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세헌(가천대 교수/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회장)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세월호 사고와 생존의 기로에 서있는 조경업의 치열함 속에 갇혀있던 제 맘에 잠시 평화를 얻고자 조용한 산사(山寺) 선암사를 다시 찾았다. 산사로 들어가는 길은 숲속의 작은 오솔길.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는 조용히 걷고 싶은 길이다. 오솔길 옆으로 바위를 돌고 돌아 흐르는 물소리가 영혼을 깨운다.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은 어느새 거친 맹골수도 바다 속의 허망함에 다다르고, 승선했던 아이들의 안타까운 생명은 승선교의 이름처럼 아름다운 선녀들의 길을 따라 피어난다. 통념을 벗어난 강선루의 자리매김과 살포시 기둥하나 계곡에 드리운 여유 그리고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한 산사에 이르는 고즈넉이 가라앉는 감동 덕분에 지친 마음은 위로 받는다.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성공 개최한 순천시 조계산 자락에 위치한 선암사(仙巖寺)는 신라 말기인 서기 875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원래 이름은 해천사 였는데 대각국사 의천이 선암사 대각암에 주석하면서 선암사를 중창해 천태종을 널리 전파하는 호남의 중심사찰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암사는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종합수도 도량으로도 유명하며 그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사연과 문화재가 있는 사찰이다. 이 사찰에 속한 보물급 문화재만 해도 승선교·삼층석탑·대각암 부도·대웅전 등 총 9개나 이른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가 최고의 유적지로 극찬한 선암사는 짜임새가 정교한 무지개 모양의 홍예교인 보물 400호 승선교와 선암사 강선루에 이르는 숲길에는 약 80종의 수많은 나무들이 운치를 더해준다. 조경수의 표본 전시장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꽃과 나무가 있는 선암사에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나타내는 게 바로 600백 년된 홍매화 선암매(仙巖梅)이다. 특히 무전과 팔상전 담장길에 있는 고혹적인 매화는 사색의 운치를 더해주고 이러한 봄철 못지않게 가을의 단풍숲길 역시 아름답다. 천불전옆 500백 년 된 와송은 그 기품이 남다르며 불교사상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타원형의 연못인 삼인당은 공학적으로도 매우 의미있는 시설이며 연못 가운데 섬에서 피는 꽃무릇은 무척 아름답다, 정말 아름답고 좋은 것을 보면 힐링이 된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다. 또한 정월 초하룻날 똥을 싸면 그 떨어지는 소리가 섣달 그믐날 들린다는 선암사 해우소 뒷간은 환원과 비움의 철학이 있는 공간이다. 이를 모티브로 하여 영국 첼시 플라워쇼에서 황지혜작가가 ‘해우소’라는 작품을 출품하여 큰 상을 받은 이후 더욱 유명해졌다. 시인 정호승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는 시에서 해우소를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 앞/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왜 시인 정호승이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한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산사는 우리 국토에 선암사 뿐 만 아니라 대흥사(전남 해남), 법주사(충북 보은), 마곡사(충남 공주), 통도사(경남 양산), 봉정사(경북 안동), 부석사(경북 영주) 등 많이 있다. 한국의 자연환경과 잘 어울리는 깊은 산속의 깊은 절인 산사(山寺)는 고대 동아시아 여러 국가와의 교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고유의 불교 교리와 문화에 기반 하여 고유의 사찰건축 배치 형식과 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현존하는 불교신앙이 거쳐 온 전체적 역사적 과정의 표출이자 동시에 우리나라 전통적인 공간의 증거다. 한국의 산사는 자연과 조화하는 유기적인 배치와 가람의 유형을 창출하였고, 특히 풍수사상의 영향을 받아 통합생명의 상호조절원리를 구현하고 있다. 또한 한국 불교만이 가지는 통불교적 사상과 신앙으로 의식, 승려, 생활, 문화 등을 행하는 종합적 사찰로써 많은 불교 문화유산과 공간을 담고 있어 이러한 의식, 공간, 기능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선암사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의 자연과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산사가 주는 고즈넉이 가라앉는 감동에 새삼 감탄할 때가 있다. 이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산자락을 아주 조금 걷어내서 작은 평지를 만들고 물과 나무를 소중히 하며 자연에 기대어 자연의 일부로서 산사를 만들었다. 그 소박함, 겸손함, 비움의 마음, 그리고 구도자의 깊은 안목이 아름다운 산사를 만들고 어울리는 분위기를 있게 했다. 이는 좋은 것을 만들겠다는 이 사람들의 열성과 욕심도 아니고, 이 건물들의 웅장하고 화려함도 아니다. 겸손함이 오히려 우러러보게 하고, 고요함이 더욱 찬탄하게 하며, 소박함이 진정으로 사람들을 가까이 오게 하며,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훨씬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반어법의 수사가 아니라 놀라운 진실이다. 무릇 아름답게 만들려고 빚은 것은 거기 미치지 못하고, 순수하게 만든 것은 저절로 아름다움을 넘어선다. 우리는 오래 전에 이 뛰어나게 고상하고 우수한 문화의 영역을 세련화한 민족의 후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것을 잊고 지냈다. 이제 단선적이고 직설적인 저급의 문화에서 눈을 돌릴 때가 되었다, 시간이 걸려도 좋고, 크기가 작아도 좋고, 숫자가 많지 않아도 좋다. 우린 정말로 훌륭한 것, 높은 정신, 맑은 눈, 가라앉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정말 좋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산사를 만들던 선인들의 지혜와 겸손과 안목과 정신을 배워야 한다.

조경업계의 위기 한복판에서 시름하고 있는 많은 조경인들은 세월호의 사고로 더욱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산사(山寺)의 짧은 경험을 추천해드리고 싶다. 산사를 만들었던 선인들의 생각을 배우고 진짜 아름다움을 만드는 순수함, 소박함, 겸손함 그리고 비움의 미학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우고 단순해져야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것 같다. 조경! 척박한 환경에서 이만큼 성장했으면 대단하지 않은가?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앞으로 좋은 날이 훨씬 더 많다. 스스로 산사(山寺)에서 묻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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