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상욱 (LH 파주사업본부 건설사업단장)

최근 산림청이 정원을 정책 대상으로 제도화 하려고 추진하면서 조경계는 반발하는 모양새가 이어지고 있다. 숲, 텃밭, 가로수 같은 용어도 마찬가지인데 조경계의 반응은 “아니 정원, 숲, 텃밭, 가로수를 조경계가 여태까지 설계·시공·관리해왔는데 무슨 소리냐? 떼를 써도 정도가 있지” 이런 수준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지난 5월 6일치 조경시대에서 ‘조경정책이란 조경분야 관련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청이 행정에 관한 의사를 결정하여 표시하는 행위’라고 말씀드린 것처럼 조경계의 역할이 정책의 틀에 어떻게 녹아 있는가를 곱씹어야 할 때다. 학술용어 보다는 정책용어, 특히 법제용어가 범위는 좁고 구속력과 권위는 크다. ‘정원’ 정책화를 보는 조경계의 인식은 학술용어 수준인데 반해 산림청의 접근 인식은 정책용어 수준이니 조경계가 한발 뒤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원녹지율 30%를 웃도는 운정신도시의 숙소를 나와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에서 나는 자연의 섭리와 늘 마주한다. LH가 신도시를 계획할 때부터 공원녹지체계와 보행체계를 연계시켰기에 주택단지를 벗어나면 가람공원이 나를 맞이하고, 길을 건너면 라온공원이, 그리고 보행육교를 건너면 운정호수공원이 잇닿아 있다. 공원 속으로는 보행로가 끊이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데 공원의 온갖 조경수가 철따라 낯빛을 바꾸며 나를 반긴다. 봄날에는 지루하지 않게 공원을 화사하게 꾸며주던 벚나무, 이팝나무 꽃은 이제 지고 없으나 대신에 푸른 열매가 날로 커가며, 보리수나무에는 빠알간 열매가 익고 있다.

공원(公園, Park)은 정책적으로 ‘도시공원’(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과 ‘자연공원’(자연공원법)으로 나뉘며, 법적 제도로 규정된 정책용어(도시공원, 자연공원)는 공중의 보건·휴양·놀이 따위를 위하여 마련한 정원, 유원지, 동산 등의 사회 시설이라는 학술용어보다 뜻이 좁고 엄격하다. 조경계는 1967년 제정된 공원법과 1991년 개정된 건축법의 틀 안에서 안주했기에 사회의 흐름을 깜빡 잊었겠지만 공원의 원래 모습인 정원이 정책과 제도의 틀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일부의 인식을 덮어버릴 수 있는 역량과 노력을 보여주지 못하였기에 이런 상황이 생겼다고 본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바빌론의 공중정원, 중국의 원유(苑囿)·원림(園林), 고대 한국의 궁월정원에서 보듯 정원의 역사는 인류 역사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나라와 민족과 시대에 따라 모습은 다르지만 별장, 서원, 관청, 궁궐 등 건축물 외부의 뜰을 각종 시설물과 나무·풀로 아름답게 만들려 한 삶의 공간은 그대로다. 학술용어로 정원(庭園, Garden)이란 집(건축물)의 외부공간에 꾸민 뜰이라 정의할 수 있는데, 19세기 후반 근대도시가 발달하면서 왕정은 왕의 전유물이었던 궁원 등을 시민이 함께 쉬고 즐길 수 있는 공원으로 바꾸기 시작하였고, 20세기 들어 정부와 지자체는 시민을 위한 공원을 도시계획의 틀 속에서 계획적으로 만들고 가꾸고 있다.
그런데 1967년 공원법을 만들 때에 ‘공원’을 국·도립공원과 도시공원으로 한정하면서, 현실속의 정원과는 제도적으로 깔끔하게 헤어졌고, 기존의 별장, 학교, 관공서 정원은 1991년 건축법 개정시 신설된 ‘대지의 조경’(현재 제42조)에 따른 ‘조경기준’(2000년 제정)으로 제도화되었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공간·경관으로서의 ‘정원’이, 건축물·구조물·식생이 어우러진 ‘정원’이 정책적으로 제도화되지 않았다는 산림청 의 인식이 아쉽지만, 조경계는 건축법에 이미 제도화되어 있음을 자각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원’을 공적 영역인 도시계획시설로 무리하게 규정하려 한다면 정원을 설계, 시공, 관리하고 있는 전문분야는 당연 조경계(일본은 조경을 조원(造園)이라 부른다)이니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면 될 것이고, 사적 영역으로 규정해도 건축법·주택법의 틀에서 근대이전의 정원(숲, 텃밭 등)을 제대로 맡을 수 있기에 지금 조경계가 제 구실을 해야 할 부분은 공원과 정원의 유지관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덧 여름의 길목으로 들어선 6월의 공원에는 단풍나무, 자작나무, 느티나무 잎이 날로 푸르러지고 있지만, 올 봄의 긴 가뭄으로 농민의 마음처럼 공원의 나무와 풀도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다. 3, 4월에는 푸른 잎을 틔우고 제대로 커가던 나무들이 봄 가뭄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 둘씩 힘을 잃고 잎은 누렇게 곯아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잎이 마르고 결국 곁가지가 많이 돋은 벚나무나 자작나무들은 나무줄기 위쪽의 가지부터 서서히 말라 비틀어져 죽어가고 있다. 출근길을 오가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줄기 아래에 덧가지가 많이 난 나무가 가뭄피해를 더 많이 받고 있으며, 특히 올 봄에 다시 심은 나무(하자보수)들이 봄 가뭄의 피해를 많이 받고 있어서 더욱 아쉽다.

