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상욱 (LH 파주사업본부 건설사업단장)

지난 경칩에 제 때에 잠을 깬 개구리라면 때마침 찾아온 꽃샘추위에 적지 않이 놀랐을 게다. 창가에서 바라보니 운정호숫가의 버드나무 잔가지에도 연두빛이 완연하여 봄날을 맞아 물기가 오르고 있음을 알려주고, 성질 급한 산수유도 노오란 꽃봉오리를 터트려 버렸다. 옛 사람들은 흙과 나무와 물의 모습을 보고 때를 알았고, 사리분별이 모자란 사람에게 철이 덜 들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자연의 섭리를 도시라는 공간에서 다루는 조경가는 대자연의 땅, 흙, 흙에 선 나무 그리고 이 사이를 오가는 물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하는데, 오늘날의 실태는 그렇지만은 않다.

먼저, 조경가들이 조경설계의 바탕인 땅을 떡 주무르듯 해야 하는 데 아쉽게도 지형조형설계를 스스로 맡지 못하고 있다. 도시공원이 운동장같이 평지여서 단순하다는 지적도 같은 흐름이다. 공원녹지는 도시개발과정에서 사업성 먼저의 틀 아래 최적의 토지이용계획․대지조성설계 과정을 거치며 토공이동 최소화, 절.성토량 균형 맞추기 결과로 두부모 자르듯 반듯하게 설계되며, 조경가는 반듯한 비탈면의 보존형 공원부지, 네모꼴 김치통 같은 유수지 겸용 공원부지, 운동장 같이 평평한 공원부지를 조경설계 대상공간으로 건네받는다. 이렇게 조경가는 공원부지의 지형을 주도적으로 조형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조경설계기준(국토해양부 승인, 2013년)에서도 지형경관의 정의는 있지만, 지형조형설계는 없다. 특히, LH처럼 대지조성공사의 토공설계와 조경공사의 지형조형설계가 맞물리는 경우는 내역서에서 (조경)토공이 세부공종으로 나뉘는 경우가 드물 정도로 지형조형설계가 구조적으로 소외되고 있다.

둘째, 조경공사에서 흙은 식재용토와 구조용토 두 가지로 나뉘는데 조경가가 식재용토도 주체적으로 설계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도시화율이 90%를 넘어가면서 공원녹지, 공동주택단지, 산업단지 등의 식재환경은 계속 나빠지고 있다. 개발의 후유증으로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일반식재기반은 계속 줄어들고, 지하주차장이나 건축물 옥상․벽면 등의 인공지반 식재기반과 임해매립지나 쓰레기매립지 등의 특수지반 식재기반은 늘어나고 있다. 인공지반(공동주택조경의 경우 식재공사비의 9%안팎)과 특수지반(임해매립지의 경우 식재공사비의 25%안팎)의 식재기반은 조경에서 맡고 있지만, 일반식재기반의 경우에는 조경가들이 설계와 시공과정에서 토양을 제대로 시험하거나 결과를 확인하지 않고 있다. 조경건설회사 경영여건을 악화시키는 원인의 하나로 지목된 조경수목 하자비율의 증가와 이런 상황이 관계가 많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오늘도 일반식재기반이 대부분 토목공사의 토공(土工)에 포함되고 있어 조경수목의 하자를 둘러싼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다행히 ‘수관부분 가지가 2/3 이상 고사된 조경수는 하자로 판정’(공동주택 하자의 조사, 보수비용 산정 방법 및 하자판정기준, 국토교통부 고시, 2014년)한다는 객관적 잣대가 마련되었지만, 토공사 주체와 식재공사 주체가 이원화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조경수목 하자의 원인을 두고 책임을 다투어야 하는 조경식재공사 주체의 분투가 눈물겹지만 계속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셋째, 국제인구행동연구소가 우리나라를 강수량이 많으나 물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라(물부족국가)로 분류하고 있는 상황처럼, 이제는 ‘물처럼 쓸’ 물이 없는 시대가 되었지만, 환경을 지키는 건설산업으로 손꼽히는 조경분야조차 물부족 국가라는 현실을 고치려는 의지가 약하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필자가 LH(당시 주공)에서 공동주택단지와 공원의 조경설계에서 빗물침투시설을 적용한 게 1996년이었는데, 2010년 살펴보니 토목설계에서는 개발지구 전체의 LID배수체계를 구축하여 공원녹지의 배수설계까지 통합시켜가고 있는데 비해 조경분야는 오히려 퇴보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직도 빗물침투설계는 잔디도랑, 자갈도랑을 적용하는 정도의 아주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197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성장해온 이른바 토건중심의 건설산업은 이미 성숙단계로 접어들었고, 이 과정에서 성장이 둔화된 건축과 토목분야가 조경분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이전투구에 가까운 볼성사나운 모습이 낯설지 않게 된 것은 인접 분야의 지나친 관심 때문이라기보다 환경의 세기를 살아가면서도 제 그릇을 지키지 못한 우리의 방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몇 가지 제안을 드린다.

