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을, 지역이나 노거수가 있게 마련이다. 서울시에서는 나무에 얽힌 갖가지 사연을 전문작가의 답사, 취재 및 세밀화를 통해 e북으로 제작해 발간했다. 그중 재미있는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 계동 은행나무

제사 지내 은행나무 성별도 바꾼 조선 유생들
예로부터 서원이나 향교에는 은행나무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는데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문헌상의 기원 때문이다. 조선의 국립대학 성균관도 1519년(중종14년) 당시 성균관의 수장이던 대사성 윤탁이 심은 500여년이 다 되어 가는 은행나무가 있다. 가지는 많이 변형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모두 건강하게 잘 살아있어 역사의 깊이를 말해준다. 천연기념물 제59호 문묘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로는 보기 드물게 수나무이다. 이것과 관련된 재미있는 전설이 원래 이 나무는 열매가 많이 열리는 암나무였는데 냄새가 고약하고 은행을 주우려는 잡인들의 출입이 많아 유생들의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원성이 자자해 문묘의 어른들이 나무 앞에서 암나무를 수나무로 바꿔달라고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이에 하늘도 공부의 중요성에 공감해 암나무를 수나무로 바꾸고, 이후 열매를 맺지 않았다는 전설같은 결말이 전해 내려온다.

▲ 정동 회화나무

건물디자인도 ‘길상목’에게 양보하며 공존 선택
선비의 굳은 절개와 높은 학문을 상징하는 회화나무는 최고의 길상목(吉祥木)이다. 정동길을 걷다보면 비록 크게 수술을 받고 죽은 가지도 있어 수형은 기형적이지만 550년 넘는 그 풍채는 여느 나무가 쉽게 넘볼 수 없는 무게감으로 묵직한 회화나무가 있다. 근처 1950년대부터 1970년대 말까지 유명사교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하남호텔의 명성이 잊히며 2007년 건물을 신축해 캐나다 대사관이 들어섰다. 건물을 지을 때 건물 앞 고령수 회화나무가 다치지 않게하기 위해 건물디자인을 나무에 양보하고, 터를 닦는 굴착시기도 나무의 동면주기에 맞추는 등 도심 안에서 힙겹게 살아가고 있는 나무에 대한 인간의 배려가 물씬 배어 있는 멋진 공존이 아닐 수 없다. 그 덕분에 늦은 봄에 돋아나는 오래된 회화나무의 빛깔은 여전히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바위도 뚫고 자라는 측백나무의 강인함 ‘500년’
척박한 시멘트 골목길 사이를 비집고 굳건히 서 있는 가리봉동 측백나무 이야기도 참 재미있다. 측백나무는 남방한계선을 나타내 식물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데 바위틈이나 척박한 곳에서도 솟아 올라 중국에서는 척박한 지역의 녹화사업으로 측백나무를 즐겨 심기도 한다. 척박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골목 한가운데서 생생한 것도 신기하지만 그 나이가 무려 500살이 넘는 것으로 추정 된다는 것! 열악한 환경과 더불어 측백나무의 강인함을 다시한번 느끼게 해준다.

강감찬 장군의 굴참나무…문어발 같은 느티나무
신림동에는 강감찬(947~1031) 장군이 꽂은 지팡이가 자랐다는 전설을 가진 굴참나무가 있다. 전설대로라면 약 1000살이나 먹은 고목으로 봐야하겠으나 실제 나이는 약 250살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강감찬의 얼이 깃들인 나무였으니 아마도 원래의 나무가 죽은 후에 후계목을 심어 지금에 이르는 것이 아닐까하는 추측만 남길 뿐이다. 또 봉원사에는 서울시에서 지정한 느티나무 보호수만 4그루가 있어 장소에 대한 깊이를 가늠하게 해주는데 마치 네 맘대로 신나게 자라 큰 줄기가 사방으로 퍼져 어지러이 뻗어나갔다.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문어의 다리 같기도 하고, 일부러 만든 분재 같기도 한 것이 볼수록 개성 강한 나무가 아닐 수 없다. <출처 : 사연있는 나무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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