LH 같은 비행정청이 공원을 조성한 뒤 소유권은 관리청으로 넘겼으나 조경식재공사 하자보수보증기간과 식생유지관리공사 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경우에 공원소유자인 관리청과 하자보수 주체인 시공회사 사이에서 조경수목의 관리책임을 두고 다툼이 일어나기 쉽다. 운정신도시의 이 공원도 관리청인 지자체에서 관리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이번 가뭄으로 조경수 고사가 많이 생길 수 있는 바탕에는 시공회사와 지자체가 조경수 관리의 몫을 서로 내 몫이라고 여기지 아니 하는 것도 원인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LH에서는 조경설계과정에서 전정·병충해 방제·관수·제초·잔디깍기 등의 식생유지관리공사(준공 뒤 2년동안)를 함께 발주하고 있으며, 전정은 수목의 활착과 녹화량의 증가를 목적으로 수목의 미관·수목생리·생육 등을 고려하면서 가지치기와 수형을 정리하는 작업(LH 전문시방서)으로 정의하듯 생명을 가진 조경수가 제대로 활착하여 식생을 심는 목적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도록 유도하여 하자를 줄이고 있다.

앞으로 정부·지자체 나아가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조경공사만이라도 발주청에서 식생유지관리공사를 포함시켜 발주하도록 조경관련 학계·협회·전문가·언론계가 줄기차게 노력해야 한다. 다음에는 공원 관리청과 식생유지관리공사 주체 사이의 관리범위에 대한 역할도 분담해야 한다. 나아가 조경식재공사업(건설산업기본법)에서 유지관리부분을 독립시켜 식생유지관리공사업(건설산업기본법)을 신설하고, 시설물유지관리업(시설물의안전관리에관한특별법)처럼 식생의 유지관리를 전문공사업으로 독립시켜야 한다.

관리청인 지자체의 조경관련 조례·조례시행규칙 운영실태를 보면 도시공원녹지(32개), 가로수조성관리(157개), 조경시설관리(32개), 조경관리(4개)로 조경시설관리조례를 폐지하고 가로수(조성)관리조례를 제정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 관리청이 조례에서 가로수 전정에 대한 업역을 조경면허에서 산림조합 심지어 중앙회와 산림기술자(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게 까지 개방시키고 있는 것은 매우 심각하다.

지방자치 20년 7월 1일부터 민선 6기가 시작된다. 도시공원조례는 별개로 하더라도 가로수조성관리조례를 조경관리조례로 일원화시켜야 한다. 범조경계가 힘을 모아 민선 6기 동안 조경조례 운영지원운동을 통해 지자체 조경기본조례(녹지+가로수+조경시설+공동주택+건축물)를 정상화시키자. 나아가 조경계 스스로 공원과 정원의 유지관리 활성화를 위해 구성원 모두가 마음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

안상욱(객원 논설위원·LH 파주사업본부 건설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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