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승범(이우환경디자인(주) 대표·(사)한국조경사회 부회장)

지난 5월 28일 우리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두 번째로 ‘국무총리 지명자 중도사퇴’라는 뉴스 속보를 접했다. 온 국민을 충격과 슬픔을 넘어 분노케 만든 세월호 침몰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정홍원 국무총리의 후임으로 청와대가 야심차게 내세운 인물이 인준을 위한 청문회장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채 후보지명 6일 만에 스스로 자리를 내려놓는 또 다른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아마도 독자들께서 이 글을 읽으실 때쯤엔 그 후속 총리후보가 발표되었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잘 아는 바와 같이 그의 중도사퇴는 국민정서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나 먼 ‘전관예우’라는 한국사회 고위층의 고질적인 악습을 무시한 인사검증에 기인한다. 평생을 법조인으로 지내다 공직의 마무리를 대법관으로 화려하게 마치고 변호사로 개업한 총리 후보의 수임료가 10개월간 27억 원(일부 언론에선 5개월에 16억원으로 보도되기도 하는데 어쨌든 ‘억~!’소리 나는 건 매한가지다)에 달한다는 사실은 국민들의 상처 받은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해주기 보단 오히려 아픈 상처를 헤집고 소금을 뿌리는 일이라는 것을 진정 몰랐을까? 그의 변호사 개업이후의 소득이 음성적이 아닌 정식으로 신고된 수입이며, 이에 따른 소득세까지 납부된 사실이 밝혀진 이상 청와대의 인사검증팀이 몰랐을 리 만무하다고 볼 때 여기서 우리는 슬프게도 전관예우나 상식을 넘어서는 변호사 수임료의 문제보다 더욱 심각한 대한민국 권력집단의 병폐를 엿보게 된다. 집단사고(集團思考, groupthink)라는 무서운 고질병을.

사회심리학에서 집단사고란 집단 구성원들 간에 강한 응집력을 보이는 집단에서 의사 결정 때에 집단 구성원들이 집단의 응집력과 획일성을 강조하고 만장일치에 도달하려는 분위기가 반대의견을 억압하여 왜곡되고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는 의사 결정 양식을 말한다. 총리는 물론 장관 등의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 여러 후보군을 놓고 사전 검증을 하는 집단이 바로 청와대 비서실의 민정라인이라는 것은 이미 언론을 통해서 밝혀진 사실이다. 이번 사태를 불러 온 민정라인 5명이 모두 법조계 출신(변호사)이며 그중 4명은 부장급 이상 판사 또는 검사를 거쳐 대형 로펌의 변호사로 재취업한 전력이 있는 인물들로만 구성되어 있었기에 후보자의 30여년 검찰 경력만을 중시하고 퇴직 이후의 일은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음은 당연한 귀결이랄 수 있다. 실제로 후보자 발표 하루 만에 과다수임료 문제가 불거졌을 때 청와대 민정라인에서 보인 반응은 ‘대법관 출신으로서 그 정도의 변호사 수임료는 그리 많다고 볼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고 하니 집단사고의 표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우리 조경분야도 이러한 집단사고와 접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어 안타까움과 착잡함에 마음이 무겁다. 조경분야 최초의 법률이랄 수 있는 ‘조경산업 진흥법’의 제정을 위해 조경인 모두의 염원을 담아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데 반해, 조경산업의 큰 집이며 울타리가 되어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대한건설협회의 입법 저지 행태를 보며 집단사고의 또 다른 발로에 충격과 서운함을 금할 길이 없다. 지난 5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조경산업 진흥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천명하였듯 ‘조경산업 진흥법’은 건설협회에서 주장(걱정)하는 것과 같이 공사업(工事業)의 분리발주를 요구하거나 나아가서 조경산업이 건설산업에서의 독립을 꾀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법안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점차 쇠퇴하고 있는 토건(土建) 중심 건설산업의 낡은 구조와 패러다임을 친환경, 녹색 건설의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키 위한 미래지향적이며, 건설산업의 한 분야로서 조경산업을 자리매김하고 진흥시키는 방안을 담은 법안임을 객관적 사고와 폭넓은 안목을 갖고 법조문의 내용 하나하나를 차분히 살펴본다면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공청회를 통해 공개적으로 밝히고 법안의 내용 어디에도 건설협회에서 우려하는 바가 명문화되어있지도 않은 마당에 그들은 왜 한사코 낡은 축음기 위 판 튀듯 제정반대의 소리만 되풀이 하는 것인가?

사회심리학자 어빙 제니스(Irving Janis)에 의하면 집단사고는 집단 응집력, 조직의 구조적 결함, 상황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게 되며, 집단사고가 발생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증상은 집단의 능력에 대한 과신, 집단의 폐쇄성, 획일성에의 압력 등이 있다 하였다.
집단사고의 첫 번째 발생요인인 집단 응집력이란 응집력이 강한 집단에서는 내집단 압력이 강해져 비판적 사고를 억압하기 쉽다는 것이다. 대한건설협회는 우리나라 건설업계를 대표하는 단체다. 법적 지위까지 보장받는 건설분야 최고의 단체라는 자부심이 집단의 응집력을 지나치게 결속하여 내부의 획일적인 반대논리에 비판적 시각 없이 매몰되어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조직의 구조적 결함이란 집단이 다른 집단들로부터 고립되어 외부의 의견과 단절된 상태에서는 문제를 바라보고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체계적인 검증 기회를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건설협회를 구성하고 있는 조직원의 구성체계를 보면 대부분 토목 또는 건축업에 기반을 둔 인력위주로 형성되어있다(물론 협회 내에 조경공사업 대표자로 구성된 조경위원회가 있으나 전체구성상 소수비율에 불과하다). 때문에 조경계와의 대화를 통해 ‘조경산업 진흥법’에 대한 체계적이고 면밀한 검토 없이 성급한 결론을 도출한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상황적 요인이란 집단의 외부 또는 내부의 상황도 집단사고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즉 집단이 외부의 위협을 받는 경우나 매우 중대한 문제에 직면한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현재 건설협회의 존립기반이 되는 ‘건설산업기본법’에서는 건설공사의 분류를 종합공사 5개 분야(조경공사업 포함)와 전문공사 29개 분야(조경식재공사업, 조경시설물설치공사업 포함)로 구분하여 관장하고 있으나, 지속적으로 일부 전문공사분야에서 토목, 건축에 포함된 일괄발주가 아닌 분리발주 요구가 있어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조경분야의 법제정 움직임을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들 분야와 한통속으로 묶어 ‘개별분야법의 제정은 불가’라는 억지 논리를 펴고 있는 것으로 밖에는 볼 수 가 없다.

통치기관의 집단사고는 국가적 불행과 정치적, 행정적 낭비를 초래하게 됨을 우리는 총리지명자의 사퇴를 통해 분명히 보았다. 우리가 아니면 안된다는, 우리가 최고라는 근시안적 사고를 버리고 넓고 긴 안목으로 멀리 보는 열린 생각을 정책 판단이나 의사 결정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모든 기관과 집단이 지향해야할 목표가 아닐까?

대한건설협회는 집단사고(集團思考)에 빠져 대한민국 녹색성장의 주춧돌을 놓는 역사적 사업에 한낱 훼방꾼으로 전락하지 말 것을 간절히 바란다. 그것은 후대에 치명적인 집단사고(集團事故)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므로….

진승범(객원 논설위원·이우환경디자인(주) 대표·(사)한국조경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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