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승범(이우환경디자인(주) 대표·(사)한국조경사회 부회장)
“………(전략)
문화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고,
문화는 ○○가 제일 잘하는 일이니까요.“

국민들의 소비를 부추기는 한 대기업의 광고에서 잘 생긴 외모를 뽐내는 남자배우가 친근감 있고 신뢰감 있는 목소리로 문화경쟁력을 강조하는 멘트로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한 몫하고 있는 걸 본다. 바야흐로 문화의 시대다. 이젠 국가의 경쟁력도 정치적 영향력이나 경제의 규모 보다는 문화의 힘에 의해 그 우위가 판명 나는 세상이다. 최근 한류문화를 이끌고 있는 K-Pop과 한국 드라마의 눈부신 성과를 보라. 지구촌 곳곳에 대한민국을 알리는데 올림픽이나 월드컵 개최 보다 ‘예능’으로 일컬어지는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훨씬 막강한 힘을 발휘하였음은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정 기업을 홍보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문화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문화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문화(또는 문화의 중요성)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오늘날 인류의 생활양식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진 만큼 문화를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것이나, 유네스코(UNESCO)에서는 문화란 ‘한 사회 또는 사회적 집단에서 나타나는 예술, 문학, 생활양식, 더부살이, 가치관, 전통, 신념 등의 독특한 정신적, 물질적, 지적 특징’이라 정의를 내리고 있다. 즉, 어느 집단이나 분야의 정체성이 오롯이 담겨 있는 정신세계의 총체가 곧 문화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경기 침체로 인한 조경계의 어려움이 지속되는 가운데 인접 분야와의 경쟁에서도 열세를 면치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이웃한 일본의 건축계에서 들려온 소식은 부러우면서 배 아프고, 또 한 편으론 안개 속에 길이 보이는 듯한 느낌을 갖게도 한다.
그 소식이란 일본의 건축가 반 시게루가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건축분야 최고 권위인 프리츠커 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의 올해 수상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1979년부터 시작된 이 상의 수상자중 일본 건축가는 1987년 단게 겐조를 시작으로 1993년 마키 후미히코, 1995년 안도 타다오, 2010년 세지마 가즈요·니시자와 류에(공동수상), 2013년 이토 도요 등 여섯 번에 걸쳐 모두 일곱 명이나 되지만 한국의 건축계는 단 한 명의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가능케 한 일본 건축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당사자인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의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꼽은 가장 큰 이유는 일찍부터 ‘건축은 문화’라는 점을 일본 건축계가 인식하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4월 3일자 중앙일보 기사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전문가 인터뷰(진단)를 몇 개 소개한다.

“일본 건축가들은 1950년대에도 이미 세계 현대 건축의 주류 안에 있었고 국제적으로 교류하는데 적극적이었다. 건축의 문화적 가치를 알고 있었던 것.”(경기대 건축대학원 이종건 교수)
“일본은 건축뿐만 아니라 문화 전체를 외교 전략의 큰 구상 아래 세계를 공략한 지 오래됐다.”(한국예술종합학교 우동선 교수)
“일본 건축전문가 데이나 번트록 교수(버클리대)는 일본 건축가들이 약진한 비결로 ‘문화교류를 위한 국가적 지원’과 ‘활발한 출판활동’을 꼽은 바 있다.”

건축을 단순히 집 짓는 ‘기술’이나 ‘공학’의 차원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예술’과 ‘문화’의 영역으로 확산시켜 대중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가고, 이를 기반으로 국가적(정책적) 지원을 이끌어 낸 건축가들의 혜안(慧眼)과 노력이 일본을 ‘건축강국’으로 올라서게 한 비결이 아닐까?

건설 경기 침체와 맞물려 지난 40년간의 성장동력이 추진력을 잃고 쇠잔해가며 건축, 산림(임학) 등 인접분야에 비해 왜소해지는 조경을 쓰린 심경으로 돌아본다. 단언컨대 조경은 자연의 위대한 섭리(攝理)에 경외하는 마음으로 겸허히 순응하며 그 속에서 인간다운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삶의 그릇(공간)’을 창조하는 문화적 행위이고, 조경가는 그 그릇을 가장 잘 만드는 전문가다. 지난 세월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활동에 경제논리만을 투영시켜 ‘밥그릇’ 만들기에만 몰두하고 조경이 ‘삶의 그릇’을 만드는 문화적 가치가 있는 분야임을 깨닫지 못한 결과가 오늘 같은 경쟁력 저하를 초래한 것은 아닌 지 묻고 싶다.

문화는 대중의 호응을 얻을 때 문화로서의 존재가치가 부여되고 힘이 생성되며 그 생명력 또한 지속될 수 있다. 대중의 호응은 그들의 인식에서 나온다. 조경은 지금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가? 그동안 조경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국민들에게 알리고 이해시키는 일에 조경분야가 무관심했음을 아프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조경의 문화적 가치’를 조경인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나도 모르는 것을 남이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제 새로운 길을 나서자. 작지만 그 첫 출발이 5월 9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2014 대한민국 조경문화박람회’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조경박람회가 우리끼리의 잔치에 국민들은 구경꾼에 불과한 일방통행식의 행사였다고 한다면, 이번 박람회는 조경과 국민이 소통하는 친근한 문화행사로서의 의미 있는 행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박람회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국민의 삶 속에 다가가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발굴하고 추진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될 것이다. 그것이 국민들에게 ‘조경은 문화’임을 알리는 길이며, ‘조경문화’에 대한 국민적 호응이 조경의 경쟁력 제고에 가장 큰 지원군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향기 가득한 조경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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