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코리아 가든쇼 학생부문 정원 이야기]

‘소리’로 치유하는 ‘정원’
학생들이 정원을 가꾸는 법

학생들은 서투르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정말로 하나만 알고 ‘혹시 이렇게 하진 않겠지’하고 염려하면 무슨 독심술이 있는지 무조건 그렇게 된 결과물을 가지고 돌아온다. 성격은 또 다들 어찌나 그렇게 좋은지 또래 몇 명만 모이면 왁자지껄, 넘쳐나는 체력으로 밤새 엉뚱한 짓을 꾸미기도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래서 소중하다. 며칠 밤을 새며 고민할 것 없이 뚝딱 설계안을 완성하고 누구와 소통하지 않아도 혼자 유유히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정말이지 속이 편하겠지만, 학생들의 완성되지 않은 사고와 치기어린 표현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묘한 결과물을 보고 있자면 제 아무리 위대한 정원사가 와서 일을 자처한다할지라도 ‘이번만큼은 돌아가 달라’하고 간곡히 부탁하게 될 것이다. <편집자주>
 

 

▲ 정원이 조성될 박애원의 대상지, 중앙광장 전경.


‘2014 코리아 가든쇼’ 학생부문에 응모해 최종 선정된 2인 1조의 학생 10팀에게는 하나의 정원을 조성해 사회에 기부하라는 또 다른 미션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 대상지로 선정된 곳은 경기도 고양 설문동에 위치한 정신요양, 노인요양시설 ‘박애원’이다. ‘조현병’이라 불리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이곳 대부분의 환우들은 장시간 햇볕을 쬐는 일이 힘들고 외출 또한 쉽지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이곳의 정중앙에 위치한 광장을 대상으로 환우들과 가족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치유를 체험할 수 있는 정원을 조성하는 임무를 맡았다.

기부정원 조성을 위한 전체적인 일정은 다음과 같이 이뤄졌다. 우선 비로소 봄의 기운이 완연하게 찾아든 4월 11일, 본격적인 시공에 앞서 정원에 대해서 공부하고 디자인을 하게 되는 집체교육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어 19일, 교육에서 나온 설계도면을 바탕으로 가든쇼를 위한 전시시공을 진행한 다음, 내달 12일 최종적으로 대상지 박애원에 기부시공을 함으로써 끝을 맺게 된다.

4월 25일부터 5월 11일까지 열리는 ‘2014 코리아 가든쇼’를 앞두고 숨 가쁘게 진행된 2박 3일간의 집체교육과 가든쇼 전시시공의 현장. 그 긴 대장정을 학생들과 함께하면서 서투르지만 열정으로 가득 찬 설계 작업에서부터 시공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정원을 설계하려면 야식부터 챙기자

 

▲ 집체교육에 앞서, 대상지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그것은 정원을 만드는 일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정원 조성의 핵심은 ‘기부’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그곳에서 생활하고 정원을 매일같이 마주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설계를 고민하는 일은 필수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격적인 디자인 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이번 정원 조성의 멘토 역할을 맡은 (사)푸르네정원문화센터(대표 이성현)와 학생들은 함께 박애원 현장을 걷고 또 걸으며 대상지 주변 환경을 관찰하고 환우들의 생활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 본격적인 디자인 작업이 4월 11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흥국생명 연수원에서 이뤄졌다. 2박 3일로 진행된 교육의 첫날, 5명씩 4개조로 나뉜 학생들은 우선 멘토들로부터 ‘정원의 가치’ 및 ‘정원디자인’ 등 기초적인 정원의 개념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어 대상지 박애원을 걸었던 것을 떠올리며 본인이 추구하는 정원의 콘셉트 및 아이디어 등을 계속해서 제시했다.

 

▲ 4월 11일부터 2박 3일간, 용인흥국연수원에서 정원 디자인에 대한 집체교육을 가졌다.

 

▲ 학생들과 멘토들은 밤새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또 논의했다.


