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맑았다. 전날 까지만 해도 꽃샘추위에 기온이 떨어져 꽁꽁 언 도시락을 먹게 되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했지만 우리는 따듯한 도시락을 햇살이 쏟아지는 선교사박물관 앞에서 오랫동안 먹을 수 있었다.

▲ 투어의 시작, '청라언덕'. '청라'는 푸른담쟁이란 뜻을 지녔다.


지난 8일 조경인 30여명은 뚜벅이 프로젝트 3월 행선지로 ‘대구근대문화골목’을 다녀왔다. 지역주민들의 힘으로 보전된 역사·문화자원에 스토리를 입힌 훌륭한 지역재생 사업이자 관광 상품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 떠오르고 있는 곳이다.

 

▲ '은혜정원'. 대구에 정착해 박해를 무릅쓰고 봉사하며 삶을 마감한 선교사들의 안식처다.


근대문화골목이라 이름 붙여진 대구 중구거리는 대구시와 주민들의 합작으로 완전히 새롭게 변했다. 일제강점기 시대를 지나 거리는 저마다의 색깔들로 물들었고 이제는 도시에 주민과 예술이 공존하며 새로운 공간으로 창조됐다. 청라언덕 위의 선교사 주택과 110년 역사를 가진 고딕양식의 계산성당은 아름다운 이국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로맨틱했다.

 

▲ 1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계산성당은 서울 명동성당과 전주 전동성당과 함께 한국 3대 성당으로 꼽히는 곳이다.


“나중에 여자친구 생기면 꼭 데리고 와라~”
함께 한 뚜벅이들이 웃었다.

투어는 5코스로 나뉘어 대부분 각 탐방시간이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우리는 그 중 제2코스를 걸었다. 일정은 청라언덕에서 점심을 먹는 걸로 시작해 선교사주택, 구 제일교회, 3.1만세운동길을 지나 100년 넘게 영남지역 가톨릭의 중심을 지켜온 계산성당을 둘러본 뒤 이상화, 서상돈 고택, 경상도 말로 '길다'라는 뜻을 지닌 진골목으로 빠져 마무리했다.

 

▲ 3.1만세운동길에서 다 같이 만세삼창을 외쳤다.


3.1만세운동길로 들어선 뚜벅이들은 당시 일본경찰을 피해 만세운동을 하던 대구학생들의 사진을 보며 다 같이 만세삼창을 외쳤다. 그 길을 따라 근대로의 여행이 시작돼 길을 걷는 내내 거리에 펼쳐진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작품과 흔적들을 돌아볼 수 있는 이상화 고택과 일제 강점기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서상돈의 고택을 지나면 진골목, 뽕나무골목 등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수많은 역사골목들이 숨어있다.
“이상화 시가 적힌 길에서는 눈물이 나더라”

 

▲ 길을 걷는 내내 거리에 펼쳐진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만날 수 있다.


뚜벅이 일행은 쉬지 않고 오랜 시간 걸으면서도 역사와 문화가 가득 찬 대구의 골목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권상구 대구중구도시만들기지원센터 사무국장을 만나 이 시대에 주어진 역사·문화 자원을 어떻게 스토리텔링하며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그는 희로애락이 담겨있는 우리골목에서 잃어버렸던 것들을 계속해 회복시켜 문화적으로 새롭게 탈바꿈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권상구 대구중구도시만들기지원센터 사무국장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들른 김광석 거리에서는 뚜벅이들에게 더 이상 아무 설명도, 이야기도 필요치 않았다. 어지럽던 고민들을 잠시 내려놓고 걷는 듯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김광석’을 불렀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먼지가 되어, 일어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 '김광석 거리'를 걸으면 그의 노래를 들으며 흔적들을 만날 수 있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정세영 우미건설 부장의 노래를 들으며 뚜벅이들은 오늘 걸어온 근대문화골목 애국의 길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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