첫째, 땅, 흙, 물은 하나의 몸이다. 나무와 시설물의 바탕으로서 조경가에게 조차 낯 설은 대상·용어이겠지만 서로 아주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 조경분야의 기반이다. 조경가들이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학회․협회·신문 등에서 관심을 집중하고, 관련 계획․설계 기준, 세부 기법과 도면, 시방, 일위대가, 자재 개발, 시험과 인증제도 등을 체계적으로 보완하여야 한다.

둘째, 조경토공, 빗물침투·배수공을 세부공종으로 키워 조경공사의 종합·관리 역량을 높여야 한다. 구조용토와 식재용토를 조경토공으로 묶고 빗물침투공을 확대하여 빗물침투·배수공으로 위상을 높임으로써 세부 기법과 자재 발굴 유인에 힘써야 한다. 땅, 흙, 물의 조경기반 확충에 따른 단기적인 조경공사비 상승압력은 조경수와 시설물의 규격·규모를 유연하게 조정하여 슬기롭게 넘어서야 한다.

셋째, 조경가가 대지의 조형을 선도해야 한다. 필자가 평지형 공원의 양산을 줄이기 위해 2011년에 ‘가급적 토량 이동이 최소화 되도록’를 ‘공원녹지의 입지 특성과 계획주제에 맞게 부지를 조형하되-’(LH, 단지개발사업 조경기본 및 실시설계용역표준과업지침)로 고쳐서 발주했던 고양원흥지구를 살펴보니 공원녹지의 마운딩토공이 식재공사비의 5%(1만6300㎥, 식재부대공의 34%)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이제 우리 스스로 건축측면(공간조성, 시계조절), 공학측면(배수조절, 동선조절, 미기후조절), 미학측면의 기능(조경설계론 ,조경학회편, 2012년)을 가진 ‘지형설계’를 뛰어넘는 지형조형 설계․시공의 좋은 사례를 발굴해가자.

넷째, 나무가 제대로 자랄 수 있는 곳에 나무를 설계해야 한다. 조경가가 배식할 때 수목만 고민하지 말고 나무가 살 수 있는 식재기반을 설계하고, 도면대로 나무만 심을 게 아니라 살 수 있는 흙인가 확인한 뒤 나무를 심어야 한다. 특히, 시공단계에서 토양시험 결과를 확인하고 설계기준대로 식재기반을 만들거나 인수받아야 하며, 식재회사의 조경수목하자 원인을 밝히기 위한 법률행위는 식재기반의 주체성 찾기에도 필요하다.

다섯째, 더 이상 평평한 잔디밭이 미덕일 수만은 없다. 조경가는 지형을 오볼록꼴로 조형하여 바라는 경관과 공간을 만들면서도 빗물을 땅속으로 넣는 것을 보람으로 삼아야 한다. 이런 인식에서 필자는 조경설계기준(국토해양부 승인,2013년) 제10장. 빗물침투 및 배수 시설(기존 배수시설)에 ‘빗물침투’ 개념 정의, 빗물침투와 저장 설계, 자연배수체계 내용을 신설하였다. 특별히 집중 반영된 빗물침투공 사례를 들면 고양원흥지구가 시설물공사비의 21%, 서울강남보금자리지구가 12%를 차지하여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자연환경의 보배인 물을 지속가능하게 다스리겠다는 다짐을 바탕으로 빗물의 침투․저류․이용시설 설계와 시공을 조경분야에서 주체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엔지니어링과 시공사 등 산업계, 학계, 언론계, 자재 등 모든 조경가와 식구들의 실천이 중요하다.

 

안상욱 (LH 파주사업본부 건설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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