교육과정 중에서 멘토들은 끊임없이 학생들이 가지고 온 아이디어들을 돌려보내는 역할을 해야 했다. 이번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책상 앞에서만 정원을 그리던 학생들이 실제 현실적인 정원의 시공법을 알아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림을 실제 현장에 옮기는 과정을 통해 이들은 시공의 결정적 요소인 견적비나 시공법 등을 배우고 현실적인 업무들을 익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했다. 실컷 쥐어짜내 가져간 아이디어들은 ‘소리정원’, ‘꿈의 정원’, ‘소통하는 정원’ 등 시안만 보면 그럴듯해 보였지만 박혜미 푸르네 정원사는, “이건 벽에 거는 그림이 아니다”며 “근본적인 문제는 원하는 걸 이것저것 막 넣기만 하면 견적비가 어마어마해지는 것”이라고 말하며 현실적인 시공의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각 팀들은 뚜렷한 콘셉트를 잡은 후, 다음 날 아침 11시까지 최종설계안을 완성하기 위해 밤새 고군분투하며 작업을 진행했다. 연수원에 들어오기 전에 눈치껏 사온 야식들은 다음 날 아침 완전히 동이 났다. 학생들은 그 긴 시간동안 단지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그치지 않고 ‘조현병’에 대해 공부했으며 무엇보다 인간의 삶에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쉬지 않고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그에 맞는 초화 및 관목 등 합리적인 식재들과 시설물 등을 환우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조화롭게 배치했다. 물론 멘토들은 계속해서 그들의 설계안을 돌려보내길 반복했고 그 결과 누구도 마지막 날의 아침식사 메뉴는 알 수 없었다.

 

▲ 본격적인 설계에 들어간 모습.


집체 교육에서 나온 4개의 설계안은 최종적으로 박애원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관계자와 환우들의 투표를 거쳐 A팀이 디자인한 ‘소리정원’이 최종 선정됐다. ‘소리정원’은 인간의 오감 중에서 가장 상상력을 자극하는 감각이 청각이라는 개념에 착안, 새소리, 풍경소리, 나뭇잎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 등 다양한 소리의 파장에너지를 정원이라는 공간에 녹여낸 작품이다. 박애원의 정원에 환우와 가족들의 웃음소리와 자연의 소리가 늘 가득했으면 하는 학생들의 바람이 잘 스며들어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4월 19일, ‘2014 코리아 가든쇼’ 현장에서는 학생들이 함께 모여 이 ‘소리정원’을 최종적으로 완공했다.

정원을 만들려면 목장갑부터 챙기자

 

▲ 최종 선정된 A팀의 ‘소리정원’이 가든쇼 현장에서 시공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원은 아름다웠다. 완공된 정원을 바라보고 있자니 라일락과 라벤더의 부드러운 향기가 정원을 가득 메웠고 풍성하게 만개한 수국의 자태는 비로소 가든쇼가 시작됨을 알리는 듯 했다. ‘소리정원’의 특색에 맞게 설치된 풍경의 울림과 파동을 나타내는 분홍빛 나무 기둥은 학생부 정원 특유의 맑고 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런데 학생들은 여기서 또 한 번의 난관에 봉착했다. ‘첫 설계’라는 말보다 두려웠던 건 아마도 ‘첫 시공’의 문턱이 아니었을까 싶다. 당연히 실제 시공현장에서는 기존에 계획했던 설계도면을 온전히 공사 현장에 옮기는 일이 쉽지 않고 그 일을 진행하는 사람이 단 한 번도 시공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라면 ‘오늘은 집에 갈 수 있겠지’하는 걱정부터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 가든쇼를 위해 식재가 변경돼 또 한 번 고민에 빠진 학생들의 모습.


무엇보다 이번 시공은 5월 12일 박애원에서 이뤄지는 시공과는 달리 전시를 위한 시공이었기 때문에 가든쇼 분위기에 맞춰 색감과 질감, 주변 정원과의 조화, 견적과 시공기간의 문제를 고려해 관목 및 초화, 바닥 포장, 경계 등을 변경해 진행해야 했다.

대상지에 기존에 있던 느티나무를 홍도나무로 대체하고 이를 중심으로 라일락, 수국, 옥향, 앵초, 매발톱, 금낭화, 아주가, 송엽국, 라벤더, 말발도리, 안개꽃, 낮달맞이, 수호초, 무늬둥글레 등을 소리 파동을 표현하듯이 높았다 낮아지는 형태로 식재했다. 또한 바닥은 전체적으로 석판을 계획했었지만 이곳에선 시공기간의 문제로 잔디로 대체, 교목 중심에 깔 것으로 예정했던 자갈은 우드칩으로 변경해 진행했다.

