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조경이 도입된 지 40여년이 흘렀지만, 국가법령 어디에도 ‘조경’을 규정하지 않은 채 산업만 성장해 오면서 정책적으로 보면 기형적인 구조를 갖게 되었다.

실체는 조경이지만, 조경이라 부르지 못하고 점점 조경으로 발주하지 않으면서 학문과 기술자들은 조경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해야 하는 비극이 늘어가고 있다. 여기에 인접분야들이 끊임없이 업역을 잠식해 들어오면서 이제 남은 것들만 추스러 본다면 과연 무엇이 조경인지 그 정체성마저 혼돈스럽기만 하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조경을 제대로 규정한 법과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경인들의 간절한 40년 염원인 ‘조경법 제정’에 대한 꿈은 오는 4월24일 국회에서 ‘조경산업진흥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로 목소리 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1년 전 이 법을 대표 발의한 이노근 의원 주최로 조경산업진흥법 제정의 당위성과 주요 내용이 발표되고 전문가 토론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미 지난 국회 회기에서 조경기본법 제정 실패를 경험한 조경계는 한결 이해관계가 적고 타 분야와도 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조경산업진흥법’으로 재도전하고 있다. 이 법안을 대표 발의한 국회의원 의지가 크고 소관 국토교통부 녹색도시과의 열정이 강하며 서승환 장관 또한 “올해 안에 통과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결의를 밝힌 바 있다. 역대 어느 시기보다 ‘조경법 제정’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조경산업진흥법이 통과된다면, 더 이상 산업이 후퇴 일로를 걷지 않고 저탄소 녹색성장 시대를 향해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것이다. 다시한번 조경산업이 일어서는 꿈을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치 않다. 산 넘고 물 건너 여기까지 왔지만, 최근 일부 건설단체에서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조경법이 만들어지면 다른 개별업종에서도 유사법안 추진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동안 이를 막아왔던 명분이 없어지게 된다는 등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고 한다. 이로써 ‘조경’ 이름이 들어간 법 제정에 대한 기대감이 또 한번 암초에 부딪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노근 의원은 이 법을 발의하면서 “정부 부처 및 지방정부에서 다양하게 진행되는 조경사업의 체계적인 지원과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조경산업의 총괄·조정 기능을 가진 법률 제정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입법취지를 설명했다. 무엇보다 오늘 조경계가 처한 문제점을 핵심적으로 잘 지적하고 내놓은 대안이다.

오는 24일 공청회는 국회에서 열리는 첫 조경정책 토론회이기도 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내어줄 것도 없는 조경인들은 이제 ‘배수진’을 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경산업진흥법’ 만큼은 조경인 모두의 응원과 참여를 바탕으로 공동의 대응전선을 만들어 내느냐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조경법’이 없음으로 해서 받아왔던 설움과 피해를 앞으로도 계속 감내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이제 국회의원과 정부, 대국민을 상대로 ‘조경산업진흥법 제정’의 당위성을 홍보하고 설득해 나가야 것 또한 필요하다. 기득권 논리에 대응할 수 있는 명분을 스스로 만들고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호전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0년 추진했던 ‘조경기본법 제정 실패’에 이어 만약 이번에도 실패하게 된다면, 다음에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그것은 매우 기약하기 어렵다. 기형적인 조경정책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이처럼 위기와 함께 오고 있다.

 

논설실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