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춘매 화가의 '부암동 이야기.' 제작년도:2009 크기:27 x 45cm 재료:watercolor on Arches rough


1. 첫 번째 퀴즈

1. 첫 번째 퀴즈

 

1. 첫 번째 퀴즈
박춘매 화가의 그림 속 장소는 어디일까?
이 글의 제목에서 이미 이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주었기에 이 퀴즈는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이 퀴즈를 낸 이유는 당신이 “산과 어우러진 풍경이 서울에 있는 동네 같지 않죠? 서울에도 이런 동네가 있네요? 이 장소를 찾아낸 화가의 심미안이 놀랍죠?”라는 내 의견에 동조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당신은 별로 그렇지 않은데 공연스레 조르는 건가?

어찌되었건 퀴즈의 답을 정확히 밝히자면 부암동 안골이다. 화가가 이 그림을 그린 건 2000년대 중반이라 사람살이 풍경은 많이 변했지만 부암동 주민센터 뒤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인왕산을 향해 걷다 숨이 좀 가빠지고 등에 땀방울이 맺힐 때면 여전히 저 모습 그대로인 인왕산을 만날 수 있다. 지나면서 그 유명한 무계정사 터에 지어진 무계원도 볼 수 있다.

부암동은 북한산과 북악산, 인왕산 사이 분지에 위치한 까닭에 서울에서 손 타지 않은 자연경관을 볼 수 있는 동네다. 복합 몰과 멀티플렉스 공간에 집중되어 있던 도시민들의 여가 활동이 최근 삼청동이나 북촌 같은 오래된 동네로 펼쳐지면서 부암동도 인기 있는 동네가 되었다. 주말이면 방문객들로 북적거리고 곳곳에 아기자,기한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그래도 청와대와 가까운 탓에 군사보호구역, 인왕산 아래라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높은 건물은 거의 없다. 다행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오래 전부터 이 곳의 매력은 정평이 나 있다. 조선시대 왕족과 사대부들이 앞 다퉈 별장과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겼는데, 그 중에서도 백석동천과 석파정, 무계정사 터, 탕춘대 터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은 무계정사는 사라졌고 그 자리에 무계원이라는 한옥 건물이 들어섰다. 조선 초기 세종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이 꿈속에서 무릉도원을 본 후 현실에서 그런 곳이 있는지 찾아 헤맸다. 마침내 이 곳에서 꿈속에서와 같은 경치를 찾았다며 정자를 세우고 글을 읊으며 활을 쏘았다고 한다. 그 장소가 바로 무계정사(武溪精舍) 터다. 그리고 당대 최고 화가인 안견(安堅)에게 꿈속 풍경을 들려주며 그리게 한 그림이 그 유명한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이다.


2. 두 번째 퀴즈
저 그림 속 계절은 언제인가?
답을 내려는 조급한 마음을 접고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이 퀴즈를 맞힌다고 상금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아마 당신은 봄이라고 답했을 테지만 나는 정확한 답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마을은 한창 봄인 듯하다. 그림 왼쪽 빨간 지붕과 파란 지붕 뒤 쪽의 노란색은 개나리가 만개한 모습인 듯 하고 오른쪽으로는 벚꽃이 휘날리고 있다. 그림 앞 쪽으로는 울긋불긋 봄 꽃이 한꺼번에 피었다. 산 중턱에도 벚꽃이 조금씩 드러나고 문득 문득 보이는 신록이 싱그럽다. 그런데 아직 저 산 꼭대기까지는 봄이 닿지 않는 듯하다. 꽃도 신록도 보이지 않는다. 상록수의 짙은 초록만이 뚜렷하다. 그림 한 장에 봄의 스펙트럼이 쫙 펼쳐져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자연은 참으로 현실적이다. 관념적이지 않다. 4월이라고 꽃을 피우는 게 아니라 조건이 갖추어져야 꽃도 피우고 잎도 내고 계절을 보여준다. 자기만의 페이스로 움직인다. 달력의 일자가 같더라도 산 아래는 꽃을 피울만하니 피우고 저 위쪽은 그렇지 않으니 누가 뭐라 건 짐짓 모른 척 한다. 아직 “나는 때가 안 되었어. 보채지 말아” 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만의 페이스가 있는가? 남이 꽃을 피운다고 나 또한 급히 꽃을 피우려했고, 남들이 열매를 맺는다고 아직 여물지 않은 열매를 자랑하려하지 않았던가? 그 대가로 우리는 최근에 아주 아주 큰일을 겪었다. 세월호 말이다. 우리는 아주 빠른 시간 동안 산업화를 이루었고 민주화도 이루었다고 자평해왔다. 그러나 산업화도 민주화도 외양만 갖추었을 뿐 제대로 영글지 못했다. 우리만의 페이스를 갖지 못했다. 한 없이 부끄러운 일이다.

3. 세 번째 퀴즈
당신은 우연히 들어선 부암동에서 만난 봄의 기운에 정신이 빼앗겨 인왕산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저 그림 속 집도 지나 산 중턱에 난 산길 중간에 앉았다. 무엇이 보이는가? 어떤 소리가 들리는가? 어떤 내음이 나는가? 무엇이 느껴지는가?

저 멀리 북악산이 보인다. 그야말로 병풍처럼 펼쳐져있다. 계곡을 따라 옹기종기 집들이 들어서있지만 북악산에 대한 도전이 되지 못한다. 행정구역명이 궁금하지 않은 까닭이다. 북악산의 위엄 있는 풍모에 괜스레 작아져 한참을 앉아 있으려니 저 아래 공기와는 다른 서늘함이 느껴진다. 바람 따라온 내음도 익숙하지 않다. 저 아래 동네에서는 맡지 못하던 내음이다. 풀내음이라고 해야 할지 꽃내음이라고 해야 할지.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리는 새소리, 언뜻 언뜻 들리는 바람소리. 저기 멀리 북악산에 가 있던 내 인식은 어느새 내 몸을 향해 있다. 감각이 살아난다. 잡념이 사라진다. 그리곤 시간이 한 없이 흐른다. 명상이 별 게이던가? 저기 길고양이가 살그머니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아마 당신은 계속 그렇게 앉아있었을 게다.

4. 네 번째 퀴즈
부암동에서 우리는 거대한 두 산을 만났다. 직접 몸으로 만났고 멀리서 흠모의 눈으로 바라다보았다. 그리고 두 산의 기운을 받으며 우리의 내면도 잠깐이나마 들여다보았다. 이제 우리는 저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그냥 내려가서는 안 될 것 같다. 무언가 결심을 해야 할 것 같다. 허영인줄 안다. 사람은 웬만하면 변하지 않으니 아니 변하지 못하니, 변하겠다는 결심은 대부분 허명이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 같다. 그게 예의인 듯하다. 우리가 짐작할 수도 없는 시간을 견뎌내고 우리가 헤아릴 수도 없는 아니 헤아린다는 표현조차도 부끄러울 정도로 겹겹이 쌓인 역사를 지닌 두 산을 만난 온 이후이니까. 또 이렇게 많이 부끄러운 시절이니 말이다.

어떠한 허명도 없이 자신만의 페이스로 스스로를 증명해내고 있는 인왕산 자락 부암동에서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고 그네들 고이 영면하시라.

 

김연금(조경작업소 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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