학생들은 현장에 오자마자 두터운 목장갑을 끼고 삽을 쥐었다. 실제 시공 현장에 들어서면 ‘어떻게 심을까’를 고민하는 일이 문제가 아니라 마사토를 깔고, 땅이 평평해질 때까지 고르고, 톱으로 나무를 베는 일 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 나무를 자르고 페인트를 칠하는 등 모든 고된 과정들도 정원 시공의 일부다.


‘소리정원’에서 눈에 띄는 핵심 포인트는 말 그대로 ‘소리’를 테마로 했기 때문에 마감소재를 보통 흔하게 사용하는 경계목을 쓰지 않고 연통을 사용했다는 점에 있다. 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와 가든쇼가 진행되는 동안 정원에 흐를 음악 소리를 효과적으로 울리게 하기 위해 (사)푸르네정원문화센터의 멘토들이 고민 끝에 생각해 낸 아이디어다. 이성현 대표는 “독특한 마감소재를 사용하고 싶어 고민을 많이 했는데 도통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며 “그러던 중 회식 간 고깃집에서 연기를 빨아들이는 연통을 발견한 후 ‘아, 이거다!’하고 깨달았다”고 연통의 탄생 비화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 ‘소리정원’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마감소재로 연통을 사용했다.


학생들은 마감 소재로서 뿐만 아니라 소리를 효과적으로 퍼지게 하기 위해서 정원 곳곳에 연통을 심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소리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심은 이 연통은 사람들이 귀를 대고 소리를 들었을 때 혹시 다치지 않을까를 염려해 석고 테이프를 녹여 입구에 발라 부드럽게 마감한 세심한 흔적도 엿보였다.

식재를 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그냥 무턱대고 심을 것이 아니라 조금의 오차도 나지 않도록 하기위해 미리 계획했던 설계도면을 보고 그대로 치수를 계산한 후 다시 현장에 맞게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계산해서 그은 선을 바탕으로 관목 및 초화의 높이와 색채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나둘씩 천천히 식재해 나갔다.

 

▲ ‘소리’의 파동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초화의 높이와 색상을 고려해 식재했다.


여러 명이 다 같이 모여서 하는 일에는 분명 장단점이 있다. 효율적으로 일을 척척 잘 진행시켜나가든지 뒤죽박죽 엉켜버려 완전히 망해버리든지 둘 중 하나다. 다행히 이번 정원 시공에서는 모두가 손발이 척척 맞아 계획했던 시간보다 훨씬 빨리 일이 진행됐다. 앞서 2박 3일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냈기 때문인지 굳이 많은 말 하지 않아도 본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일을 잘 찾아 수행했다. 누군가가 나무를 베고 있으면 한쪽에선 페인트를 칠했고 또 누군가가 수치를 계산하며 땅을 째려보고 있으면 다른 쪽에선 어떻게 식재를 심을지 옹기종기 모여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는 그런 장면이었다.

 

▲ 말하지 않아도 손발이 척척. 저마다 각자 주어진 위치에 식재한다.

 


식재가 끝난 후 마지막으로 교목을 중심으로 우드칩을 깔고 그 위에 나무의자를 배치했다. 학생들은 오순도순 그곳에 모여들어 앉아 본인들이 스스로 일구고 가꾼 정원을 둘러보며 미소 지었다. 비로소 시공이 마무리에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 4월 19일, ‘2014 코리아 가든쇼’ 학생부문의 ‘소리정원’이 완공됐다.


영국에서 유학중인 송초희(위틀컬리지 가든디자인전공) 학생은 “유학을 하면서 한국의 조경전공 학생들과는 만나 얘기해볼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조경, 원예,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또 이번에 기부 정원으로 선정된 A팀의 학생 중 한 명인 김연주(서울여대) 학생은 “모두가 몸을 사리지 않고 힘을 모아 하나의 정원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학생으로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 정원은 ‘2014 코리아 가든쇼’가 끝난 후 철거해 다시 5월 12일 박애원에 기부 시공될 예정이다. 그 때 학생들은 또 다시 모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학생들은 이제 아무 말 하지 않고 눈빛만 봐도 척척 꽃을 식재하고 잔디를 깔게 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소리’가 주는 에너지뿐 아니라 그렇게 학생들이 정성을 쏟아 만들어낸 열정과 행복의 에너지가 비로소 박애원의 환우들에게 치유를 전해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소리정원’은 지금도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청명하게 울려 퍼지는 풍경소리를 품고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