 거듭해 왔다. 이를 위해 잔디뗏장품질인증제도가 오래 전부터 실행되고 있다. 수요처에서 인증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어서 실제 인증받은 제품도 꽤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최근에는 이 제도의 강제성․실효성 있는 추진을 위해 더욱 노력하기로 했다.
그리고 ‘권장가격제도’를 실행할 계획이다. 대략적인 권장가격을 공개해 저가 경쟁을 막는 한편 지나친 고가도 지양하기 위해서다.
또한 관공서가 안정적인 수요처가 돼 줄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잔디는 재고가 힘든 제품이라 수요가 조금만 줄어도 가격이 출렁이는데, 이 진폭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관공서에서 가격 변동에 따른 구매가 아닌 미리 선정된 가격으로 구매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잔디’를 ‘문화’로 보고, 국민들도, 생산자도, 그리고 협회도 국가기관도 그저 바라지만 말고 조금씩만 노력하자는 뜻, 바로 이성호 대표가 “잔디를 깍자”는 구호를 외치는 이유다.

 

 

인터뷰

▲ (주)엘그린 이성호 대표

 

‘잔디 깍기’ 전도사로 변신한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잔디밭에 대한 동경을 한다. 하지만 잔디밭을 좋게 만들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잘 만드는 과정과 노력을 경시하는 것이 현재의 문제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잔디가 저절로 잘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인식을 시킬 필요가 있다. 그 다음은 누가 어떤 노력을 얼만큼 해야 하는지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크게 개인과 관공서로 보면, 개인은 잔디의 장점을 알고 꼭 잔디를 만들어야 겠다는 인식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이를 관리하는 기초적인 지식도 알아야 하고 관리장비 사용법도 알아야 한다. 관공서는 잔디 조성과 관리에 대한 예산 배정을 해야 하고,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상의 노력이 있어야 좋은 잔디가 만들어진다. 또한 좋은 잔디가 만들어져야 저변도 넓어지는 것이다.
‘잔디 깍기’는 좋은 잔디를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 변화의 첫걸음이다.

일반 잔디와 비교해 세녹과 밀녹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현재 전체 수요의 90%를 일반 잔디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품질 가격 유통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큰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품질을 배제하고 무조건 저품질 저가 경쟁에 매몰되지 말고, 생산자가 신품종 개발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수요처에서도 품질을 요구해야 한다.
세녹과 밀녹은 품종의 우수성을 통해 고품질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다른 생산자들도 품질을 높이면 가격을 좀 더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한다. 이는 고품질 상품도 잔디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든다는 점에서 가치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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